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내 집을 갖는다는 의미

40에도 어른이 된다.

by June

나는 84년생이다.
나이는 어느덧 불혹을 넘겼고,
늦은 결혼이었지만 예쁜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라 생각한다.

사실 좋은 짝을 못 만나기도 했지만,
6~7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같은 미래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결혼 생각도, 아이에 대한 생각도 미뤄두고 살았다.


그런 나에게 인생을 정신 바짝 차리게 만든 순간들이 있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지만,
남자는 크게 세 번 어른이 되는 순간이 있다고 믿는다.


결혼을 준비할 때,
아이가 태어날 때,
그리고 집을 살 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건, 세 번째 — 집을 사게 된 이야기다.

결혼하던 2021년은 집값이 미쳐 돌아가던 시기였다.
눈앞에서 전세보증금이 2천만 원씩 오르는데도
사람들은 계약금을 들고 아웅다웅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전세를 두 번 살고,
2024년 가을,
긴 임장 끝에 아내와 함께 첫 집을 계약했다.
사랑스런 아들이 곧 태어날 예정이었고,
우리가 바라던 조건에 부합하는 집이었다.

성북구, 강동구, 양천구, 서대문구, 종로구, 성동구를 돌며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관악구.
정든 송파구를 떠나는 데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사하는 날엔 후련했고, 사실 기뻤다.


결혼 당시엔 없던 큰 돈은
4년 동안 취미를 내려놓고 모은 거금이었다.
거기에 약간의 대출을 더해 마련한 집.
남들이 말하는 ‘강남3구’도, ‘마용성’도 아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보금자리다.


어디선가 본 웹툰 제목이 생각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뭐 부장"이었나.
이제는 나도, 우리 가족도 서울에 ‘내 집’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어 참 기쁘다.

예전 송파의 빌라에 살 땐
방이 3개여도 화장실 하나로 불편했고,
친구들이 하나둘 경기권에 아파트를 살 때
나도 그게 맞는 길인가 고민도 했다.

몇 년간 좋아하던 취미도 끊고,
멋 부리는 것도 미뤄두며
모든 걸 '집 이후'로 미뤄두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들에게 올인할 계획이라 사실 나를 위한 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세 번 어른이 되는 순간을 연달아 겪으며
집을 계약하던 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며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았다.

출산 후 정신없는 와중에도
더 나은 미래와 비전을 본 직장으로 이직했고,
연봉을 높이고, 최근엔 승진까지 해냈다.
이 모든 변화는 어쩌면
아들이 태어나고, 우리 집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목적과 목표가 생기고,
내가 그것을 이뤄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40이 넘어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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