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 하나

by 오후의 책방

네가 오늘을 기억할까? 나이가 들고 또 그만큼 쌓인 기억 때문에 아마 오늘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오늘 남은 생애동안 잊지 못할 추억이 생긴 날이란다. 너도 나중에 겪어보면 알겠지만 말이야. 아버지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보낸 추억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법이거든. 아주 소소한 일조차 말이야.

오늘 너와 치과에 갔다. 이미 몇 번 이를 뺀 경험이 있으니, 넌 잔뜩 겁에 질렸었어. '아빠 가기 싫어' 하며 울먹이는 널 어르고 달래 치과에 데려 갔단다. 아빠는 대기 시간 동안 잔뜩 긴장하고 있는 네가 마냥 귀여워만 보였단다.

'아빠, 마취주사가 너무 아파.'

"하지만 마취주사를 맞지 않고 이를 뽑으면 더 아파. 마취주사는 좀 아프지만, 더 아픈 고통을 줄여준단다.

'하지만 나는 마취주사를 맞지 않고 이를 뽑은 적이 없잖아. 나한테는 마취주사가 세상에서 제일 아픈 고통이야.'


순간 네게 왜 그렇게 미안한 마음이 들던지. 어쩌면 나는 앞으로 오늘과 같은 일을 여러번 겪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살아갈 날에, 오직 너만이 느낄 고민과 고통을 난 알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나는 네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이겨내리라, 순탄히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 믿고 있었나 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힘겨움을 지고 살아가듯, 너 또한 너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갈텐데. 네가 힘들어할 때 나는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하며 함부로 말하진 않을까?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쓴단다. 오늘 네가 한 말을 잊지 말라고.


네가 고통으로 인해
마음이 병들지 않았으면 해

나는 20대에 몸을 다친 적이 있었다. 두 차례의 수술과 긴 재활 시간을 가졌는데, 이 과정에서 순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었단다. 한치 앞 벼랑 끝에 섰을 때, 문득 떠오르는 분들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만약 내가 여기서 생을 끝낸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될까, 그분들의 삶의 결실이 나인데, 만약 내가 이대로 내 삶을 끝낸다면, 아버지 어머니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거지?’ 그만 주저 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내려왔다. 난 오랫동안 나에게 왜 이런 고난이 닥쳤는지, 이 고통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단다.


너는 다시 물었지.

'아빠는 고통이 있으면 어떻게 해?'

"잘 이해할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난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해."

'내 마음에 내가 들어가서 나를 보는 것처럼?'

"와! 그런 멋진 표현을 하다니, 맞아 비슷해. 그 고통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해"


고통을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떤 경우는 불가항력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단다. 육체적인 고통이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 주변 사람들의 경멸과 외면을 받을 때도 있고, 억울하게 누명을 쓸 때도 있을지 몰라. 그럴 때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없을 때! 마치 한 발만 내밀면 까마득히 떨어질 것 같은 순간에 말이야. 이를 뽑는 일만큼이나 간단히 끝날 일이면 좋겠지만, 한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일도 있을지 몰라. 아들아, 네게 이런 힘든 시간이 닥쳐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내가 겪은 일이고 세상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겪는 일이라면, 네게도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올 때가 있겠지. 인생의 앞면은 고통이고 뒷면은 섭리란다.


아들아.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 때문에 네 마음이 병들지 않았으면 한다. 매 순간 너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너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단다. 엎어진 그릇마냥 네 마음이 병들어 있다면 빛이 네 마음 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단다. 네 삶이 너만의 것이 아님을 기억하렴. 네가 존재함으로 인해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오랜 선조님들의 삶이 의미가 있어지는 거란다. 너로 인해 또다시 이어질 후손도 말이다.

이를 뽑는 동안 네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일 밖에 없었지.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단다. 간간히 힘주어 내 손을 쥘 때마다, 마음이 아렸다. 그런데 마치고 나서 네가 한 말에 크게 웃었다.

"아빠, 나 주사 맞는 동안 고양이 왈츠를 연주했어. 맘 속으로, 아빠 손을 쥘 때 그거 연주하는 거였어."

네가 아빠가 걱정하는 것보다 더 강한 아이란 걸 다시 알게 됐다.

"그리고 아빠, 아빠 말대로 했어. 나도, 아플 때 들여다보았어. 그런데 정말 참을만하더라고."


아들아,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지금 마주하고 있다면. 그 고통을 너의 것으로 받아들이렴. 온전히 느끼고, 현실을 받아들이다보면 고통이 두려움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네가 알고있는 것보다 너가 훨씬 더 강하다는 것도 알게될거야. 그리고 아들아, 혹 너의 잘못으로 인한 빚어진 일이라면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빌었으면 한다. 네가 쌓아둔 것이 모두 무너지더라도 너는 변함없이 소중한 존재다. 너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나는 말이야. 너의 어떤 순간에도 항상 너의 편이다. 네가 아버지를 잊고 사는 순간에도 나는 너의 존재를 결코 잊을 수 없이 살아간다. 사랑한다. 아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식은 인성을 감추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