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버티다] 실패에 엿먹이는 방법

by 오후의 책방
버틴다는 것은 완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웹툰 미생 中

TvN 드라마 <미생>이 대박을 치고, 윤태호 작가가 JTBC 뉴스룸에 초대됐어요.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 윤태호 작가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 시간 자체를 버텨내기만 한다면 뭔가 자기 자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까? 만화가가 되기 위한 재능은 뭐가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어려운 환경까지 버텨내는 것까지가 다 재능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웹툰 작가 강풀 님이 ‘가난에 대해서만큼은 윤태호 작가’라고 한 적 있어요. 다행히 그는 미생 덕분에 그동안의 빚을 다 갚았다고 하죠.


남들보다 유별나게 뛰어난 인물도 있긴 하죠? 하지만 제 가치관은 사람이란 누구 하나 빠짐없이 모두 위대한 존재라고 믿어요. 문화란 인간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자각하는 순간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생의 어느 때이든, 사람이라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물어요. 그 질문에서 작가는 위대한 작품이 창작하고, 음악가는 뛰어난 곡을 써요. 넓게는 철학과 사상과 정치와 문명이 탄생하고 좁게는 개인의 가치관, 인생관이 세워진다고, 저는, 그렇게 믿어요.


이 세상에 인간, 혹 인간이상의 지적 존재가 아니고선 누가 그런 질문을 던질까요? 만약 저 전봇대에 한 다리를 들고 거사를 치르던 개가 어느 날 “나는 왜 개인가?”를 고민한다고 해보죠. 그 순간 그 개는 더 이상 ‘개’가 아닌 존재일 거예요.
그렇게 위대한 인간이 이 각박한 현실에서 “버텨내기”가 힘들어요. 먹고사는 문제가 당장 코앞이고 직장에선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 박히네요. 갑 앞에서 을, 심지어 병, 정은 존재의 위대함은 뒷주머니에 넣은 채 연신 허리를 굽혀야만 해요.

대학원과정 때, 어머니는 아들의 학비를 마련하려고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서 일하셨어요. 밥 당번인 날엔 어깨에 늘 파스를 붙여야 했죠. 주말에 집에 들를 때면 어머니 어깨를 주물러 드렸어요. 어머니는 아들 뒷바라지가 행복하다 하셨어요. 전 생활비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대리운전을 시작했어요. 물론 어머니께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어요. 술 취한 고객이 횡설수설 혀꼬인 소리로 장소를 말했는데, 몇 번을 다시 들었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죄송하지만 한 번 더 말씀해 주세요. 계신 곳이 어디인가요?”
“에이 씨발 끊어 이 새끼야!”

주변엔 자동차 경적소리, 술집에서 터져 나오는 음악소리로 가득했어요. 세상은 쉼 없이 돌아가는데 나의 시간은 순간 멈춘 듯했어요. 먹먹한 마음을 쓸어내리고 고객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불쾌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아직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툴렀습니다. 다음번에 다시 이용 부탁드립니다.”

잠시 뒤, 그 고객이 다시 전화가 왔어요. 조금 더 정돈된 목소리였어요.
“미안하지만 다시 와줄 수 있어요?”
“그럼요, 알겠습니다.”


장소를 재차 확인하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먼저 와 있던 다른 대리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었어요.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해 그 사이에 부른 대리를 취소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자신이 왜 다시 나를 불렀는지 이유를 말해주었어요.

“난 지금 대구 라디오에서 *** 진행을 맡고 있어요. 얼마 전까지 서울에서 일하다 너무 각박하고 힘겨워서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학생 문자를 받고 갑자기 내가 처음 서울에 올라갔을 때가 생각났어요. 내가 이러지 않았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거칠게 되었나,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미안하고 또 고마웠어요.”

그는 도착해서 이리저리 차 안을 뒤졌어요. 아마 제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찾질 못했나 봐요. 대신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주었어요.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때 꼭 연락을 하라'라고 했어요.

몇 번 고민을 하긴 했지만, 연락하진 않았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부끄럼이 많고 선 듯 먼저 연락하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하지만 그 명함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어요. 일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 버틸 수 있는 부적 같은 것이랄까...


대리운전 고객은 당연히 술에 취한 사람들이겠죠? 대체로 나이가 꽤나 지긋한 분들이었어요. 나이 어린 내게 자신의 젊은 시절이나 지금 처한 상황을 허물없이 말해주었죠. 다시 보지 못할 사이어서인가,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가볍게 털어놓았어요. 낯선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참 드문 경험이었어요. 물론 가끔은 더러운 꼴도 봤죠. 하지만 대부분은 전투가 끝나고 투구를 벗듯, 무거운 창을 내려놓듯, 시트에 기대어 이야길 시작했어요. 그런데 단 한 사람도 '지금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한 사람이 없었어요. '모두 이루었노라' 말하는 사람도 없었죠. 웃으며 말하다가도 어느새 긴 한숨을 쉬었어요. 하루를 술로 버티든, 담배로 버티든 아이들의 웃음으로 버티든 모두 자신들은 '버텨가고 있다'라고 했어요.
벌써 10년도 넘은 옛 기억이에요.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자리에서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질문에 '잘 지내요.'라고 말했다가 '다 힘든걸요.'라고 얼른 말을 덧대었어요.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이 미안한 세상이 된 것 같아요. 나만 괜찮으면 안 될 것 같은 시대, 힘들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같이 힘든 척이라도 해야 하는 시대 같아요. 정말 괜찮냐고요? 그렇진 않아요. 그냥 무뎌서 그런 거예요. 어느 CP님이 '이 PD는 힘들어 보이는데, 본인은 힘든지 잘 모르는 것 같아'라고 하더군요.


모두들 그렇게 버티고 사는 가봐요.


눈앞의 실패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멀리 바라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해요. 그 목표를 다른 말로 희망이라고 해도 될까요? 매주 하나의 예식처럼 로또를 사는 선배가 있어요. 그는 “이건 희망이야. 아! 물론 되면 좋지, 근데 그보다는 이게 한주를 버티게 하는 힘이야.”라고 했어요. 일주일마다 희망을 호주머니에 품어요. 그렇게 한 주 한 주 힘든 일 있으면 로또를 생각하고 웃고 넘겨요. '내가 로또만 되면, 당장...'


아! 이건 우리 서민들의 애절한 인생가이군요. 복권사업은 절대 망하지 않을 거예요.



버틴다. 버텨낸다.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버텨나갈 힘만 있다면 우린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행복하다고 큰 소리로 말하진 못하더라도 내겐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비록 내 과거는 성공한 적이 없지만, 내 미래는 실패한 적이 없다고! 실패에 엿 먹여 보겠다고!
버티고 있는 그대, 그대의 로또는 무엇입니까?


버티다 = 희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부끄러움, 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