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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Sep 18. 2019

인생은 배운 것이 무너지고 다져지는 과정이 아닐까?

상처 앞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세상 속에 살아간다는 건 너와 다르고, 네게 상처주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헤쳐나가는 과정이란다.


 오늘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지? 함부로 말하고 무시하는 친구과 다투었다고 들었다. 그 상황을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서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친구를 보면서도 결국 참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더구나. 내내 밝았던 네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물으니, 굵은 눈물을 갑자기 흘려 엄마도 참 당황했다는구나. 나도 마찬가지였단다. 속사정을 듣고 보니 참 억울하고 눈물이 날 만했다.

 네가 전에도 한 번 말한 적이 있었지? 그 아이는 화가나면 잘 참지 못하는 것 같다고. 다행이 네가 친구들의 성격이나 특징을 잘 이해하는 아이라서 감사한 일이다. 아빠는 네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네가 양보해라'라고 늘 교과서처럼 이야기해왔는데, 오늘은 나도 속상하더구나.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아빠가 초등학생일 때, 하루는 대청소를 하는 날이었어. 그 때는 교실 바닥이 마루바닥이었거든. 양초나 딱딱한 돌초로 나무표면이 거칠지 않도록 한번씩 문질러 주어야 했단다. 그날도 그 일을 마치고 마지막에 바닥에 떨어진 찌거기를 모아 뒷정리를 해야했었어. 선생님이 정리해라 말씀하셨지만, 아무도 하지 않고 미루고 있길래 내가 쓸어담았단다. 쓰레기장이 외각에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가져갔는데, 슬 귀찮아져서 가는 중간에 풀숲에 던져 버렸지. 양심에 찔리는 짓을 했단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이 터졌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돌아보다가, 창밖 화단에 양초를 버린 것을 보고 누가 그랬냐고 다그치기 시작했단다. 물론 내가 버린 곳은 화단이 아니라서 나는 손을 들지 않았어.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나를 보고 "네가 마지막에 정리했으니 니가 그랬지?"라고 소리치더구나. 아니라고 했지만, 나 또한 쓰레기장까지 가지 않고 풀숲에 버렸으니 어디에 버렸냐는 말에 정직하게 말하지 못했단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쓰레기장에요~'라고..

  

"모두 책상위로 올라가, 의자를 들어."

아마 1시간은 족히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선생님은 수업을 하지 않고 똑같은 벌을 주었다.

요즘 같아서야 할 수도 없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겠지만, 당시에는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단다. 아이들은 점점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어. 몇몇은 모여서 쓰레기 장에 양초찌꺼기를 찾기도 했지. 선생님은 나보고 정직하지 못한 녀석이라고 다그쳤고, 이 정도까지 오니 나도 오기가 생겨서 갈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을 했단다. 속으로 '그래도 나는 화단에 버리진 않았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할아버지 할머니께 억울하다고 울며 말했어. 학교를 옮겨달라고, 내가 그렇지 않았다고, 선생님이 다짜고짜 나를 지목하고 이후로 친구들이 나를 모두 원망하고 숙덕인다고. 한동안 친구들은 모일 때마다 이 이야기를 했지만, 시간은 흐르고 이 일은 잊혀져 가더구나.

결국 '범인은 잡히지'않았어. 아빠는? 그냥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시간과 함께 지나가더라.

한 참 뒤에, 한 친구가 말해주었단다. "네가 쓰레기 장으로 가는 걸 내가 보았는데, 내가 선생님께 말하려고 하니까. 00이가 조용히 있으라고 했어. 미안해, 그 때 솔직하지 못해서 너한테 미안했어."

괜찮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나도 정직하지 못했고.

 모두가 힘든 시간이었으니


어른이 된 아들아, 지금 이 글을 쓰는 아빠는 이제 마흔이 넘은 어른이다. 네 생각은 어떠니, 아이들 이야기라고 넘길 만한 일이니? 어른이 되었으니 좀 더 성숙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아빠가 보기엔 똑같아 보여서 말이야.

기업의 비리, 정치인들의 편가르기, 언론의 거짓말, 검찰의 오만과 사회적 낙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크기와 모양만 다른 양초를 가지고 다들 다투고 있는 것 같구나. 누군가는 사람을 도구처럼 부리고, 누군가는 해야할 일임에도 귀찮고 더러운 일을 미루고, 누군가는 정직하지 못하거나, 누군가는 근거없이 음해하거나, 누군가는 입을 다물고 있고, 누군가는 자기의 잘못을 감추려 남에게 죄를 덮어 씌우고, 또 누군가는 무관심하고. 그러다가 시간과 함께 잊여지고, 다시 다른 양초로 다투기 시작하고 말이야.


'정직해라'. '열심히 해라'. '양보해라'. 아들아. 아빠가 네게 이런 말을 자주 해서 미안해.

나도 그러지 못하는데, 네게는 그렇게 살아가라고 해서 말이야. 배운데로 살았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가르쳐 준대로 사람을 대하는데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긴다면, 아빠는 늘 네게 미안할 것 같구나. 그런데도 나는 네게 '네것부터 챙겨, 남이 너를 때리면 너도 같이 때려. 때론 거짓말도 할 수 있는거야.'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내겐 그것이 잘못이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마음 속의 소리가 있어. 그리고 네 마음에도 그렇게 속삭이는 너의 진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아빠는 '나도 너도' 그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믿어.


아들아. 인생은 배운 것이 무너지고,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 더 튼튼히 다져지는 과정인 것 같구나. 배운데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서, 배운 데로 살아가기 위해 네 마음이 더 강인해지길, 더 진실해지길 바라는 것이 아빠의 마음이다. 아들, 네가 이해하고 배운데로 되지 않을 때에는, 억울하고 속상할 때에도. Let It Be

네 마음에서 속삭이는 소리에 귀기울이고,

Let It Be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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