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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후 Oct 20. 2023

설거지 하는 마음

<수세미 이야기>

수세미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본 건 처음이었다.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였다. 칫솔이나 비닐, 플라스틱만 문제인 줄 알았더니 흔히 쓰는 수세미들도 플라스틱 덩어리였다. 거기다 알록달록 반짝이는 실로 엮어진 수세미들에 세제를 묻혀 뽀득뽀득 그릇을 닦으면 미세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가득 하수도로 흘러들어 가 물을 오염시킨다고 했다. 그 후 제로웨이스트샵에 간 날 천연수세미와 설거지비누를 사 왔다. 나의 작은 부엌은 그렇게 줄어든 죄책감으로 평화를 찾았다. 하지만 난 잊고 있었다. 나에겐 정기적으로 배달되어 오는 수세미들이 있다는 걸. 계절에 한 번씩 엄마가 보내주는 택배상자엔 어느 해부터인가 알록달록한 수세미가 한켠을 차지했다. 어느 해는 강렬한 색감의 핫핑크 수세미였다 어느 해에는 파스테톤의 끝부분이 레이스가 달린 수세미였다. 써도 써도 줄지 않아 주변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다시 한 뭉텅이를 받고 보니 어쩌지 싶었다. 세상을 구할 순 없어도 강물은 덜 오염시키겠단 다짐에 불끈불끈했던 때였다. 다음에 엄마를 만나면 말해야지.



일 년에 몇 번 가는 엄마의 집엔 곳곳에 나의 물건과 기억이 있지만 이제는 타인의 영역이 되었다. 그곳에서 함께 밥을 먹고 과일을 먹었다. 엄마는 담아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엄마의 이야기는 늘 시간차가 있다. 굵직한 일들을 스피디하게 한번 , 그리고 나선 좀 더 세부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마도 나와 이야기를 한다는 반가움에 급하게 헤드라인을 말하고 나면 세세히 주변인물과 사건을 다시 자세히 말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엄마의 이야기는 사소하고 넓다가 잔잔하고 깊어진다. 제철 나물이야기에서 누군가의 병과 죽음이 있고 지금은 얼굴 못 본 지 오래된 사람들의 일상이 있다.

이야기의 끝에 나는 수세미를 다시 한 뭉치 받고선 말했다. 수세미가 일으키는 환경오염에 대해. 다음엔 내가 친환경수세미를 사서 주겠다고. 나름 합리적인 제안이라 생각했지만 왠지 엄마의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엄마는 수세미 뜨개질이 좋다고, 시간 보내기도 좋고 예쁘게 떠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게 좋다고만 답했다. 환경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약간 더 한 우리는 조용해진 채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다.



익숙하고 어색한 나의 옛 방에 선 금방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 아까 수세미를 꺼내던 엄마의 서랍장을 열어보았다. 첫 칸을 알록달록한 수세미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이. 한 30개는 될 것 같았다. 서랍을 닫는 손에 힘이 빠졌다. 다음칸을 열어보니 색연필과 종이뭉치가 보였다. 어딘가 익숙해 펼쳐보았더니 몇 해 전 내가 주었던 만다라 컬러링 북이었다. 둥근 원안에 빼곡한 반복적인 무늬 위 갖가지 색깔이 곱게 칠해져 있었다. 만다라는 그 순간의 감정을 잘 표현해 준다. 내가 말한 대로 엄마는 한 귀퉁이에 날짜를 적어놓았다. 7월의 어느 날 만다라는 수국색 같았다. 화사했고 푸르렀다. 가을의 어느 날엔 단풍이 들어 무게감 있게 노랗고 붉어 화려했다. 다시 겨울의 어느 날엔 어둡고 흐렸다. 이때는 엄마의 허리가 더 안 좋아졌을 때였을까? 아니면 무릎수술을 받은 후였을까? 아니면 무슨 힘든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 두꺼운 컬러링북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빼곡한 그림들은 2년 전을 마지막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사주는 걸 잊은 나를 발견했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엄마가 다 썼다고 했었는데.

