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완은 올해 마지막 녹화를 끝내고, 송년회 겸 스태프와 회식했다. 이중 몇몇은 그와 함께 보름 가까이 강행군을 했던 터였다. 늦은 퇴근에 이른 출근, 집이란 그저 옷을 갈아입는 곳 정도였달까. 시끌벅적하던 시간이 지나고, 선배와 후배, 남자 셋만 남았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어떻게든 말로 꺼내면 고심이 사라질 거로 생각한 걸까? 지완은 뜬금없이 지난 일주일 동안 떨쳐내지 못한 ‘우’를, 깃털처럼 가볍게 파고들었던 그녀의 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놀란 듯, 두 사람은 찬물을 들이켰다. 그날 밤 일은, 지완이 말하기 전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을 테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모텔에 간 거야?” 선배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그대로 두고 올 순 없었어. 너무 위험해 보였고, 핸드폰도 없고 지갑도 없었으니까…. 처음 들어간 곳은 여자가 민증이 없으니 안 된다고 했어. 모텔촌 거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 있는 내내 여잔 내 품에 안겨 있었어. 춥다고 했어.”
“허! 본론만 말해, 자꾸 뜸을 들이네. 그래서 잤다는 거야?” 선배가 다그쳤다.
“형, 그 여자 왜 그냥 두고 오지 못한 거예요.” 후배가 자못 진지하게 물었다. 오랫동안 참았던 말을 하게 해주어서 고마웠다. 먼저 말하기엔 이상한 대답이란 걸 지완도 알았다.
“향기 때문에… 향기가 났어. 시린 두 손이 두꺼운 외투 안으로 파고들 때, 긴 머릿결이 가슴에 닿을 때, 향기가 났어. 밀어내기가 싫었어.“
역시나, 말한 자신도 이상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두 사람 지금 내 말 핑계 같아?”
선배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백프로 핑계지! 말도 안 돼.”
가볍지 않은 후배가 지완을 대신해 변명을 달아주었다.
“아냐, 그럴 수도 있어. 후각은 모든 감각 중에 가장 원초적인 거야. 장기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잖아. 뭐, 잊을 수 없는 향기 그런 거 아닐까? 첫사랑 같은?”
“그런 거 아니야. 너희 형수랑 나 CC였어. 이래 봬도 나 첫사랑과 결혼한 행운의 남자야.”
남자는 오른 검지로 코끝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네 말이 틀린 건 아닌 것 같아. 어느 때였는진 모르지만, 그 봄 내음이 나를 가득 채웠던 때가 있었나 봐. 그런데 기억이 안 나. 뭔지 모르겠어. 조금만 더 그 향기를 맡고 싶었어. 하지만 거기까지야, 내가 나한테 허락한 건. 그런데 여자는…”
숨을 고르고 남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심결에라도 ‘우’의 이름을 말하지 않으려 신경 썼다.
“여자는 침대에 앉더니 옷을 벗었어. 아니 바지를 벗었어. 그 얇은 카디건은 그대로 입은 채로 말이야. 일어나 내게 안겼어. 난 그러지 말라고, 잠깐 눈붙이고 택시 타고 가라고.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지갑에 있던 돈을 모두 꺼내 일회용 칫솔과 싸구려 콘돔이 있던 테이블에 올려두었어. 여자는 내게 키스하려 했어. 난 고개를 돌렸어.”
“아니, 왜?”
두 남자가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선배가 후배의 볼을 찌르며 말했다.
“찌찌뽕”
도무지 진지함이라고는 없는 아저씨. 지완은 짜증 섞인 말로 ‘형, 나 그만할까?’ 물었다. 후배가 선배 팔뚝을 치고는, ‘이러니까 이 형이 아직 혼자인 거야’ 농을 치며 계속하라고 시늉했다.
“멈춰야 했어. 그렇지 않으면 정말 핑계가 되어버릴 것 같았어.”
‘쯧쯧’, 선배는 고개를 저었고, 후배는 끄덕였다.
“모텔 방에서도, 난 두터운 패딩을 갑옷처럼 입고 있었어. 여자의 두 손이, 향기가 내 몸에 배어들 것만 같았어. 입술마저 맞댄다면 난 무너질 것 같았어.”
선배가 빈 잔을 채우며 간 보듯 물었다.
