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기만 한 음식은 없음을>
추위에 유독 약한 사람들이 있다. 바람의 냄새가 달라지고 밤이 차가워지는걸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알아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나다. 하늘이 높아지면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고 비염 때문에 목소리가 잠기는 날이 생기기 시작한다. 습도계를 확인하고 습도를 잘 조절해주지 않으면 금세 감기에 걸리고 오들오들 거리다 미열에 앓아눕곤 했다. 11월부턴 전투태세를 갖춰 보지만 겨울은 너무 길고 겨울의 밤은 너무 깊고 차가웠다.
그런 나에게 있는 몇 안 되는 겨울의 좋은 순간들은 더 소중하다. 그중 하나가 어릴 적 엄마손에 붙들려 간 시장에서 돌아오던 길 손에 쥔 호떡 한 개였다. 종이 한 장 쭈욱 찢어 기름진 호떡을 감싸 건네주면 어린 두 손은 조심조심 받아 호호 불었다. 반죽을 먼저 조금 떼어먹고 나면 이제 진짜가 나오는 걸 아는 어린애는 마음의 준비를 하며 동그라미를 파먹었다. 입가엔 기름과 호떡 꿀로 반들반들해지고 우리의 걸음을 따라 달달한 냄새도 함께 집으로 향하면, 해지는 겨울길도 걸을만했었다.집에 가면 밥 먹어야 하니 언제나 나의 호떡은 하나였고 그건 가장 맛있는 호떡의 개수가 되었다.
자라 도시로 떠나고 새로운 장소, 새로운 음식에 매혹되면서 한동안 호떡은 뒷전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고여있는 추억이었다. 새로 이사 간 동네 시장입구에서 호떡 가게를 발견하고선 장을 다 보면 호떡하나를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호떡은 다시 한번 나의 달콤한 위안이 되었지만 그저 달콤하기만 한 음식은 없다는 걸 알게 된 사건이 생겼다.
시장에 들른 어느 날 호떡 한 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걸음을 옮기다 손글씨가 빼곡한 게시판 앞에 발이 묶였다. 박스를 찢어 쓴 듯 노란 박스 한 면에 호떡이란 글씨를 발견한 난 멈춰 서서 글을 읽어나갔다. 청년 둘이 어렵게 창업해 열심히 꾸려가던 호떡 가게를 임시공사하는 도중 이름한글자만 바꾼 호떡 가게를 바로 옆에 낸 사람들 때문에 속이 타들어간다는 글이었다. 내가 산 호떡 가게의 이름을 보니 나중에 낸 호떡가게였다. 길거리 음식들은 이름이 없는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해 왔었다. 호떡은 그냥 호떡이고 군밤은 그냥 군밤이다. 간혹 이 집 호떡이 더 맛있어서 일부러 그쪽을 거쳐 가 사 먹을 때도 있지만 거리의 음식들은 늘 거리 곳곳에 놓여있어 그저 발길이 닿으면 인연이 닿는 걸로 생각해 왔었다. 겨울의 낭만으로 여기던 따듯하고 달콤한 음식의 무게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여러 날이 지나 다시 그곳엘 갔다. 호떡 사건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지난번 샀던 호떡집의 긴 줄을 확인한 후 그 호소문 속의 호떡집을 향했다. 20대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내가 다가서자 인사를 건네왔다. 내 앞에도 내 뒤에도 줄 같은 건 없었다. 따끈한 호떡을 받아 들고 겨울의 거리로 나섰다. 바람이 차다. 이러다 호떡이 금방 식어버릴 것 같았지만 걸음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른 나이에 부모님의 품을 떠나와 지금껏 내가 번 돈으로 밥을 사 먹고 만들어 먹고살았다.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쓸 곳을 깨알같이 나누던 밤도 있었고 실직을 해서 집세 걱정에 잠이 오지 않던 밤도 있었다. 생계란 예쁜 카페에 앉아있어도 여행지의 빛나는 태양아래서도 잠시의 백일몽 같은 빛나는 순간을 떠 받치는, 생에서 가장 뜨겁고 절박한 그 무엇임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호떡은 기대감을 주는 음식이다. 한입 베어 물면 보통 밀가루 맛이다. 소가 나오려면 한두 입 더 베어 물어야 한다. 그래서 좋았다. 첫 한입으로 다를 보여주지 않는 기다림의 기대감이. 그렇게 오물거리다 달콤한 꿀이 나오면 그게 그렇게 달수가 없다. 따듯한 집으로 돌아와 그 호떡가게의 호떡을 베어 물었다. 이 집의 호떡은 좀 더 두툼하고 바삭했다. 하지만 두 집의 호떡은 모두 달았다. 맛있었다. 하지만 그건 힘든 날들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씁쓸한 달콤함이었다. 속상한 사람이 열심히 만든 단맛이었다. 달아도 슬픈 것, 향긋해도 허무한 것. 기대해도 다른 결과를 받아 들기도 하는 것. 기대감이 달콤함이 아닐 수도 있는 것. 호떡은 세상을 닮은 음식이구나!
음식은 누군가의 새로운 경험, 지친 하루의 위로, 피땀 어린 생계였다. 고단한 삶을 뜨끈한 한 그릇으로 위로하고 누군가는 그 한 그릇으로 자식을 먹이고 입힌다. 음식을 한다는 것. 세상 뜨겁고 치열한 행위다. 세상의 모든 음식들이 그 격정과 치열함 속에서 나온 것임이 피부로 다가왔다.
날이 따듯해지고 두 호떡집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 호떡들이 남긴 치열한 뜨거움은 잊히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안다. 이름 없는 음식은 많아도 세상 흔하고 평범한 음식은 많아도, 뜨겁지 않고 삶과 닮지 않은 음식은 없다는 것을. 음식을 사 먹는 것 해 먹이는 것 파는 것 모두가 얼마나 뜨거운 몸짓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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