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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Apr 07. 2021

바보 같은 서울시장 선거

B급 비평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어느 정도 신처럼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고,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한 뒤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완수한 일이 정말 잘됐다고 선전하고, 한 걸음 나아가 앞으로 더 훌륭하게 완수할 자신이 있다고 선언하면서(물론 신은 이미 가장 훌륭한 세게를 창조했다가는 것에 만족하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웬만큼 과대망상 증세를 드러내야 하는 이 선거 기간... 중략.. 선거에 이기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유능한 정치인을 기대하는 유권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후보를 상상할 수 있을까? <저는 지금껏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잘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후보는 당선되지 못한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여기서 도덕주의를 설파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텔레비전에서 이런저런 정치토론을 보고 있자니 나의 옛 스승인 돈 첼리가 절로 떠올랐을 뿐이다.

- 움베르트 에코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중에서


돈 첼리는 움베르트 에코가 13살 때 선생님이었다. 그는 어깨에 잔뜩 힘들어간 풋내기 시절 에코에게 아무리 선하고 옳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뻐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특히 자만심에 빠져 떠벌리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지식의 박물관 에코는 어른, 아니 평생토록 잊지 않았다


 서울 사람이 아니라 그런가? 이번 선거는 시큰둥하다. 토론이나 유세도 슬쩍 보았지만 더 시큰둥해졌다. 뭘 그리 대단하다고. 잘한 게 있다면 정치인으로 당연한 거지. 그렇게 하라고 뽑아줬지, 유세는... 상대를 비난하는 수위는 갈수록 심해졌고, 어제 오늘은 총공세를 퍼부었다. 선거전략이겠지. 과장도 있겠지. 하지만 사실도 있지. 정치를 배운 적은 없어도 정치인들을 경험해온 어르신들이 어릴 적부터 내게 귀에 박히도록 해주신 말이 있다. "정치인은 큰 도둑놈이냐, 작은 도둑놈이냐 차이지. 도둑놈인 건 똑 같어~"


박영선 후보나 오세훈 후보나 두 사람 모두 참 정치에 오래된 사람들이다. 예전에 박원순에게 기대했던 정치, 안철수에게 기대했던 정치는 그들이 신선했었기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새' 인물이 나왔다면, 조금 덜 도둑놈이 된 사람이었다면, 아니 적어도 정치인이 잘하는 것은 내세울 것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이번 선거에 더 애정이 가진 않았을까? 그들이 비등비등한 도둑 축에 들어가지 않겠냐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 모두 서울 시장을  만한 자질과 능력이 있는 정치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정치가 달라질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에코는 스승 돈 첼리를 떠올렸지만, 나는 무슨 선거든 정치와 관련된 시즌에는 항상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설득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제 말 한 번 들어나 보세요. 에코의 말처럼 <저는 지금껏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바보 같은 정치인은 <노무현> 대통령 단 한 분 밖에 없었지 않았는가? 또 누가 있었나? 아니 아니 없었던 것 같다. 에코의 말대로라면 당선되기 힘들었을 텐데. 이 솔직한 사람은 기어이 정치인이 되었고, 어떻게 대통령까지 되었고, 어쩌다 온갖 비난을 받았고, 어쩌려고 그리 가셨는지... 바보 같은 사람, 한결같이 겸손했고, 반면 겸손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자존심이 강하셨던 그가 선거철만 되면 자꾸 떠오른다.


바보 같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바보 같은 정치인이 나오는 바보 같은 서울시장 선거, 아니 뭐 무슨 선거든지 상관없이. 그런 선거를 다시 한번 해봤으면. 그렇게 즐겁게 투표장에 아이들과 손잡고 갔으면.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어디 가서 강연할 때 절대로 빠트리지 않는 말 한마디가 신뢰입니다. 민주주의 못해도 신뢰가 있으면 사회가 유지되고, 민주주의를 해도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가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뢰를 우리 사회에서 최상의 위치에 있는 가치로 본다, 항상 그렇게 얘기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정책 신뢰성이 계속 문제가 되니까 이 또한 제가 또 부끄러운 일입니다. 일관성과 신뢰라는 것은 사실은 비슷하게 맞붙어 있는 것이지요.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원칙들이, 제가 존중하고 꼭 실현하고 싶었던 참여정부 최대의 목표가 지금 이렇게 지적받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아니면 좀 더 냉정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숙제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 연설> 중에서 200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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