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그럴듯한 조합>
오전시간에 요가를 다닌 적이 있다. 모두 열중하던 중 다리가 풀리며 내가 휘청하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순간, 전면 거울에 비친 옆 사람과 눈이 마주쳤고 나도 그 사람도 살짝 웃었다. 그날 운동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때 거울 속 그 사람과 일행인듯한 이가 점심메뉴를 이야기하다 나를 돌아보며 물어왔다. 밥을 같이 먹겠냐고. 북적이는 식당에서의 혼밥은 아무렇지 않으면서도 가깝지 않은 사람과의 식사는 불편해하던 내가 웬일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다.
근처 시장으로 들어선 둘은 깊숙이 걷다 사잇길로 들어갔고 식당 같아 보이지 않는 가게에 들어섰다. 간판이름도 없는 가건물의 새시문은 활짝 열려있고 내부는 작은 조리대와 그 맞은편 테이블이 두 개 올려진 작은 구들바닥이 다였다. 열린 문이 바로 코앞이라 마치 길 중간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구들위에 널려있는 누군가의 외투와 무릎담요를 치우고 앉아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청국장이나 해장국이 어울릴 것 같은 모습과는 달리 이 집의 인기메뉴라는 쫄면과 수제비를 시켰다. 예쁜 다홍색 쫄면과 홍고추 청고추 고명이 알록달록한 수제비를 앞에 두고 우리는 서로의 무릎을 붙이고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산 내게도 낯선 식당이었다. 9와 4분의 3 정거장을 통과한 해리포터의 기분이 이랬을까.
이런저런 일상이야기를 나누는 그 둘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처음엔 엄마와 딸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호칭이 00 언니와 00이었다. 친한 언니 동생사이인가 싶었는데 남다른 면모가 있었다. 메뉴를 시킬 때도 앉을자리를 두고도 일말의 연장자 우대 같은 예의의 뉘앙스가 없었다. 계산은 확실한 더치페이였고. 그 모습이 당돌해 보이거나 예의 없어 보였냐고? 절대 아니었다. 호칭만 언니였을 뿐 그 둘은 친구라는 걸 이내 확신했기 때문이다. 60대와 30대인 친구 두 명!
낯설고 마음에 드는 조합이었다. 탱탱하고 매콤한 쫄면이 입안을 화하게 만들면 거기다 밑반찬인 열무를 얼른 쓱쓱 씹어보랜다. 그랬더니 매콤함에 새콤함이 확 올라온다. 이제는 그 맛이 사라지기 전에 뜨듯한 수제비를 한 숟가락 머금는다. 순간 더 화해지다 수제비의 순한 뒷맛에 속이 풀린다. 흔해빠진 메뉴인데 이렇게 먹으니 뭐가 이리 맛있나 싶었다. 두 친구는 어떻게 이런 걸 터득했지. 문득 여기 끼여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불편하지 않게 한 끼 잘 먹었다.
간간히 인사하고 지내던 우리는 얼마 후 다시 동네 파스타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둘의 이야기를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60대 친구는 퇴직 후 운동을 시작한 참이었고 30대 친구는 잠시 휴직 중이었다. 그 둘은 운동 끝나고 가는 길에 같은 아파트단지에 산다는 걸 알고선 이야기를 시작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고 했다. 60대 친구네 강아지 사진을 보며 우리는 웃었고 각자의 파스타 취향을 이야기하고 주문했다. 그렇게 대화는 잔잔히 흘러갔고 나는 그동안의 물음에 답을 얻었다. 무엇이 이 우정을 가능하게 했을까란.
나이가 들어 친구를 사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거기다 몇십 살의 나이차이는 예의와 공경을 요구하지 우정이란 기회를 주지 않기 마련이다.
그날의 잔잔한 대화 속에서 저절로 깨달아졌다. 몇 살이건 우리는 그저 그날의 끼니를 걱정하고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과 부대끼며 보풀이 맺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규정하는 게 많을수록 오히려 그 보풀은 더 잘 맺힌다. 서열로 관계를 정하면 꽉 막힌 틀에 갇힐 수밖에 없다. 나이가 그러하니 언니동생이 되면 우리는 언니의 역할을 해야 하고 동생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게 높낮이가 정해진 관계엔 턱이 생긴다. 누군가는 위에서 아래를 보살펴야만 하고 누군가는 아래서 위를 챙겨야만 한다.
그저 그 둘은 누구 하나 한단 내려가지 않았고 한단 올라서지 않았을 뿐이란 걸. 그들 앞에서 나는 동생일필요도 언니일 필요도 없었다. 매일매일 생기는 문제들 중 그저 움직이지 않음으로 문제하나를 만들지 않았을 뿐. 이사실이 너무 쉽고 간단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 동네에 오래 살았지만 지하철역과 집만 반복하며 머글의 세상만이 당연한 줄 알았던 난 그 둘과 새로운 세상의 탐험에 돌입했다. 몸이 축축 처지는 비 오는 날, 요가시간에 고군분투하고선 셋이 순대국밥집엘 갔다. 30대 친구가 엄마와의 불화로 속상해 한날엔 청양고추가 든 매콤한 짬뽕을 먹으러 갔다. 60대 친구는 한참을 그 속상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60대 친구의 아들이 심한 말로 엄마를 속상하게 한날엔 시장 골목 후미진 할머니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먹으며 그 아들을 적당히 욕해주었다.
난 언제나 다 알고 있다고 무심코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깨지며 가르쳐주는 것들의 낯섦이 좋다. 순간은 깜짝 놀라지만 나의 낡은 생각이 터져버린 자리엔 더 좋은 낯섦이 있었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스럼없이 발을 내디딘 두 여자. 이 용감한 사람들 같으니.
몇 달 후 동생이 먼저 이사를 가고 다시 몇 달 후 언니가 지방으로 내려가며 우리의 불규칙적이지만 지속적인 식사모임은 막을 내렸다. 동생이 이사 가기 전 우리는 언니네 집에서 포트락 파티를 했다. 말이 파티지 언니는 김치찜을 만들고 동생은 삼겹살을 사 왔고 나는 과일과 디저트거리를 사들고 모인 단출한 만남이었다. 열심히 먹고 맨 마지막 우리는 막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앉아 식사 모임을 마무리했다. 아쉬웠고 아쉬워서 좋았다. 헤어지며 아쉬워할 수 있는 사이를 운동 가서 만나기 얼마나 힘든지, 학연과 지연이란 기반을 가지고 시작한 관계들이 얼마나 엉망으로 망가질 수 있는지, 이름을 붙이고 매달 돈을 내는 모임들이 얼마나 잡음을 내는지를 보아오며 느슨하고 이름 지어지지 않은 이 관계가 좋았다. 나는 그 뒤로 안면은 있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이 밥 먹자고 하면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즉각적인 생각을 밀어내려고 애쓴다. 저 사람이 얼마나 큰 용기로 자신의 삶에 초대해 준 걸까란 생각을 떠올린다. 또 생각한다. 뻔하고 형식적으로 살아온 머글인 나는 모르던 신나는 세상을 또다시 만날 수 있게 될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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