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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후 Oct 20. 2023

세상의 비밀하나

<달콤한 것들에 기대는 날들>

누군가의 반짝이던 한때를 알게 되는 일은 세상의 많은 비밀 중의 하나를 알게 되는 일이다. 그렇게 남들은 모를 반짝임을 포착하며 하나하나 기억하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지고 덜 난폭해지므로. 그렇게 나는 나만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그녀의 1년이다.

그녀는 일 년 동안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3일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그녀의 첫인상은 촌스럽다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뿔테안경 그리고 얼굴형에 어울리지 않는 커트머리. 여성스러운 하늘하늘 원피스가 합쳐지니 언밸런스해 보였다. 옆자리였지만 당장 함께 진행하는 일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우린 물리적으로만 가까운 상태였다. 그렇게 2주가  지나 그녀가 나에게 케이크 상자를 내밀었을 땐 정말 놀랐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우연히 알게 됐다고 했다. 근처 유명한 베이커리가 있길래 들렀다 샀다는 이야기가 따라왔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와 감정적 거리가 확 좁혀진 느낌은 반가움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 그래서였나. 상자 사이로  언뜻 보인 하얀색 케이크가 반갑지 않았다. 생김새와 맛이 모두 일차원적으로 느껴져서였다. 하얀색 겉모습 안엔 노란색 빵시트와 크림 일 테고 겉면엔  딸기나 블루베리가  반짝이며 코팅되어 있는 뻔한 모습. 맛도 그렇게 지루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괄적인 예외 없는 단맛.

겉면엔 아무 장식 없이 그냥 하얀 케이크는 단면 중간중간에 샤인머스켓이 가득했다. 엄청 달겠구나 싶었는데  상큼함이 덮쳐왔다. 오물오물거리고 나니 그제야 달콤했다. 빵은 고소하고 부드럽게 뭉개졌다. 문득 생각했다. 원래 케이크이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달고 안 달고가 아니라 부드러운 맛인 게 아닐까라고. 쉽게 흐물어지고 부드럽게 녹아 사라지려면 그 맛은 달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솜사탕 같고 아이스크림같이 온갖 부드러운 것들의 맛은 지루하지 않았다.



다음 그녀의 출근일에 나는 음료와 랑드샤를 사갔다. 케이크에 대한 예상밖의 소감과 고마움을 전했다. 그녀는 잔잔히 웃더니 자신의 두 번째 서랍을 열어보였다. 과자와 젤리가 줄을 맞춰 정렬해 있었다. 출근한 지 2주. 아직은 낯설고 정신없을 텐데 그녀는 이미 그 자리를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곤 웃으며 좋아하는 맛을 골라보라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렇게 그녀가 출근하는 날은 새콤달콤하고 바삭바삭한 날이 되었다. 부드러운 날이 되었다.



봄에는 그녀의 식집사 지식을 전수받았다. 그녀는 한동안 집순이였다며 기르는 식물들을 보여주었다. 집에서 재밌게 보낼 취미를 백가지는 안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고 잘 어울리기에 집순이라는 게 약간은 의아하기도 했다. 날이 더워지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녀의 선택은 의외였다. 맥주맛 탄산수. 그런 음료가 세상에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날 , 그녀는 맥주가 아주 많이 마시고 싶다고 했다. 마시면 될걸 왜 탄산수를 마시는지 궁금했지만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 말을 하던 순간 그녀의 얼굴에 스쳐간 빗금이 있었다. 밝은 빛 속에도 부분 부분 어두운 실금들에 나는 걸음을 멈추기로 했다. 내가 딛고 싶은 발걸음이 그녀에게 불편함 없이 반가움만 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가을의 그녀는 운전면허를 따고 연수를 시작했다. 주말마다 다녀온 곳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음엔 동해바다까지 운전해보고 싶다고 하는 말에 설렘이 가득했다.

