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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후 Oct 20. 2023

당신이 민초를 싫어하는 방법

<너무나 사적인 호불호>

어느 겨울 한 모임에 참가했다. 일정한 주제를 두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모임이었다. 새로운 만남과 도전에 낯설어 잔뜩 긴장한 6명이 원형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우리는 어색하게 불협화음을 내며 하지만 조금씩 적응해 가며 3번째 모임까지 함께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모임 주제가 아닌 “나“란 사람에 대한 두 가지 피드백을 받게 되었다. 참가자 A와 B로부터였다. A는 모임이 도움이 되지 않아 그만둘 예정이지만 나와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나눴던 말들이 좋았고 가끔 만나 서로 피드백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었다.

B는 모임sns에 연동된 자신의 계정피드에 불참을 알리며 모임멤버에 대한 저격글을 화면 가득 올려놓았다. 자신에 대한 평가에 인색했던 날 선 사람 때문에 모임을 그만두겠다는 글이었다. 내가 했던 말들이 신랄하고 매몰찬 말들로 바뀌어 묘사되어 있었고 밑엔 지인들과 나눈 비밀 댓글이 가득 남겨져 있었다. 나는 읽을 수 없는 댓글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깨달았다. B가 나를 싫어하는구나라고.



그날은 주말이었다. 겨울답지 않은 햇살에 바람도 잠잠했지만 난 온몸이 무겁고 으슬으슬했다. 벌떡 일어나 세상밖으로 나갈 힘이 없었다. 영화를 보아도 딴생각에 빠져들어 자꾸 내용을 놓쳤다. 누군가에 의해 나의 정체가 나쁜 사람으로 정의 내려지는 일은 깨달음의 순간이 아닌  혼란의 순간이었다.

내가 알던 나는 미소를 가면처럼 쓴, 악역이었던 걸까? B는 나에 의해 상처받은 것일까? 나를 싫어하는 것일까? 나는 지나간 B와의 대화를 복기하느라 바쁘다가도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흩트려 트리기를 반복하다 벌떡 일어섰다. 나에게 필요한 건 아이스크림치료. 달려 나가 큰 통을 사들고 왔다. 소파에 파묻혀 앉아 담요를 두르고 밥숟가락을 들고 앉았다. 뚜껑을 열고 내가 고른 다섯 가지 아이스크림을 봤다. 그 안엔 오랜만에 보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바로 민트초콜릿이었다.

민트 초콜릿아이스크림을 즐겨 먹던 시절이 있었다. 연푸른색 민트 아이스크림은 색깔만큼 맛도 산뜻해 묵직한 초콜릿의 맛을 중화시켜 주었다. 입안이 너무 달지 않게 적당히 달고 적당히 상큼하게 해주는 그 밸런스를 좋아했다.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다 어느 산책길에 여유 있게 낯선 골목으로 꺾었더니 길가에 예쁜 꽃도 보이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발견해 그 새로움이 일상을 다채롭게 해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다 나는 민트 초콜릿을 열렬히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본적이 있다. 반민초파가 된 이유는 바로 초콜릿의 맛을 헤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묵직해서 색깔마저 마음에 드는 자신이 사랑하는 음식인 초콜릿의 첫맛을 앗아가고 약간 씁쓸하게 오래 입안에 남는 끝맛의 여운도 앗아간다고. 어떤 음식을 더해 기존의 좋아하던 음식의 맛이 변해버리는 건 배신처럼 여겨져서 싫다는, 나름 탄탄한 부피감의 변이었다. 난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론 단순한 나의 변덕스러운 마음으로 민초를 잊었다.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에 혹해 늘 새로운 맛을 도전했고 커다란 사이즈를 사지 않으면 늘 몇 가지 되지 않는 선택지엔민초가 담기지는 않을 얄팍한 호의였으니.



그날은 5가지를 고르다 왜인지 잊혀진맛, 민초를 골라 넣었다. 오랜만에 먹으니 솔직히 그저 그랬다. 잊고 지낼 수 있을 만큼 강렬하게 맛있진 않았고 가끔 다시 먹을 만큼은 맛있었다.

취향이란 말을 생각해 보았다. 사적인 영역을 나타내는 말의 울타리를 살며시 넘어가 보니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얼마나 공들여 제대로 싫어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이대로 싫어한 체 다시는 안 돌아보기로  결정할 만큼의 두툼하고 단단한 이유가 있나를 헤아려보았나. 그 이유를 세세히 들여다보는 건 호불호의 판정을 내리는 것보다 힘들고 오래 걸린다. 무관심, 나쁜 경험, 거부감이라는 외피를 뚫고 나아가야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싫음을 이해하는 것은 귀찮고 불필요해 보이는 산뜻하지 않은 경험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낸 이유들은 그 대상을  싫어하는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복잡한 기계의 설계도 같고 어려운 수학문제의 수식처럼. 싫음의 이유를 납득하면 그 싫음은 강렬함을 잃고 작아 보인다. 대수로워 보인다. 우리는 세상 많은 것들을 싫어하지만 그 호불호를 이해하려는 생각은 더 배척하기 위함이 아니라 잘 싫어할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이유로 이 음식이 싫지만 네가 그런 이유로 좋아한다니 신기하고 재밌다고. 아마 어느 변덕 심한 날엔  시도해 볼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다시 다른 이들과 섞일 것이다. B도 그러할 것이다. 우린 민초를 환영하는 사람도 만나고 싫어하는 사람도 만날 것이다. 나는 우리가 곁에  있을 때 어울리지 않아도 냄새도 별로고 맛도 별로여도 조금 가벼이 싫어했으면 좋겠다. 조금 잠잠히 싫어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충분히 싫어할 시간을 갖고 싫어했으면 좋겠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B가 받았을 상처를 낸 이유를 이해하려 하고 나를 싫어했으면 좋겠다. 어색해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오디오의 빈틈을 채우려고, 새초롬한 날선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며 만들어냈을지도 모르는, 그 모든 불협화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나를 싫어했으면 좋겠다. 나도 세상을 그렇게 싫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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