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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후 Oct 20. 2023

귤까주는 마음

<마음을 살피는 음식>

화면 속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굳은 채 앉아있다.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마주 보지는 못한다. 좋아했지만 상황이 어긋나고 타이밍도 어긋나 한 번도 함께 좋아해 보지 못한 남녀였다. 이제는 연인이 생긴 여자를 살며시 훔쳐보던 남자는 봉지 안 귤을 꺼내 들고 잠시 망설이다 조심조심 까 건넨다. 얼결에 내민 손위에 귤이 올려지고 여자가 그걸 바라본다. 잠시 눈을 마주치고 다시 귤을 보고 그렇게 그들의 마음이 어지럽게 흐른다.

그 장면을 보며 마음이 한 곳으로 쏠렸다.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던 껍질 깐 귤. 귤을 까서 준다는 게 아주 쉬운 동작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란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땐 당연하게 종종 사람수에 맞추어 2등분 4등분 많으면 한 조각씩 쪼개어, 손에 얹어주고 입에 넣어줬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귤을 까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명확한 타이틀을 가진 소수의 사람으로 한정되었다.

어른들이 친해짐은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선을 지켜 그 안에서 관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속도를 능숙하게 캐치해 나도 그에 맞춰 움직여줘야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는다. 아직 우린 그 정도 사이는 아닌데 눈치 없이 급발진해 귤을 까 주면 안 되는 것이다. 상대의 반응과 사회적 매너, 나의  적극성의 비율과 속도가 적절해야 하는 섬세하고 복잡한 일련의 과정이다.



난 그 과정이 항상 어려웠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누군가와 너무 가깝게 서면 경직되어 상대의 오해를 샀다. 먼저 손을 내밀려할 땐 이쯤까지 손을 뻗으면 되는지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닌지 고민했다. 그러다 멈춰버리곤 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서로 쭈뼛쭈뼛하다 어색한 몸짓이 되었고 때로는 오해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한참 후  자신도 힘들고 어려웠다는 상대의 말을 들으면, 우리 사이 존재할 수도 있었던 많은 이야기와 역사가 생기기도 전에 소멸된 것이 안타까웠다.



얼마 전 최근 친해진 사람들과 밥을 먹었다. 조금씩 느리게 서로를 배워가는 중인 사람들이었다. 식사를 하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만의 접시가 확실했던 식사와 달리 케이크와 타르트 크로플 같은  디저트들을 테이블에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우리의 테이블 위를 관찰하고 미소가 지어졌다. 몇 개의 포크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살짝 다가서다 물러나고 상대 포크가 향하는 방향을 보고 스텝을 밟듯 앞뒤로 움직였다. 상대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자주 닿는 음식을 내가 너무 독점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새삼 다정하고 수줍어 보이는 포크들이었다. 결국 디저트들은 한 귀퉁이씩 남겨졌다. 아직은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함을 알려주며.  배려하고 또 배려하느라 편하지 않았지만 그 불편한 배려는 좋은 사람들에 대한 설렘과 기대 같아 딱딱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나누어먹어야 하는 음식들은 그렇다. 우리를 긴장시키고 배려하게 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도록 만든다. 그렇게 당신이 무얼 마시는지 무얼 얼마나 먹는지 신경 쓰는 건 당신을 더 알고 싶다고 신호이고, 당신의 입에 이 맛있는 게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은 관심이다. 그래서 작고 무용하고 비싸고 살만 찌게 만들 그날의 디저트들이 나를  기분 좋게 했다. 언젠가 우리는 좀 더 푹푹 떠먹을 것이고 입맛에 맞는 건 양보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정답게 먹고 먹는 걸 보며 서로에게 익숙해져 갈 것이다.



귤을 까주는 그 장면이 마음에 남았던 건 귤을 까 건네주는 사람의 마음을 보아서였다. 놓친 인연을 다시 붙잡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간절한 마음에 먼저 나가버린 손이라고. 불쑥 심장에서 뛰어나온 애쓰는 마음 한 조각이라고. 살아오며 받았던 아픈 거절의 순간들. 그 상처로 지나치게 방어적이 되어 망쳐버린 가능성들. 그걸 극복하고 넘어서는 건 거창한 계기나 성숙한 인격이 아닌 작은 용기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날로 내가 귤까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약해졌듯 자그마하고 소소한 것들을 내밀어보고 싶다. 당신이 달콤한 걸 맛보았으면 좋겠다는 단순하고 따듯한 용기로. 그저 시시한 것을 내밀듯이 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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