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아마추어처럼, 대충 만든 느낌이 풍기게, 그러나 메시지는 진지하게 넣는 것이 내 전략이었다.
기말고사 결과로, 다가오는 대입에 지친 기색들이 보인다.
늘 방긋방긋 잘 웃고 다니던 친구가 정오표 확인을 하고 굉장히 우울한 얼굴로 앉아있는 모습엔 마음이 짠하고 아렸다. 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이 정말 피곤하고 지루해서 누워있는 것인지, 학교 생활이 힘겹지만 출석일수는 채워야 해서 영혼은 집에 두고 몸만 학교에 보낸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사람이 만약 80살까지 산다면, 16~20세의 기억은 뇌의 어딘가에 저장되어 60여 년 동안 그 사람과 함께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이 어떤 기대와 목적을 가지고 학교에 오든 '내가 했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억 하나는 가지고 학교 밖을 나가길 바란다.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인포그래픽을 제작하는 활동을 한 뒤, 느낀 점을 적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
- 쉽게 뚝딱 만들어내서 기분 좋았다. (참 쉽죠? 엉클: 밥 로스 타입)
- 처음엔 되게 막막했다. 그런데 인포그래픽 예시자료를 찾아보면서 조원들과 어떤 내용을 어떻게 넣을지 오랫동안 토의하면서 점점 구체적인 계획이 생겼다. 완성작을 보면서 너무 뿌듯했다. (위기를 힘을 합쳐 극복한 어벤저스 타입)
- 결국 시간 안에 다 만들지는 못했지만, 친구들과 토의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경험이 신선하고 좋았다. (성과에 상관없이 같이해서 좋은 로켓단 타입)
학생들이 나름대로 성취감을 느낀 것 같아서 보람 있었다.
복잡한 사회, 4차 산업혁명 사회를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회복탄력성'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대표적인 인물로 벡터맨을 들 수 있다. 벡터맨을 모르시는 분들께 부연하자면, 벡터맨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면 돼~"를 삶의 모토로 삼는 정의의 수호천사다.
여러 해 살아보니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면 돼'라는 생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해보니 되더라', '그때 이렇게 해봤더니 좋았다', '나는 이런 것도 해냈었다'라는 성공 경험과 성취감이 필요한 것 같다. 100세 인생, 10대의 기억은 8,90년 동안 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 또, 10대 때 경험한 작은 성공과 성취감은 20대, 30대를 나는 시절에 겪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극복할 힘이 되고, 이를 통해 얻은 새로운 성취감이 상태를 쉬이 '회복'하고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용수철(스프링)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늘, 방학 전 마지막 수업에서 쑥스러움을 담은 편지를 보노보노 ppt라는 반전미로 포장하여 학생들에게 전했다. 나와 함께한 학생들이 한 학기를 돌아보며 '생각보다 쉬웠다', '뿌듯했다', '좋았다'라고 느낀 순간을 확실하게 기억에 남겼으면 좋겠다. 그 기억이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잠시 가라앉았을 때에도 금방 티잉! 하고 올라올 수 있게 도와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벡터맨이든 스칼라맨이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끝§
일부러 글이 멈춰있지 않고 쭉 위로 올라가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좋은 말일수록 길게하면 진부하니까, 왠지 이런 말 하는 거 쑥스러우니까, 당장은 방학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