“아! 참 나만 나쁜 놈인가? 부처님이 딴 데도 아니고 바로 내 앞에 있었네. 아니 서경덕 선생이라고 해야 하나?”
그 말이 비아냥까진 아니더라도, 의심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사내놈이란 게 여자의 유혹에 안 넘어갈 리가 없는데, 너의 말에 편집과 각색이 없느냐고, 진실을 말해보라고 미끼를 던지는 말 같았다.
“신발을 신고 돌아보니, 여자가 두 팔을 벌리고 있었어. 얇은 카디건만 걸친 채 말이야. 가야 했어.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였어. 더 늦을 수가 없었어. 정말 이상한 일이야. 내 시선은 여자의 아래를 보지 않았어. 그리고 여전히 향기만 선명히 떠올라.”
지완도 술잔을 비웠다.
“형, 의도적으로 접근한 거라 생각 안 해봤어? 얼마 전 뉴스에, 다음날 강제로 당했다고 신고했다는 뉴스 말이야.” 후배가 물었다. 그녀와 있는 동안 그런 의심을 했었던가? 대답을 찾기도 전에 선배가 끼어들었다.
“맥락을 보면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그 여자도 하필 그러고 싶었던 날이었나 보지.”
“정말 자기를 이대로 두고 가버릴 거냐고 물었어. 난 시계를 봤어. 카운터에 내려가 아주머니께 전화번호를 주었어.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걱정이라고, 핸드폰도 지갑도 잃어버렸으니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경찰이나, 나한테 연락하라고 했어. 주인아주머니가 ‘아이구, 세상에나!’ 외치며 쳐다보더라고. 거기까지야. 그게 다야.”
기대한 스토리가 아니라는 듯 선배는 잔을 탁, 내려놓았다. 호기심과 긴장감에 움츠렸던 후배도 어깨도 내려트렸다. 클라이맥스가 끝난 후에 남자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정말 일어난 일일까? 꿈꾼 것 같아. 사이렌의 연주에 홀린 건지, 관세음보살님이 몸을 바꿔 깨달음을 주시려는 건지 모르겠어. 그런데 내가 했던 정말 미친 짓이 뭔지 알아?”
“됐어, 이 사람아. 듣기 싫어. 그 여자랑 안 잔 게 젤루 미친 짓이야.” 선배가 말했다. 미친 짓이 뭔지 에필로그가 궁금했던 후배는 선배가 끊어버린 컷사인이 아쉬웠다.
“잘했어! 형, 어쩌면 큰일 날 뻔한 일이었는지도 몰라. 다음엔 길에서 그런 여자 보더라도 아예 도와줄 생각도 하지 마. 그게 제일 현명해.”
“그래야지. 이젠 정말 그럴 거야.”
후배 말이 마치 아내의 말을 Ctrl+C, Ctrl+V 한 것 같았다. 그날 밤 도착할 시간보다 늦은 시간에 들어갔을 때, 아내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하여튼 당신 만나서 나만 고생이야. 이럴 거면 차라리 회사에서 살아. 열불나 죽겠어, 정말! 가서 맥주나 하나 사와.”
아내의 명령에 안도했다. 이 정도로 혼나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아내에게 오늘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그러고 보니 선배처럼, 그도 아내에게 미끼들 던지듯 물었다.
“오다가 길에 술 취한 여자가 있더라고.”
아내는 맥주 거품을 닦아내며 소리쳤다.
“미친년 아니야? 그냥 놔뒀지, 당신? 또 오지랖 넓게 도와주려고 한 거 아니지?”
“그럼, 아니지.”
대답이 무조건반사로 나왔다.
“잘했어, 그런 년 도와줄 생각도 하지 마!”
‘그래야지, 그럴 거야’, 후렴구처럼 되뇌었다.
‘우’를 모텔에 두고 온 날, 남자는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이른 출근을 했다. ‘여전히 자고 있을까,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할까, 술이 깬 뒤에도 그녀는 날 보려 할까, 문은 열어줄까?’
지완은 모텔 카운터에 유리문을 두드렸다. 바로 아래에 누워있었던 듯이 어젯밤 보았던 주인이 엉킨 머리를 다듬으며 문을 열었다.
“혹시….”
“아, 그 아저씨네! 가시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여자분 내려왔었어요.”
친구에게 전화해야 한다고 해서 자신의 핸드폰을 빌려주었다 했다.
