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사에게 배운 돌봄의 자세
매우 뒤늦은 유행 편승이지만 최근 제일 재밌게 읽은 글은 에버랜드 판다 ‘푸바오’의 작은 할아버지 (푸바오의 엄마 판다인 아이바오의 아빠여서) 송영관사육사의 판다 사육에 관한 글들이다. 그는 에버랜드 홈페이지에 '아기 판다 다이어리'를 썼고 브런치에도 '전지적 뚠뚠이 시점'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게재하고 있다.
(처음에 이 글을 ‘유퀴즈’에도 나왔던 강철원 사육사가 쓴 것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사육사 송영관님이 썼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최근 브런치에서 그의 브런치북이 뜨길래 읽어봤는데 돌봄에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그의 글은 '돌봄은 이렇게 해라' 같은 가르침이 들어간 말투가 전혀 아니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 어떤 육아서적을 봤을 때보다 큰 반성을 하게 됐다.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고, 읽으면서 눈물이 줄줄 났던 글은 이것이다.
https://brunch.co.kr/@songbao/7
진실한 감정으로 마주하기에
늘 공평하고 순수한 행복의 길을 열어주는
그대는 나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예요.
그대와 나누어 갖는 자연스러운 스킨십과
그대의 아름다운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깨끗해지고 다시 태어나는 나를 매일 경험하지요.
그대가 허락해 준 경이로운 교감의 시간들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그대와의 시간을 기대하지만,
너무도 빠른 시간의 흐름에 잠깐은 헛헛할 수도.
난 항상 다짐하고 맹세하고, 또 바라요.
오염 많은 이 세상에서 기꺼이 당신을 위한 조연으로서
그대가 이 세상의 특별하고 위대한 주인공이 되길.
('송바오' 브런치 글 중에서.)
아이를 키운 지 며칠 되지도 않았던 어느 날 아이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서 화가 난 적이 있다. 아이를 달래려고 흔드는 손길이 거세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를 얼른 내려놓고 아이가 우는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괴롭게 변해갔다.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날 이후 내가 느낀 감정 때문에 아기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떨쳐지지 않았다. 많은 육아서에는 ‘너무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마세요’ 등의 말이 쓰여있었지만 가능하지 않았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거나 육아의 힘듦을 느낄 때, ‘엄마 컨디션이 더 중요하다’, ‘나 자신을 잃지 말고 육아하라’ 같은 말들도 공통된 조언이었다. 맞는 말이지만 위로가 되지도 않았다. 어떻게 해야 나를 잃지 않고 육아를 할 수 있는지도 와닿지 않았다. 그건 불가능한 일 같으니까, 그저 자기 위로 같은 말이니까.
오히려 ‘나를 잃지 말고 육아하세요’라는 조언은 ‘나를 잃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하지?’ 따위의 강박- 당연히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을 만들어 나를 더욱 피로하게 했다. 조언이 아니라 또 하나의 명령 같았다.
그러다 송바오 사육사의 글을 접했을 때, ‘기꺼이 당신의 조연으로서‘라는 문장을 봤을 때 나는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정말 기꺼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변화했다. 나에게 필요하고 적합한 언어였기에 마음가짐도 변했던 것 같다. 불가능하고 자기 위안적인 말이 아니고 현실적이고도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이 글을 읽은 후 며칠 동안 마음이 편안해졌고 육아를 하면서 힘든 마음이 들 때 이 문구를 되새기면 기분이 나아졌다. 문구를 되새기면서 아이의 얼굴을 보니, 며칠 전 흘렸던 슬픔의 눈물과는 또 다른 성격의 눈물이 흘렀다. 아이가 내 곁에서 내는 색색 거리는 소리에 대한 고마움과 감동이었다.
조연이라고 해서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한 엄청난 대배우여도 평생 주연만 할 순 없는 것이다. 대배우들도 그럴지언데 나는 더욱더 그렇다.
지금껏 나만 주연으로 출연했던 내 인생의 지난 영화들보다, 조연으로 출연하는 앞으로의 새로운 영화가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