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며
“이 고통을 남자들은 절대 알 수 없지.”
출산 후 며칠 동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현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보통 이런 말은 아주 친한 친구 사이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많이 나왔었던 것 같다.) 출산 이후 입원을 하고 퇴원 후 조리원 입소하면서 만난 산부인과 의사, 간호사, 산후조리 담당자님, 마사지사, 모유수유 교육자님, 밥 챙겨주시는 담당자님이 비슷한 한 마디를 던지고 가신다.
이들과는 출산의 고통은 물론이고 출산 후 이어지는 훗배앓이, 회음부 통증, 빈혈, 젖몸살, 모유수유를 하며 받는 스트레스 등 모든 고통의 단계를 함께 했다. “오늘은 00가 아프지 않아?”라든가 “어제보단 낫지?”등의 안부가 오간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이들과 오늘의 젖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하는 사이가 됐다.
출산 이후 짧다면 짧은, 2주간 완전히 다른 세계로 건너가기 전 어떠한 ‘완충지대’로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장소를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겠지.
특히 내가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를 한 곳은 2층부터 7층까지 모두 출산과 관련한 장소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2층은 산부인과와 소아과, 3층은 분만실, 4층부터 5층은 입원실, 6층부터 7층은 산후조리원이었다. 이 때문에 나의 출산을 담당한 의사와 간호사들을 산후조리 기간에도 엘리베이터 등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여하튼 이 건물에서 보낸 2주 동안 나는 마치 일본의 유명한 소년만화에 등장했던 '여자들의 섬' 같은 곳에 사는 느낌이 들었다.
출산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나는 1박 2일 입원, 13시간 진통, 과다 출혈에 후처치에서 수면마취를 한 케이스다. 병동에서도 '빨리 나온 케이스보다 2~3배는 힘들게 낳았네'라는 말을 듣는 산모가 됐다.
그래서인지 출산 후 내 상태를 보는 간호사샘이나 담당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겪은 경험과 ‘꿀팁’들을 알려주려고 했다. 처음 만난 나에게 자신의 자녀유무, 과거의 경험, 자세한 신체 부위에 대한 고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출산 당시를 떠올리면 가장 고마운 사람 중 한 명인 간호사선생님도 그랬다. "할 수 있어요"를 외치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나는 계속 "못한다고!"소리치고 "안 한다고!" 소리를 쳤다. 반말인지 존대인지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은 아니었다. 간호사선생님은 나에게 "나도 여기서 아기 낳았어요. 무통 없이 3시간 진통했어요. 할 수 있어요"라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줬다.
사실 그런 위로가 먹힐 정신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그만하겠다, 수술하겠다"라고 소리 질렀다. 간호사 선생님은 "지금부터 수술하려면 1시간 대기를 해야 한다. 그전에 나올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 와중에 나는 1시간 더 진통을 겪고 수술도 하느니 무조건 1시간 이내에 아기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힘을 줄 의지(?)가 없던 내가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힘주기 연습에 진심을 다한 계기였다.
진통은 좀 더 길어져 무통을 뺀 이후 1시간 30분이 지나고 출산을 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무통 주사를 뺀 후부터 거의 미친 상태의 나를 계속 달래고 위로하며 전문적인 손길로 분만을 도와주셨다.
말이 1시간 30분이지. 무통 주사도 끝난 상태에서 자궁문이 다 열리고 난 후 진통은 최고 단계의 진통이었다. 2분마다 한번 그 정도의 진통을 1시간 30분 동안 반복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애초에 빠르게 수술을 결정했던 것이 나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온갖 고생 다하고 수술까지 했다면 억울하니깐 내 경우엔 자연분만이라도 한 것이 다행인 상황이었다.
수면 마취에서 깬 후, 남편에게 그분이 없었다면 진통이란 진통은 다 겪고 결국 또 수술대에 올라갔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편에게 저분께 케이크 등 간식을 사서 감사하다고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산후조리 도중 엘리베이터에서 해당 간호사선생님을 다시 마주친 적 있어서 또 한 번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육아는 남편과 함께 한다고 하더라도, 임신과 출산은 온전히 여성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 때문에 내가 입성한 이 신세계는 마치 지금까지의 세계와 완전히 다르게 여자들을 위주로 돌아간다. 물론 남자 전문의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여성 전문의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분만에 있어서는 의사가 개입하는 순간보다 대부분이 여성인 간호사 선생님들과 훨씬 오래 함께한다. 남편은 진통 내내 나와 함께 있어주었지만, 결국 '진짜' 분만의 순간에는 의사와 간호사 4명이 들어왔고 "남편은 나가세요"라고 말한다. 어찌 되었든 그 순간에는 나 혼자 고통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거의 매 순간 내 곁을 지켜주는 남편이라는 사람은 나가라고 하고, 낯선 여자들과 마주치는 인생의 가장 큰 고통과 환희의 순간이라니.
그렇게 태어난 아기의 이름표에는 ‘000(내 이름) 아기’라고 크게 쓰여있고, 남편 이름은 첫날만 확인용으로 작게 쓰여있다.
이 세계에서 여자들은 경쟁하지 않고 서로 동병상련을 느낀다. 하나라도 자신의 경험을 나누려고 하고 도우려고 한다.
산후 조리원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출산 이후 하루하루 변하는 멘탈과 신체 변화에 대해 이곳의 전문가들은 이미 수많은 경험으로 인해 대부분의 진행 과정을 알고 있다. 아기가 빠져나간 자리에서 가득 차는 가스로 인한 배앓이, 유축기를 처음 써보며 느끼는 황당함, 3시간 만에 한 번씩 짜내야 하는 젖, 모유수유 양에 대한 죄책감, 가슴 고문과 가까운 가슴 마사지 시간,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눈물과 그에 따른 우울감 등.
나에겐 인생 첫 번째로 겪는 감정들이고, 큰 위기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베테랑인 산후조리원 담당자들에게는 당연한 수순일 뿐이었다. 담담하게 기계처럼(?) 나오는 그들의 조언에 나는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누구나 다 겪는 수순이구나, 나만의 걱정과 불안과 같이 느껴지는 일들도 모두가 비슷하게 겪는 일이구나,라고 생각이 변환되자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아니 다른 사람들은 다 이러고 살았단 말이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는 이 세계가 결국 여자를 '진짜 세계'에서 고립시킨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러한 관점으로 이 세계를 부정적으로 느꼈을 것 같은 내가, 이제는 막 발들인 새로운 세계를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다. 불안하고 걱정되는 한 편 '이 세계'에 발들인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출산 전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 지금도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내가 겪어왔던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내 인생이 건너가길 바랐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