불현듯 떠오른 게 있어 첫 번째 서랍을 다시 열었다. 알록달록한 수세미 몇 개를 꺼내 만다라북 옆에 두고 보니 그들은 닮아있었다. 내가 모르는 엄마의 시간들. 나한테는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해도 정작 말하지 못했을 본인의 고독과 우울감. 그 모든 걸 빨아들인 동그라미가 내 앞에 그렇게나 많았다. 나는 수세미를 소중하게 들어 서랍장에 잘 넣어두었다. 그동안 보내준 수세미들이 엄마의 한가롭고 평온한 일상을 말해주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었을 외로움과 그리움 같은 건 보지 못했다. 엄마의 부재로 외로웠던 내 어린 시절의 시간과, 다들 떠나고 남겨져 외로웠던 엄마의 늙은 시간들이 다른 듯 닮아 보였다.


닮은 마음들



다음날 엄마는 하룻밤만 자고 간다는 소식에 힘 빠진 목소리로 부지런히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했고 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조수가 되었다. 엄마는 진미채를 볶고 나는 무장아찌를 삐둘빼둘 썰었다. 내가 썰어놓은 장아찌를 엄마가 꿀과 참기름으로 무쳐주는 사이 나는 재빨리 진미채를 통에 넣었다. 깨소금을 뿌리는 엄마를 보며 슬며시 말했다. 어제 그 수세미도 줘. 좀 필요할 거 같아. 친구들도 좀 줄게. 엄마는 반색하더니 15개를 싸주었다.

나는 냄비를 닦고 그릇을 씻었다. 수세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듯이 설거지도 그랬었다. 귀찮은 일, 음식물쓰레기를 분리해야 하는 싫은 일이었던 설거지는 어느 날부터 나에겐 면죄부가 되어 있었다. 늙고 아픈 엄마에게 자주 연락하지도 찾아가지도 않는 나의 죄책감을 덜어줄 일은 엄마의 가사노동의 마지막 루틴인 설거지였다. 그나마 최소한의 도리를 하는듯한 느낌을 주는 일이었던 것. 그렇게 설거지를 하고 하루이틀 머물다 움직임이 힘겨운 노인이 된 엄마를 두고 돌아서서 다시 미안함을 잊고 살아갔었다.



그날은 더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행주로 물얼룩이 진 싱크대를 깨듯이 닦아내고 수세미 물기를 꼭 짜 걸이에 걸고 행주도 탈탈 털어 널었다. 그리고 아래를 보니 바닥이 엉망이라 바닥을 닦았다. 내가 썰다 놓쳐버린  장아찌가 발견되었고 통깨가 굴러다녔다. 이제는 허리를 굽히는 것도 힘든 엄마가 여기를 청소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 바닥에 앉아 물걸레질까지 했다.

그날의 설거지는 보통의 하기 싫은 설거지가 아니었다. 때로는 나의 죄책감을 덜던 일, 엄마에겐 한평생을 해왔지만 오래간만에 만난 딸에게 시키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오늘의 나에겐 내가 해서 다행인 일이었다. 설거지 하는 마음이 그렇게 다양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수세미를 엮고 그걸로 박박 그릇을 씻는 일이 그렇게 복잡하고 감정적인 일일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음식은 요리가 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설거지도 포함이다. 수세미도 포함이다. 행주로 물얼룩을 깨끗이 닦아내는 것도 바닥을 정리하는 것도 포함이구나.



몇 주 후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는 수세미를 들고나가 개수대로 배분해 품에 안겨줬다. 다행히 친구들은 기분 좋게 받아줬다. 친구들의 가방으로 쏙 들어가는 꾸러미를 보며 음식을 하고 잘 씻고 뒷정리를 하는 그 행동모두가 나눌 수 있는 것임을 아니 세상이 좀 더 입체적으로 보였다. 엄마는 수세미를 떠서 세상의 물을 오염시키지만 그렇게 자신의 시린 마음을 덮고 타인에게 투박하게 마음을 전한다.  새삼스럽지 않은 시선에 들어온 수세미는 의미 없는 물건이었다가 환경을 해치는 인자였다 만다라가 되었다. 그렇게 세상은 실하나로 연결되어 무언갈 헤치며 나가 누군가에게 닿는 것.

그렇게 수세미 정기배송은 해지하지 못했고 나는 다시 알록달록한 수세미를 쓰기 시작했다. 지구를 지키고 내 죄책감을 줄일방법은 다시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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