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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May 23. 2023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해"라는 말

어느 때든 좋은 점과 힘든 점은 공존한다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해~"

임신 막달 즈음 자주 들었던 이야기이고 맘카페에서도 자주 나오는 관용어구다. 보통 막달에 들어서 힘들다는 호소를 하는 글에 자주 달리는 댓글이다.


나도 다른 임신부와 마찬가지로 막달에 "차라리 아기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육아가 아무리 힘들다고 하더라도 내 몸 자체가 불편한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군가가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해"라고 말하면 짜증이 났다. 난 지금 너무 무겁고 힘든데 도대체 뭐가 편하다는 걸까.


게다가 이런 말은 마치 "너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야, 애송이 같으니라고"같은 태도로 여겨졌기에 불쾌했다. 사실상 인터넷에서 많이 마주할 수 있는, 누군가가 힘듦을 호소하면 "내가 더 힘들어"하면서 '불행 배틀'을 시작하는 모습과 똑같았다.


임신 막달에 자주 찾았던 집 근처 카페에서 본 풍경. 몸은 무겁지만 외출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 집 근처 카페에 자주 갔다.




더 웃긴 점은 아기를 낳고도 이 이야기는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신생아 키우기 힘들기를 호소하면 "신생아 때가 편해", "뒤집고 서면 진짜 더 힘들어"와 같은 말이 나왔다.


나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터넷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신을 한 사람에게는 '출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출산을 한 사람에게는 '젖몸살도 출산처럼 아프다', 조리원에서의 우울함을 호소하면 '그때가 천국이다', 집으로 돌아와 신생아를 키우면 '뒤집으면 더 힘들다', 100일이 지나면 '자아가 생기면 더 힘들어진다' 등등등. 또 크면 '초등학생이 되면 진짜 헬이다', '사춘기가 되면 정말 힘들다' 등등이 기다리고 있겠지. 도대체 안 힘든 날은 언제인 걸까. 이 정도 되면 그냥 '나 힘들다'는 말을 하는 사람의 입막음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이러한 말들은 '임-출-육'을 더욱 힘들게 느껴지게 한다. 사람은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이 힘듦이 곧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즉 희망이 있으면 그 힘듦을 조금 덜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앞으로가 더 힘들어'라고 하는 마당에 그 누가 임출육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에 물론 앞으로의 힘듦을 예고해 주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보다 늦게 임신을 했거나 임신을 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이런 비슷한 말을 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말들의 의도는 역시 '내가 너보다 먼저 ~한 일을 겪었다'는 잘난 척의 변종이었다.  


인생 35일차 아기의 뒷모습. 이렇게 아빠든 엄마든 ‘인간 침대’ 위에서만 잔다. 어디든 등을 대고 눕게 하면 ‘뿌에엥’하고 운다.




생각해 보면 그 어느 때든 그 어떤 사람이든 힘든 점과 좋은 점은 공존한다.


예를 들어 추진력이 좋은 사람은 그 사람으로 인해 새로운 일을 접할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지만, 너무 일을 벌이기도 하니 함께 있으면 피곤해지기도 한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그 사람으로 인해 외향적인 기회를 만들 수 있어 좋기도 하지만 나 외의 중요한 사람이 많기에 서운함도 동시에 느낀다. 반대로 신중한 사람은 보통 답답하다. 집순이인 사람은 재미가 없긴 하지만 내면의 탄탄함을 갖추고 있을 때가 많다. 친구가 별로 없는 사람 역시 나와 자주 놀아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다. 이같이 거의 대부분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임신과 출산, 육아 역시 마찬가지다. 임신 막달은 몸이 무겁고 온몸이 아프지만 그나마 외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가까운 카페나 마트도 자유롭게 갈 수 있고 아기가 울지도 않기 때문에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물론 포즈가 불편하겠지만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을 수도 있다.


신생아 키우기도 역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3~4시간 (예민한 아기는 2시간 텀이다)에 한 번씩 일어나 기저귀 갈고 분유도 먹여야 하지만 아기가 아직 뒤집지도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잠시 눕혀놓아도 큰 불안이 없다. 그리고 엄청 귀엽다.


아이가 좀 크면 뒤집기에 일어서서 이것저것 입에 넣기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테지만 엄마와 아빠를 어느 정도 알아보고 웃음도 지어줄 수 있기에 모성애와 부성애가 커지는 시기라고도 한다. 그 외 자아가 생기면 아이의 고집 때문에 골머리를 썩기도 하겠지만 어느 정도 소통도 가능하기에 그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다.




그때그때마다 힘든 점과 좋은 점이 공존할 것이다. 인생이 '산 넘어 산'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산을 넘으며 힘든 사람에게 '앞으로의 길이 더 힘들어'라고 말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기보다, 지금 넘고 있는 이 산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운 풍경을 하나라도 더 공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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