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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Jun 10. 2023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 건 처음이야

육아 공부를 할수록 느끼는 것

아이가 태어난 지 2개월이 다되어간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육아 역시 정보는 흘러넘치고 어떤 말이 맞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특히 요즘 그놈의 '발달' 이야기 때문에 끊이지 않는 강박에 시달리게 됐다. ‘엄마표 놀이’, ‘엄마표 책육아’, ‘엄마표 영어’ 같이 ‘엄마표’가 붙은 여러 가지 단어들이 돌아다니면서 엄마는 아이에게 양육자를 넘어 최고의 교육자가 되어야 하더라. 최근엔 영어로 아기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


심지어 울지도 않고 혼자 잘 노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심심하게 두면 자극이 없어 발달이 늦어지는 건 아닐까' 같은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나는 안 그러겠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별 수 있나. 대근육 놀이, 소근육 놀이, 전두엽 발달 놀이, 엄마표 영어, 책육아 등등 키워드를 넘어 유대인 교육, 몬테소리, 프뢰벨, 영어 유치원, 국제 유치원, 이민 등의 키워드까지 훑어보고 나니 요즘 부모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만 남았다.



소위 '오은영 육아'로 대표되는, 부모가 아이의 요구를 미리 알아차리고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 주고, 훈육과는 조금 먼 육아 방법이 유행했다. 이제는 또 다른 결의 이야기들이 주목받는다. 지나영 교수의 '본질 육아'라든가 훈육과 부모의 권위를 강조하는 조선미 교수 등이 있고 '전통 육아'를 강조해 온 대표주자 하정훈 소아과의사가 있다.


하정훈 의사는 부모들의 '00개월인데 어떤 놀이를 해야 하나요?'같은 질문에 모든 발달은 일상 경험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특정한 발달놀이를 하면 해당 놀이는 더 잘 해낼 수 있겠지만 다른 놀이는 더 잘한다는 보장도 없으며, 아이가 스스로 놀이를 개발하는 등 인생에서 필요한 적응 능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정훈 의사가 항상 이야기하는 것, '교양 있는 부모의 적당한 배려'가 있으면 아이는 잘 클 것이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RSPNi_-ZRY




그런데 문제는 기본을 강조하는 육아법이 현대사회에서 실천하기 쉽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24시간 모자동실 조리원'부터 쉽지 않다. 대부분 엄마 혼자 아이를 보살피는 환경에서 모국어 대화를 하루 6시간 이상 노출하는 것도 쉽지는 않고, '매일' 이웃을 만나 일상 대화에 노출시키면 좋다는 조언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정재호 소아과 의사의 책 '잘 자고 잘 먹는 아기의 시간표'에서도 기본을 강조한다.


잘 자는 아기로 키우려면 해 뜨고 해 지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오후 7~8시에 조명을 끄고 아이를 재우는 의식을 시작해야 하는데 맞벌이 부부가 많은 요즘 시대에 오후 7~8시에 조명을 끄고 아이를 재울 수 있는 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TV나 PC, 핸드폰의 영상에서 나오는 빛이 아이에게 너무 큰 자극이 된다고 하는데 아이를 위해 TV를 끄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https://m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2453762932?cat_id=50010100&frm=MBOKMOD&query=잘+자고+잘+먹는+아기의+시간표&NaPm=ct%3Dlipi3p28%7Cci%3D1c0f7211370d8f47c04bd1a49113e8e4a742ff1b%7Ctr%3Dboknx%7Csn%3D95694%7Chk%3Dd930f21a53f6987cf92e69be61102eae3d5ee8ae



육아를 공부할수록 결국 아이를 키우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난다.

(정재호 의사의 책에서도 나오는 말이다.)


매일 루틴을 정해 일정한 의식을 행하고, 저녁에 TV를 보지 않고 일찍 자고, TV 대신 책을 읽으며, 자기 전 기도를 하며 마음을 차분히 하고, 매일 볕을 받으며 산책하고, 매일 이웃을 만나 먼저 인사하고, 놀이터에서도 아이와 둘이서만 놀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함께 노는 '좋은 사람'이라면 특별한 육아 방법을 공부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일상을 모두 바꿔야 하기에, 오히려 특정한 교육에 의존하는 것이 더 쉬워 보일 정도다.




사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심심하고, 더 나아가 '이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데 힘들겠구나' 따위의 생각을 했다.


토이의 '좋은 사람' 노랫말만 되새겨봐도, '고마워 오빤 너무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은 결국 당신과는 사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나. 나에게 '좋은 사람' 이미지는 그랬다.


소위 정의롭고 바르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을 것이라 여겨지는, 언론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도 그랬다. 삶을 바르게 살아가려는 사람을 보면 '나는 저렇게 못 살 것 같아' 생각했다. 그저 최소한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사람을 조롱하지 말자는 태도로 살아왔었다.  


이랬던 내가 육아 공부를 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매일 하게 된다. 물론 온갖 정보를 모두 찾아보고 하나하나 실행하기 어려운 초보 엄마의 자기합리화일수도 있지만.


적어도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가는 때가 왔을 때, 아이를 데리고 온 다른 엄마나 아빠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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