“술이 덜 깼는지 몇 번이나 번호를 잘못 누르더라고요. 지갑을 잃어버려서 와달라 하고, 얼마 있지 않아 한 여자가 택시를 타고 왔더라고요, 그리고 함께 나갔어요.”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지완은 인사하고 돌아섰다. 그에게 모텔주인이 말했다.
“아저씨 같은 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지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미친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어린 여자애에게, 추잡스러운 기대를 한 게 분명하다고, 모든 행동이 가식이었고, 제 마음이 오물처럼 더럽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종일토록, 지난 일주일 내내 지완은 불쑥불쑥 물었다.
‘너, 거길 왜 다시 갔어?’
남자는 혹시나 올지 모를 전화를 기다리며, 습관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시우, siwoo, 詩羽’를 검색했다. 모르는 얼굴, 얼굴을 감춘 회색 실루엣 프로필이 나열되었다. 거기에 ‘우’는 없었다. 지지리도 못난 것 같아 핸드폰을 가방에 두었다가 또다시 꺼내길 반복했다. 프로젝트의 마지막 주, 지완은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그만해도 될법한 지점에서도 더욱더 완벽함을 고집하며 몰아붙였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고해성사처럼 두 사람에게 ‘우’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거였다.
계산하고 나온 선배는 연초엔 분명히 끊겠다고 했던 담배를 물고, 웬일로 진지하게 물었다.
“이PD 당신 말이야, 혹시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 아니야?”
지완은 코끝을 쓰다듬었다.
“모르겠어.”
흰 담배 연기가 찬 겨울바람에 흩어졌다. 담배 끄트머리를 튕기며 선배가 말했다.
“우리 나이에 좋은 사람이 되려는 거, 순수하려는 거, 그거 어울리지 않는 짓이야.”
붉게 타던 불씨가 바닥에 부딪히며 산산이 부서졌다.
지완은 이틑날 모텔을 찾아간 일을 말하지 않은게 다행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끊어준 선배가 고마웠다. 향기 때문이란 말이 정말 핑계인지, 불손한 기대를 했는지, 무엇이 진짜인지 지완은 제 마음을 가려내지 못했다. 배어든 향기는 흩어질 것이라고, 털어내지 못한 깃털은 겨울바람에 날아갈 거라고, 믿기로 했다.
지완은 여자를 잊어갔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횡단보도에서 휘청거리던 ‘우’가 생각났다. 깃털처럼 내리는 눈을 보면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모르는 전화가 오면 스팸일 것이 분명했지만, 그녀이길 바랐다. 하지만 하루 중 그보다 수천 배 더 긴 시간은, 잊고 있었다. 시간은 기억을 절로 의식에 심연에 가라앉게 하나 보다.
사라지진 않겠지만, 억지스레 빛을 비추는 일은 없을 거라고 지완은 ‘우’가 떠오를 때마다 고개를 돌렸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 팀장, 잠깐 시간 되면 내 방에서 볼까?’
국장으로부터 카톡이 와 있었다.
“뭐…, 별일 아닐 수도 있는데.”
어차피 알아야 할 일이란 듯, 국장은 본론을 말했다.
“얼마 전에 술 취한 여자를 태우고 가는 걸 본 사람이 있었나 봐.”
“국장님, 그건…”
“알아. 벌써 두 사람이 당신 대신해서 해명하고 난리도 아니야. 그래도 당신, 제법 잘 살았나 봐.”
국장은 선배와 후배가 소문의 진원지를 찾고, 자초 지경을 설명하고, 소문을 진정시켰다고 했다.
“그래도 사람들 상상까진 막을 수 없어. 알지? 소문이란 게 들불 같고, 의심이 의심을 낳는 거. 뭐, 회사가 이런 일까지 관여하진 않겠지만, 조심히 해서 나쁠 건 없잖아. 2월에 인사이동 있으니까 평판이란 것도 신경 써.”
후배가 국장실 밖에 기다리고 있었다. 지완은 힘 빠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편 들어줘서.”
“신경 쓰지 마, 형. 어딜 가나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 있어. 더구나 여긴 말로 먹고사는 방송국이잖아.”
“그래…, 내가 감당해야지.”
넓은 엘리베이터 안에, 지완이 혼자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무심코 옆으로 한발 비켜섰다. 들어오려던 여성 직원 두 사람이 그를 보며 머뭇거렸다.
