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있는 자리에 따라 풍경은 달라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육아는 누군가의 피드엔 전혀 인스타그래머블하지 않겠지만, 누군가의 피드에선 매우 인스타그래머블하다. 너무 뻔한 이야기인가. 어쨌든 육아 역시 다른 콘텐츠 분야와 마찬가지로 '필터버블'(자신의 관심사에 맞게 제공되는 정보에만 의존해서 사용자가 자신만의 거품에 가둬지게 되는 것)이 적용된다.
*인스타그래머블: 인스타그램(instagram)과 '할 수 있는'이라는 뜻의 영단어 'able'을 합쳐 만든 조어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라는 뜻이다.
우선 육아가 인스타그래머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과거의 내 생각이다.
저출생의 이유는 한국의 경쟁적 문화, 교육 시스템, 소극적인 정부 정책, 기업 문화의 문제, 아이에게 친화적이지 않은 사회 분위기, 젠더 갈등 등 수많은 이유가 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아기를 낳기 전 나에게도 육아 콘텐츠는 '인스타그래머블'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육아가 남들 보기에 부러움을 살만한 것이나 '좋아요'를 많이 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는 말이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과 같이 멋진 라이프 스타일을 원했고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이 '인스타에 올려 좋아요를 받을 만한 것'이길 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명품을 사는 이유도 그렇고, 주말마다 1~2시간을 웨이팅을 해서라도 핫플레이스에 가서 사진을 찍기 원한다. 맛집은 맛만 있어선 안되며 인스타그램에 올린만 한 외관과 음식 비주얼도 갖추어야 한다. 전시회 역시 사진을 찍을만한 곳이 많아야 인기가 있고 잘 팔린다. 캠핑이나 등산, 서핑 등도 자연을 즐긴다는 명분도 있지만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어 인기가 있다. 몸이 피곤하더라도 인스타그램을 업데이트할 수 있는 여행 같은 활동이라면 적극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일상은 우선 이러한 핫플레이스나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를 현격하게 줄인다. 셀카를 찍기에 부적절한 모습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임신과 출산을 하면 살이 찌고 탄력을 잃기 때문에 셀카를 찍을만한 기회도 적어진다.
출산 이후 아이와 외출을 하더라도 나는 멋진 사람으로서 멋진 공간에 앉아있을 수 없고 아이가 시끄럽게 하진 않을지, 무엇을 망가뜨리진 않을지 전전긍긍해야 한다. 남들에게 '멋진 사람'으로 비치기는커녕 '예비 민폐객'으로 낙인이 찍힐까 봐 두렵기도 하다.
2012년에 출판돼 여전히 인기 육아서로 자리 잡고 있는 파멜라 드러커맨의 책 '프랑스 아이처럼'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에밀>은 프랑스 양육의 암흑기에 출판되었다. (...) 노동자 부모들은 경제적인 이유로라도 보모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까지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류층들에게 보모는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선택이었다. 우아하고 세련된 사교생활을 즐기려면 엄마가 양육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머니의 결혼생활만이 아니라 즐거움까지도 침해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재미있지도 시크하지도 않다.' 한 프랑스 사회사학자는 꼬집었다.
(책 '프랑스 아이처럼', 116p)
이 구절뒤에는 <에밀>이라는 책에서 일명 '프랑스 육아'라는 근간을 어떻게 잡아갔는지 서술돼 있다. 육아라는 것이 어떻게 재미있어지는지에 대한 관점을 열어간다. 이 책에서 서술하듯 아주 예전부터 사람들들에게 육아는 '시크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나 역시 아기를 낳기 전 비슷하게 생각했었지만 임신 이후 수많은 '애스타그램'들의 향연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육아는 그 무엇보다도 인스타그래머블했다. 물론 그 인스타그램의 피드는 시크하거나 멋지다는 형용사와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귀엽고 웃기고 정보가 많았다.
우선 수많은 '애스타그램'은 귀엽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귀여운 아기는 '좋아요'를 받을만하기 충분하다. 광고 이론에서도 애, 동물, 미인이 시선을 잡는 3개의 원칙이라고 가르칠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인기 있는 인스타그램이 되려면 아기의 용모가 객관적으로도 이쁘거나 귀여워야 하는 것도 맞다. 다만 아기 외모의 기준은 어른의 그것과는 달라서, 천편일률적인 기준은 아니며 아기이기 때문에 그저 귀여운 점도 크다. 게다가 아기가 하는 짓은 용모를 떠나서 귀엽고 웃기다. 아기의 웃음이나 황당한 행동, 어른처럼 행동하는 아기 등은 인스타그램에서 큰 인기를 끈다.
또한 아기는 하루하루 성장하기에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정보가 다르다. 이것이 나는 '육아스타그램'이 흥행할 수 있는 핵심이라고 본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금쪽같은 내 새끼'인 것도 이런 점에서다. 아기에게 개월수마다 필요한 육아템이 다르고 교육법이 다르다.
임신이 시작된 날부터 주수마다 다른 증상을 맞닥뜨리는 것부터 시작해 병원 정보, 조리원 후기, 0개월 아기 키우는 법, 개월마다 해줘야 할 놀이, 젖병은 언제 큰 것으로 교체해야 하는지, 젖꼭지 교체 시기는 언제인지, 분유는 언제 뭘로 바꾸는지, 수유양과 텀은 성장 시기마다 어떻게 늘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 아기의 다양한 증상이 정상적인지 아닌지, 이럴 땐 소아과에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우리 아기가 고개를 왼쪽으로만 보는데 이게 사경인지 그냥 정상적인 성장과정인지 등등등 끊이지 않는 육아고민이 계속된다. 이러한 육아고민들은 한번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 어제와는 또 다른 고민이 이어진다.
최근에는 오은영샘을 필두로 한 다양한 육아 전문가들이 나와서 육아법에 대한 정보도 늘어놓아서 그것도 숙지하다 보면 왜 '맘카페'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활발한 커뮤니티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육아에는 새로운 공부가 필요하고 정보가 필요하다. 물론 모든 육아 정보를 섭렵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찌 됐든 기본적인 육아법 공부만 하려고 해도 많은 정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정보가 많기에 인스타그램의 꽃, '팔이피플'도 육아 분야에 많을 수밖에 없다. 개월수에 맞는 장난감, (그놈의) '책육아'를 하기 위해 필요한 책들, 아이옷, 부모를 편하게 해 줄 육아템 등. 팔 거리도 넘쳐난다. 그렇기에 육아는 인스타그래머블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피드에 육아와 관련된 정보는 전혀 올라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피드에는 아기 영상과 육아정보, 육아아이템으로만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서있는 자리에 따라 풍경은 달라진다. 그 어떤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