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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Jul 02. 2023

차라리 유튜브를 하지

그러게 말입니다..

"차라리 유튜브를 하지."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종종 듣는 말일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게."

"맞아. 해야지. 글은 돈이 안돼."


유튜브를 해야 한다는 강박은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마찬가지다. 회사에서는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과 어쨌든 나 역시 유튜브를 많이 보기에, 일도 할 겸(?) 실험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유튜브에 출연한 적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일을 빼고 유튜브를 촬영한 적도 있었다. 그 당시 성과가 엄청나게 좋지는 않았지만 나로서는 그다지 나쁜 성과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종종 몇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으니깐.



회사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이 스튜디오를 정리해 주고, 카메라를 세팅해 주고, 내 자리를 정해주고, '시작'을 일러주고, 촬영 중간중간 '컷'을 말해주고, 촬영본을 정리해 주고, 편집을 해주고, 영상을 업로드해 줬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하고, 대본의 틀을 짜고, 대본을 쓰고, 타이핑을 하고, 글을 위해 사진을 고르고, 업로드를 하고, 조회수를 분석하면서 성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유튜브를 위해 앞에 열거한 행위들은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보기엔 게으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누군가가 촬영과 편집을 해준다고 하면 또다시 출연 용의가 있기에 게으르고 새로운 일을 배우는 걸 싫어하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종종 숏폼 영상은 혼자 만들기도 하고, 언젠가는 촬영과 편집도 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나 스스로 어떤 정보를 얻을 때 영상보다 텍스트가 한눈에 들어와 편하고 빠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기는 기록들도 그렇게 한눈에 찾아보고 싶기에 영상보다는 텍스트를 선호한다.


내가 좋아하는 형식이 시대에 뒤처진 것이 돼버렸기에 그것을 열심히 하려는 나도 게으르거나 새로운 것을 마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슬픈 현실이긴 하다.  




글쓰기가 시대에 뒤처진 행위가 되다 보니 스스로 '나는 왜 글쓰기를 좋아할까' 묻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질문은 나 같은 나부랭이가 아닌 글쓰기 대가들도 피해 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조지 오웰은 그런 질문에 엄청난 책 '나는 왜 쓰는가'로 답변했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인데 그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


오르한 파묵은 2006년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문에서 이렇게 답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온 세상 사람들에게 무척 화가 나서 글을 씁니다. 제가 글을 쓰는 건 하루종일 방 안에 갇혀 있는 게 좋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바꾸지 않고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글을 씁니다.
저는 우리가 어떤 유형의 삶을 살아왔는지, 나와 다른 사람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는 모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온 세상이 알게 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저는 종이와 잉크 냄새가 좋아서 글을 씁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 무학을, 소설 예술을 믿기에 글을 씁니다.
습관이자 열정이기에 글을 쓰고, 잊히는 것이 겁이 나서 글을 씁니다. 명성과 명성이 가져다주는 관심이 좋아서 글을 씁니다. 그리고 혼자 있기 위해 글을 씁니다.



대가들도 글을 쓰는 동기로 자질구레한 감정들을 고백하니, 조금 평안이 찾아오기도 한다.


나에게 왜 글을 쓰냐고 묻는 질문에는 계속 쓰고 싶은 것이 있고, 가끔은 글을 쓰고 싶어 안절부절못할 정도라고 대답하고 싶다.  


쓰고 싶은 것이 대단한 통찰이거나 사회적으로 올바른 말이기에 쓰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면서 내 머릿속에 쏟아지는 말들과 요즘엔 아이 입에 젖병을 물려주고 앉아있는 시간,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생각들을 기록해두고 싶어서다.


가끔씩 어떤 생각이 나면 빨리 쓰고 싶어서 안달 난 상태가 된다. 나 혼자 재미있고 나 혼자 기발한 생각일 게 뻔하지만 스스로 "아 이 생각 너무 재미있는데?" 하면서 머릿속으로 제목과 초안을 짠다.


기사를 쓸 때도 가~끔(;;) 빨리 기사를 송고하고 싶어서 안달 난 때가 있었다. 평소에 너무 좋아했던 사람과 만나 유용한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 기사라든가, 한 전문가가 문제를 정갈하게 정리해 줬을 때, 기자회견장에서 '헉'하는 광경을 봐버렸을 때, 현장을 지켜보면서 눈물이 나버렸을 때 등은 그 이야기를 빨리 기사로 쏘고 싶어서 안달 난 상태가 된다. 물론 매일 이런 마음인 것은 아니다. 사실 좀 드물다.  




일을 하지 않고 쉬면 글쓰기를 멈출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엔 일할 때보다 훨씬 더 열심히 기록하려고 한다. 내가 아직도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하다니 놀랍기도 하다.


머리를 말리면서도 글에 대해 생각하고, 머리를 다 말리지도 않았는데 생각이 날아갈까 봐 축축한 머리로 노트북 앞에 앉기도 한다. 머리를 충분히 말리다가 아기가 깨면 오늘 하루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는 1시간 뒤에 올지, 혹은 내일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쓰고 싶어 안달 난 상태가 되기 때문에 계속 글을 쓴다. 


단순하다. 글쓰기를 좋아하기에. 그래서 문장력도 구리고 그다지 깊은 통찰은 하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글을 쓰고 그나마 밥을 벌어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을 촌스럽고 흔한 단어로 말하자면 열정 같은 것이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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