“먼저 가세요.”
두 사람은 다시 대화하는 척했다. 지완은 고개를 숙이고, ‘닫음’ 버튼을 눌렀다.
‘감당할 수 있을까?’
지완은 주말 동안 밀린 집 청소를 했다. 아이의 흰 티와 속옷을 자기 것과 함께 세탁기에 넣고 작동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멈췄다. 그의 옷에 무언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아이의 흰옷에는 배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얼룩, 오물 같은….
세탁기 뚜껑을 열어, 그의 옷을 하나씩 빼냈다.
아내가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내 마음이 어떤지 자기도 알 것 같지?”
“그래 알 것 같아.” 지완은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아내는 갑자기 순한 사람이 된 남편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 이 남편 봐라, 왜 반항하지 않지? 왜 이렇게 착해진 거야?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네?”
아내는 지완의 등 뒤로 다가와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는 아내의 두 손을 잡아 빼냈다. 이내 아내가 삐칠지 걱정이 되어, 말했다.
“나 냄새나는 것 같아, 당신한테도 배일까 미안해서.”
“우와! 뒤끝 있네, 이 남자. 아직도 이러기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냐.”
“아니긴 뭐가 아냐!”
아내는 지완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까르르 웃었다. 모처럼 그도 웃었다. 웃는 중에도 자신의 냄새가 아내에게 배일까, 아내의 몸에 손이 대이지 않으려했다. 아내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같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깔깔대던 아내가 말했다.
“큰 방에 가봐, 남편한테 줄 게 있어.”
아이와 아내가 자는 방, 신혼 때 아내와 몸을 나누던 방, 계절이 바뀔 때 옷을 새로 꺼내거나, 청소할 때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 방의 문을 열었다. 낯설었다. 화장대 위에 분홍빛 리본으로 포장된 작은 상자가 있었다. 남자는 어디선가 본 듯한 로고를 읽었다.
‘가브리엘 샤넬 GABRIELLE CHANEL’
“그땐 내가 오빠라고 불렀나, 선배라 불렀나? 자기 복학해서 썸타던 때 기억나? 오빠가 첫 데이트 때 뿌리고 나왔던 향수, 백화점 가서 아무거나 좋은 거 달라고 했다며? 이름도 모르고 말이야.”
아내는 멍하니 있는 그의 손에서 향수를 빼앗듯 가져와, 허공을 향해 뿌렸다. 빛을 머금은 알갱이들이 지완의 어깨에, 소매에 깃털처럼 내렸다.
“내가 당신 어버버거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이 남자 꼭 잡아야겠다’ 생각했지. 당신 그런 남자였어. 맑은 소년 같은 남자. 그런데 어쩌다 지금은 냄새날지 걱정하는 중년 아저씨가 되어버렸네.”
아내는 코끝 아래에서 남자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감성은 가득하지만, 감각은 무딘 남자. 짜든 싱겁든 늘 맛있다는 말만 하는 남자, 말로는 절대 자기를 못 이기는 감정을 표현할 어휘가 부족한 중년 남자가 힘없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남편, 나한테 당신은 늘 봄날 같은 남자야.”
지완은 ‘우’가 떠올랐다. 우에게서 ‘향기’를 분리해 냈다. 봄날 같았던 ‘소년’의 향기를 기억해 냈다. 눈이 아려왔다. 봄비가 겨우내 언 땅을 적실 때, 그처럼 아리며 스며들 것 같았다. 지완은 잊어버렸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을 틔운 날 지완은 사직서를 냈다.
이번 주 내내 인테리어 공사를 마무리하고, 편집 장비를 들였다. 오늘 드디어 기다렸던 간판업체가 도착했다. 꼴에 돕는답시고 후배는 2층에서 소리치고, 지완은 줄을 붙잡으며 들떠 있었다.
주머니에 진동이 울렸다. 엉거주춤 줄을 옆구리에 끼고 폰을 열었다.
‘그날 고마웠어요.’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누구지? 나한테 감사할 사람이 있나? 요즘엔 스팸을 이렇게 보내나?’
“형, 뭐해. 똑바로 잡아. 진짜 이름이 이게 뭐야? 춘향春香 프로덕션이라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리는 줄 알아? 아! 부끄러, 진짜 부끄러워.”
지완은 문자를 지우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야, 한번 들으면 절대 못 잊어. 누구도 잊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