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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Aug 31. 2023

토스트로 세우는 자존감

 루틴을 지키는 이유

매일 아침 똑같은 토스트를 만들어 먹은 지 4개월 정도가 됐다. 남편과 함께하는 주말이 아니면 거의 매일 이렇게 먹었다.


처음에는 아침에 토스트가 먹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점점 토스트를 만드는 손놀림이 익숙해졌고, 아침에 무얼 먹을지 고민하기도 싫어서 고정 메뉴가 돼버렸다. 이 토스트를 만드는 데는 5분 정도 소요되는 것 같다.


일할땐 출퇴근 준비를 하느라, 육아를 할 때는 아이가 잠을 잘 때 후딱 먹느라, 어떤 상황에서든 아침은 분주하다. 때문에 '아침 식사로 뭘 해 먹지'라는 고민은 사치가 된다. 매일 아침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다는 스티브 잡스의 선택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다.  



빠르게 팬을 달구고 식빵 한두 쪽을 올린다. 이때 큰 팬을 사용해야 한다. 빵 옆에 계란프라이와 햄도 함께 올린다. 빵 한쪽이 구워지면 뒤집어서 그 위에 치즈를 올리고 구워진 햄과 계란을 올린다. 이것들을 굽는 사이 두유를 한팩 따서 컵에 따르고, 콜드브루 커피를 넣는다. 그러면 나의 아침 정식이 완성된다.


한 팬에 빵, 계란, 햄을 한꺼번에 올린다. 그래야 빨리빨리 해 먹을 수 있다.
빵 한쪽을 먹을 때는 이렇게..


이 루틴이 손에 익어, 이제는 조금 더 복잡한(?) 양배추 전 토스트로 진화했다.


팬에 식빵 한쪽과 햄을 함께 올려 굽는 것은 같다. 그 사이 큰 그릇에 양배추와 당근을 조금 썰어 담고, 계란 2개를 깨서 휘젓는다. 구워진 빵에 치즈를 올려놓고 구운 햄을 올려 납작한 접시에 올려둔다. 그 사이 팬에 올리브유를 뿌리고 아까 만들어놓은 양배추 달걀물을 푼다. 그리고 그것들을 살살 구워놓은 후 커피를 만들어 놓는다. 양배추 전 두쪽이 모두 노릇하게 구워지면 모양을 잡아 토스트 위에 놓는다. 조금 더 발전한 아침 토스트 정식이다.




4개월 정도 똑같은 아침 정식을 만들어먹다 보니, 어떤 날은 솔직히 다른 음식을 해 먹고 싶을 때도 있었다. 물론 다른 메뉴를 먹는 날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날 같은 메뉴를 먹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신속함과 편리함, 익숙함 등의 감정도 있지만 약간의 오기(?) 같은 것도 섞여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같은 토스트를 먹는 사람이야'라는 명제를 증명해내고 싶은 것이다.


양배추 토스트를 만드는 모습.


왜 이런 이상한 오기와 강박을 가지고 루틴을 지켜나가려 할까 생각해 보았다.


최근 많은 이들은 루틴 있는 삶을 찬양한다. 나 역시 루틴 있는 삶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우선 루틴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 것이다. 또한 매일 '뭘 해야 할까' 생각하지 않고 빠르게 일들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함과 실용성도 있다.


그렇다면 오기는 무엇 때문인가. 사실 루틴을 지키든 지키지 않든,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다. 내가 오늘 아침에 양배추 토스트를 먹든 곱창전골을 먹든 전혀 알 수도 없고 상관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루틴을 지키는 사람들은 지킨다.


루틴은 결국 나만 아는 행위이다. 물론 요즘에는 SNS에 루틴을 지켰다고 인증하는 챌린지가 유행이기에 남이 알게 되기도 하지만, 그런 챌린지를 하지 않는다면 루틴을 지켰는지는 나밖에 모른다.


바로 그 때문에 루틴을 지키는 일은 남의 평가에서 자유로운,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일이 된다. '나는 세상의 평가와도 상관없이도 이렇게 정해진 일들을 해내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에서 자신감이 피어나게 된다.




꼭 아침 토스트를 먹는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이런 행위들을 강박적으로 지켜왔던 것 같다. 좋은 음악을 찾아 나의 외장하드에 차곡차곡 모아두는 일, 책을 읽고 메모해 분류하는 일, 혼자라도 예쁘게 음식을 담아 먹는 일 등이다.


이 일들은 남이 전혀 알 수 없지만 (물론 친해진 사람들에게는 나의 외장하드나 메모장을 보여주며 종종 자랑을 하긴 한다..) 나 혼자서 '나는 이런 음악을 저장해 놓고 혼자 즐기는 사람이야.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야. 나는 혼자서도 단정하게 먹는 사람이야' 같은 만족감을 준다. 그리고 이 만족감은 언급하기 조금 지겨운 단어지만 '자존감'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시험 성적과 학벌이 좋은지, 집안이 빵빵한지, 몸매가 좋은지, 노래를 잘하는지 혹은 끼가 있는지, 외향적인지, 좋은 회사를 들어갔는지, 평판이 좋은지 등으로 나를 평가하는 시선을 조금 업신여길 수 있으려면 스스로에게 이런 만족감과 자존감이 필요하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그래, 맘대로 평가해 봐. 너희들이 날 알겠니.' 생각할 수 있는, 믿는 구석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토스트로 세운 자존감이라 이렇게 알량한 건진 모르겠지만, 토스트로도 자존감은 채워진다.


거의 매일의 아침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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