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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후 Oct 20. 2023

메인디쉬가 될 수 없는 음식들

<한 시절과 이별할때>

에다마메란  음식이 있다. 풋콩을 삶아 까먹는 음식이라 부르기에 너무 간단한 음식. 처음 에다마메를 먹은 건 20대 초반 친구와 간 일본여행에서였다. 안주로 나온 콩깍지를 보며 잠깐 당황했던 것도 같다. 내가 알던 콩들은 씻어 앉쳐놓은 밥 위에 뿌려지거나 달달 졸여 콩자반이 되는 게 다였는데 콩깍지도 한 접시를 차지할 수 있구나. 그런 음식들이 있다. 메인디쉬 라기엔 위장을 채울 무게감이 적어 양을 많이 한다 해도 취급받지 못하는 음식들. 한식에는 기본반찬들이 그러했고 일식에도 양식에도 무수히 잔잔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감 약한 음식들. 덮밥, 찌개, 파스타 하나의 메인디쉬만으로 이루어지는 혼자 차려먹는 단출한 식탁에서는 더 자리 잡기 힘든 그런 음식들. 나는 그날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콩깍지를 깠다. 친구와 번갈아 콩깍지를 까며 많이 웃었고 많이 떠들었다. 그렇게 에다마메는 심심한 입을 달래주는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우정도 영원할 것 같았다.



얼마 전 그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몇 년 만이었더라. 아마 4-5년 만일 거다. 사는 게 바빠 연락 못했지만 너를 잊지 않고 있다는 연락에 잠시 마음이 출렁거렸다. 20살. 대학에 오며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우리 둘은 곧 서로를 알아보았다. 내가 이곳을 방황할 때 기꺼이 함께 해줄 사람임을. 학교 수업 외엔 온통 텅 빈 시간들이었고 넘쳐흐르는 자유에 우왕좌왕하며 우리는 나란히 길을 뚫어갔다. 고민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흔들리고  미성숙한 채 어른이 된 자신에게 적응해 갔다. 서로가 서로를 비춰보면서. 난 깊은 결속감을 느꼈고  삐뚤빼뚤한 내 영혼을 이해받는 거 같았다. 나의 자아가 어떻게 생겼든 부끄럽지 않게 보여줬고 나의 틀림과 잘못을 그녀와 함께 하며 고치고 배워갔다. 우정이란 말의 깊이를 그렇게 배워갔다.



우리가 멀어지게 된 건 그녀가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멀리 가면서부터였다. 친구는 주부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각자의 낯선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나는 점점 혼자만 연락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그녀를 만나려면 찾아가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친구의 아이가 자랄수록 먼저 오는 연락이 줄었고 나는 더더욱 그녀를 열심히 변호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서운하다 토라지고 비난할 것만 같았다. 가까운 사람과 멀어지는 일은 혼자만의 투쟁 같았다. 서운함과  억울함 외로움과 싸우며 나는 평온을 찾고자 그녀에게 베프라는 이름을 뺐었다. 나도 연락을 먼저 하지 않았다. 나에겐 다른 친한 다른 친구들이 생겨났지만 다시는 누구에게도 베프란 타이틀은 붙이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살아갔다.



메시지를 받고 난 답장을 망설였다. 잘 지내고 있다고 언제 한번 보자 같은 의례적인 답장을 보내면 다인데 내 손가락은 요지부동이었다. 며칠이 흘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녀는 내 마음속에 고여있었다는 걸.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그렇게 사라지는 게 속상하고 남편과 아이에게만 몰두하는 친구에게 서운했다는 걸. 아이 픽업과 학부모 모임, 남편 일 관련 모임에만 열중하던 그녀를 이해한다고 머리로 생각했지만, 우리의 인생이 전과 다를 것이고 나란 존재가 우선순위에서 강등됐음이 괜찮지 않다는 걸..



지나간 인연들을 생각해 보았다. 오해가 생기기도 ,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것 외에도 수백 가지 이유로 우린 만나고 헤어지고 격정적인 이별 없이 스쳐가기도 한다. 누군가의 목적,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살지 않듯, 현존하는 것만 귀한 인연은 아니다. 지금의 나를 지나친 수십수백의 인연처럼 나도 누군가의 옆을 그렇게 지나갔다. 그렇게 지나쳐 깎여지고 둥글려져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고 현재의 누군가의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문득 우리가 꽤 잘 이별한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우리는 20대의 초반부터 똑같이 미성숙한 존재로 만나 우위 없이 함께 즐거이 낯선 길을 굴러다녔고 , 갈림길에서 원망할만한 큰 사건 없이 각자의 레인으로 옮겨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계속 가고 있구나. 누군가를 진정으로 응원하는 마음을 배웠고 못나도 솔직한 이야기가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알게 되었다. 시답잖은 수다가 주는 위안과 사랑만이 인생의 묘미가 아님을 배웠다. 언제 간 오랜만엔 만난 우리가 다시 베프가 되는 해피엔딩이 없어도 우리의 인연은 충분할 거 같다. 지금까지 만의 기억으로 우리는 이미 서로의 훌륭한 애피타이저였다. 메인디쉬가 아니어도 충분했음을.

우정도 사랑이니, 마음이 하는 거니 헤어질 수 있다. 꽃이 피고 우정이 차오르고 꽃이 지고 인연이 다할 수도 있구나. 여러 결의 감정으로 헤어짐을 살피고 나니 마음이 담백해졌다.



마트에 가 냉동 에다마메를 한 봉지 사 왔다. 큰 냄비에 담고 끓인다. 굵은소금을 살살 뿌려주고 15분 정도 삶아준다. 짭조름하면서도 달큼한 훈김이 주방을 채우면 꺼내 채반에 두고 물기를 뺀다. 오목한 너른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린다. 맥주를 한 캔 들고 식탁에 앉았을 때 싱크대 앞 작은 창으로 오후햇살이 가득하다. 콩깍지를 하나 들고 틈을 잘 맞춰 꺾으면 딸깍 깍지가 열린다. 조심조심 콩알을 모아 하나입에 털어 넣는다. 단데 부담스럽지 않다. 적당히 고소하지만 입안을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짭조름한 겉면보다 소금기가  덜 스민 콩알들이 담백하다. 그리고 맥주를 한입 마시고 콩깍지를 본다. 이런 가벼움이 좋다. 가깝던 누군가가 멀어졌다 해도 관계의 가벼움이 허무함이 상처가 되지 않기를. 가벼운 데로 의미가 있기를. 저녁이 되어도 배가 많이 고플 것 같지 않다. 에다마메로 식사를 대신하기로 한다. 가끔은 속을 가볍게 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더 가벼워지고 더 담백해지고 더 담담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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