눈이 오던 어느 날의 그녀는 오랜 연인과의 이별에도 꿋꿋했다. 그리고 퇴사 후의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유럽에 살고 있는 언니를 만나러 간 김에 이곳저곳 여행할 계획이라 했다. 한동안 우리의 대화는 스위스나 프랑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설레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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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일을 얼마 앞두고 그녀는 상자째 간식을 건넸다. 열어보니 젤리와 과자가 가득했다. 회사에서 화나면 하나씩 먹으라며 몇 달은 먹을 분량을 챙겨줬다. 꽤 많은 부피였는데도 걱정됐다. 이걸로 어떻게 버티지? 그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된 이와 같이 일하고 있었다. 어렵지 않은 일도 어렵게 만들었고 기분 좋게 출근해도 그 사람의 지시에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을 다쳤다. 순식간에 화가 났다 급격히 가라앉기도 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자를 외치며 잠이 들고 한숨을 쉬며 집을 나서던 날들이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나 보다. 내가 얼마나 그 달달함에 의지해 살았었는지를.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떠났지만 떠나지 못했다. 그녀의 퇴사일, 서운함 마음을 누르던 나보다 그녀의 얼굴이 더 어두웠다. 얼굴에 들이치던 빗금이 더 커져있었다. 그녀는 내 말없는 물음에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1년 항암치료 중이었다고, 호전되어 유럽으로 여행겸 요양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전이 소식을 들었다고. 바로 입원한다는 말이었다. 내 얼굴이 어땠는지 나는 잘 몰랐지만 나를 보던 그녀가 갑자기 웃으며 덧붙였다. 강제로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됐으니 미라클 모닝이라도 하겠다고.

사실 나는 여름의 끝자락쯤이던가 가을의 낙엽 속에서 던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짧아지다 다시 길어지는 중에도 그녀의 촌스러운 커트머리가 자라지 않는다는 걸. 언제나 단정히 귓가에 꽂혀있는 그 머리카락엔 생명력이 없다는 걸. 입원한 그녀의 카톡 프로필은 몇 주에 한번 바뀌었다. 어느 날엔 그녀의 발이 풀장에 담겨있기도 했고 모래언덕 위에 앉아 해넘이를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볼 때마다 웃었고 안도했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그녀가 준 간식을 다 먹어갈 때쯤 난 회사를 그만두었다.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과 일하는 것은 온 세상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물속에 잠수해 혼자 외쳐대니 귀가 먹먹하고 숨이 막히는 날들이었다. 그 답답함에 나는 세상에 화를 내곤 했다. 케이크는 지루하게 달아 싫었고 비 오는 날은 비가 와 싫어했다. 단음식이 달아서 싫은 건 그저 세상이 싫다는 거였다. 다양한 감정과 심상을 누릴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녀가 그만두고 숨 쉴 곳도 없어진 난 더 이상 화난 채로 살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엔 사회에서 만나도 이야기가 통하고 얼굴 보면 웃음이 나는 사람이 있다는 잊고 있던 것들을 깨달아서였다. 오랫동안 곪아온 통증은 나아도 바로 상쾌함이 들지 않듯 회사를 나와도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잔잔한 일상의 시간이 흐르며 나는 점차 회복되어 갔고 오랜만에 온 그녀의 카톡 메시지를 봤을 때, 함께한 1년 넘는 시간이 다시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부고메시지 속의 그녀는 촌스런 가발을 벗어던지고 민머리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채 활짝 웃고 있었다. 훤한 그녀의 이마가 예뻤고 쨍한 립스틱이 멋있었다. 아 예뻐! 간발의 차로 슬픔을 앞지른 감정에 감사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의 그녀였다. 따듯하고 눈부셨다.



짜증과 미움이 비정상적으로 자라면 다른 감정들은 위축되고 닳아버린다. 그게 오래 지속되면 감정의 불균형에 익숙해져 힘듦의 정도를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힘들어한다.

시끄러운 마음으로 적막한 세상을 헤매며 살아가게 할 하나를 찾는다. 그 간절한 하나에 기대어 숨을 쉰다.

그녀의 반짝임에 온기에 단맛에 기대어 나는 숨을 쉬었고 그 상태에서 빠져나와야 함을 깨달았다. 힘든 병과 싸우는 사람의 품이 그렇게 넉넉하고 따듯할 수 있다니. 그게 얼마나 멋진 인간의 능력인지 알고 나니  세상이 신비스러웠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몸에 좋다는 단순한 뜻만이 아님을 이제 안다. 세상이 쓴 사람에게 단걸 입에 넣어주는 게 얼마나 몸을 덥히고 마음을 덥히는 일인지 안다. 그 기억이 지금도 때때로 그리고 앞으로 또다시, 세상을 헤매게 될지도 모르는 나를 걸어가게 해 줄 것임을 이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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