우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출산 예정일이 17일 앞으로 다가왔다. 임신 초반에는 내가 아기를 선택했다는 생각만이 강했다. 그래서 그 책임감에 억눌리는 날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험관을 두 번 해서 생긴 아기였다. 당연히 내가 아기 낳기를 선택한 것이 먼저이긴 하지만, 요즘은 점점 아기의 주체성이라고 해야 하나, 나를 이용해 태어나려는 아기의 의지에 대해 생각한다.
아기는 나를 끊임없이 연습시킨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잠이 많았다. 지금도 잠을 자는 것이 최고의 건강 비법이자 멘탈 관리법이라고 믿는다. 임신 출산 육아 중, 임신이나 출산도 무서웠지만 육아를 하며 잠을 못 잔다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평소보다 한두 시간이라도 덜 자면 머리가 아프고 하루를 망치는 경험이 많았다. 아기를 낳으면 하루도 아니고 몇 달을 잠을 설친다는 공포는 나에게 엄청난 것이었다.
임신 후기로 갈수록 방광이 눌려서인지 툭하면 화장실에 가야 했다. 깨어있을 때는 거의 30분마다 화장실에 가야 했다. 잠을 자도 그런 느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12시간도 내리자던 내가 3~4시간이 지나면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야 했다. 임신 후반기부터 자다가 3~4시간 텀으로 일어났다. 한번 일어나면 다시 잠에 들기 어려운 상황도 발생했다. 보통은 잠에서 깨더라도 금방 다시 잠들던 나였는데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몇 달을 이렇게 자다 깨니 ‘아기 때문에 새벽에 2~3번 깨는 일도 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가닿지 못할 일이라 생각했는데 나를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 아기가 대단했다. 연습보다 실전이 혹독하겠지만 이전처럼 ‘도저히 못할 일’이라는 생각의 단계보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임신 후반기 미친 듯이 숨이 차는 현상이다. 나는 숨이 차는 기분이 싫어 운동을 싫어하는 인간이다. 특히 러닝이나 헬스 같은 종목이 그랬다. 내가 유일하게 2년 정도를 지속해 온 운동이 요가인 이유는 숨이 미친 듯이 헐떡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땀을 쭉 뺄 만큼 강도도 높았다. 숨이 차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계속해서 지도자가 호흡법을 신경 쓰게 하고 단속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좋았다. 헬스나 러닝도 호흡법을 알려주지만, 기본적으로 숨이 헐떡일 정도로 채찍질을 하는 분위기가 싫었다.
임신 후반기부터 애플워치를 차고 심박수를 잴 때 130~160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이 30분 이상 지속되는 날들이 많았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오후 3시부터 오후 5시가 특히 심했다. 9개월 직전까지 회사를 다녔는데 회사를 다니며 가장 힘든 것이 이 증상이었다. 숨이 찰 때 몸을 눕히면 좀 나아지는데 회사에서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헐떡거림 때문에 운동을 안 해도 매일 운동을 하는 기분이었고 이걸 진정시키는 호흡법을 익히게 됐다. 어느 날 출산을 위한 호흡법 동영상을 봤는데 심박수가 미친 듯이 올라갈 때 들이쉬었다 내뱉는 호흡이 비슷했다. 심박수가 올라가는 게 물론 이 호흡법을 익히라는 의도는 아니겠지만, (아기에게 보내는 혈류 때문이라고 한다) 잘 적응되지 않는 내 몸을 통제하는 방식도 연습하게 됐다.
임신 37주에 들어서니 이제는 '가진통'이라는 증상이 생겼다. 진통은 아니고, 출산 전 진통처럼 느껴지는 아픔이 가끔 나타나는 일이다. 이 진통이 5분 간격으로 반복되면 그것이 진진통이다. 하루에 한두 번 생리통처럼 싸르르하게 아픈데 이것은 임신 중 느껴보지 못한, 후기의 새로운 증상이다. 놀라지 말라고 진통까지 연습시키는구나. 이런 계획적인 생명 같으니라고.
이런 식으로 아기는 날 자신의 패턴에 맞게 연습시킨다. 물론 출산과 육아로 인해 처음 느껴보는 일들이 쏟아지겠지만 이것이 나 혼자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아기 역시 스스로 성장을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꽤 감동적인 것은 놀라지 말라고 이렇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고해 준다는 것이다.
출산 방법 역시 아기가 제때에 돌아주고 제때에 내려와 줘야 자연분만을 할 수 있고, 그게 아니면 수술을 해야 한다. 요즘엔 선택제왕이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여하튼 아기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출산 방법도 달라진다. 내 몸을 이용해서긴 하지만, 아기 역시 크려고 꿈지럭꿈지럭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명령을 내리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내 도움을 받으며, 혹은 내 도움을 거절하면서 커나가겠지. 무조건적으로 내가 아기를 선택했다는 느낌보다는, 우리 둘이, 나아가 남편과의 호흡까지, 우리 가족이 함께 성장해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신기하고 고맙다.
임신이라는 프로젝트가 거의 완성되가고 있다. 출산이라는 우리의 두 번째 공동 프로젝트에서도 우리 팀워크가 더 쌓이는 계기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