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인성을 감추지 못한다

심성에 대하여, 셋

by 오후의 책방

내가 대학 시절, 연구조교로 있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지도교수님 연구실 한편에 내 자리가 있었다.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정교수 바꿔." 불쾌함이 있었지만, 다시 물었다. "실례지만 어디라고 전할까요?" 돌아오는 대답은 더 안하무인이었다. "바꾸라면 바꾸지 뭐가 말이 많아."

조금 고민이 되었지만 우선 교수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단다. 교수님은 "하하, 총장님이셔, 그 양반이 원래 좀 그래."라고 하시며 전화를 받으셨다. 조금 긴 시간 동안 통화하며 간간히 농담도 건네시고 부드럽게 달래며 대화를 이끌어가셨다.


몇 년이 지난 뒤에, 한 기사를 통해 총장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총장직에서 사퇴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연유가 부끄러운 내용이었다. 네가 이제 성인이라 생각하고 가감 없이 그대로 전할게. 총장실에는 비서의 역할을 하는 도우미 학생이 있었는데, 외부 손님이 방문하면 의례히 차를 내오는 역할을 시켰다고 한다. 하루는 손님이 그 학생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는데, 다방에서 일하는 아가씨로 속되게 표현했다고 하는구나. 이 문제를 비롯해 잦은 성희롱과 인격모독이 알려지면서 불명예스럽게 사퇴를 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제자로 널리 알려져 있고, 피터 트러거의 책은 대부분 이 사람을 통해 번역 출간되었단다. 나 또한 피터 드러커의 책을 여러 권 심독해서 읽었는데, 기사를 읽고 나서 문제의 총장님 성함이 어디서 본듯하여 찾아보니 바로 내가 그렇게 재독, 삼독 했던 책의 번역자였더구나.


지식은 인성을 감추지 못한다.


어제저녁에 너희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 잠시 누워있다 나와보니, 큰아이가 둘째를 씻기고 옷도 입혀 나갈 채비를 모두 해두었었단 이야기를 들었다. 기특하고 고마웠단다. 아직 어린 큰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고, 평소에 씻을 때 투정을 부리는 둘째도 형이 이끄는 데로 잘 따라주었고 말이야. 아들아 심성이 드러날 때는 언제일까? 물론 홀로 있는 때에도 중요하겠다만, 우리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어떤 지식이나 깨우침도 결국 사람들 가운데에서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말은 마음의 소리, 행동은 마음의 자취

늘 이 말을 새겨두었으면 좋겠다. 지식과 직분의 높이만큼 인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더구나.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덕이다. 덕은 '진리를 담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라고 배웠다. 천리가 시간의 축적 위에 사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곧 역사다. 수천 년 전의 제왕의 통치 경영학이나, 오늘날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의 경영학이나, 결국 경영학은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다. 사람을 존귀한 존재가 아니라 이윤추구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그 사회는 사람 살아갈 만한 곳이 되질 못하겠지. 안타깝게도 지금 아버지가 살아가는 시대는 이것이 만연하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공감력에서 '배려'가 나온단다. 너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생을 챙기는 마음, 형의 손길에 따른 마음 모두 어머니를 배려한 것이었겠지. 나이가 쌓이는 것만큼 그 마음이 커져서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식은 그런 큰 마음에 담겨야 세상에 쓸모 있는 지식이 될 거야.

늘 그렇지만 아빠의 잔소리는 가이드북일 뿐이야. 사랑한다.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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