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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장규일 Jan 28. 2020

우리 회사에 '백승수 단장'이 부임한다면?

장규일의 B컷 #008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첫 회 시청률이 5.5퍼센트였는데, 벌써 18퍼센트를 넘었고, 지난 설 연휴 결방 소식은 팬들의 엄청난 항의로 이어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의 인기가 얼마나 뜨거웠으면 한 회를 방송하면서 1~3부로 나눠 중간 광고를 마구 마구 집어넣을까 싶었다. 나 역시 설 연휴 귀성길을 이용해 1화부터 11화까지 정주행을 했는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지, 특히 주인공 백승수 단장의 특유의 리더십이 그 중심에 있음을 십분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백승수 리더십’으로 불리는 그의 인상적인 모습 몇 가지를 뽑아보자.


우선 그는 공부하는 리더다. 씨름, 아이스하키, 핸드볼에 이어 야구 단장에 이르기까지 그는 극 중에서 공교롭게 특정 스포츠 감독(또는 단장)을 맡아 팀을 우승을 시키고 이듬해 해체를 경험하는 얄궂은 인물이다. 씨름 감독으로 발령받은 이후 야구 단장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새로운 직업에 도전해야 했고,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려야 했다. 야구 단장으로 취임하고 난 이후에 모든 직원들이 ‘야구를 1도 모르는 단장’, ‘책으로 야구 공부하는 아마추어’라며 백 단장을 힐난하기 바빴으나, 그는 책과 구단 내 다양한 자료를 통해 공부해가며 결국 회사 내에서 ‘가장 야구를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로 변모한다. “야구를 몰라서 책으로 배우는 게 창피한 게 아니라, 1년이 지나도 야구를 모르는 게 창피한 겁니다.”라는 대사에서도 배움에 대한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데, 속해있는 팀이 망해도 다른 곳에서 그의 희한한(?) 우승 청부사 이력이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도 그의 공부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음은 팩트와 숫자를 바탕에 둔 전략적 사고다. 몇 년간 꼴찌를 도맡아 한 ‘드림즈’에도 그나마 믿을 구석은 있었는데, 구단 내 4번 타자이자 국가대표 5번 타자인 ‘임동규’ 다. 백 단장이 부임할 당시에도 임동규는 40 홈런을 넘게 기록하고 있었고, 전체 유니폼 판매량의 70%를 차지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그런 임동규를 백단장은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트레이트 하겠다고 선언한다. 아연 질색하는 직원들과 거품을 무는 코치들 앞에서 백 단장은 차분하게 PPT를 넘겨가며 이유를 설명한다. 중하위권 팀이 승부를 노려야 할 여름 시즌에 바닥을 찍는 타율, 타격 기록에 비해 저조한 결승타 능력(작중에서는 새가슴이라 표현한다.), 구장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한 상황에 비거리가 짧고 나이가 적잖은 그는 더 이상 이 팀에 필요한 선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교 선수 선발권 1장을 포기하면서 바이킹즈 팀과 2:2 트레이드를 통해 드림즈에서 아쉽게 떠났던 프랜차이즈 에이스 투수 강두기와 실력파 중간 계투 김관식을 데려오는 딜을 일사천리로 진행해 팬들의 우려 섞인 걱정까지 한 방에 날려 버린다. 야구를 1도 모른다고 비웃음을 사던 초짜 단장은 남들이 보지 못했던 숫자 속 비밀을 읽어내 드림즈의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데 큰 공헌을 세우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의 공정하고 솔선수범적인 모습을 들 수 있는데, 뇌물 스캔들에 빠진 팀 내 스카우트 팀장 고세혁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본인의 사비를 들여서 까지 유망주를 챙기던 양원섭을 팀장으로 승격한 파격이라던가, 파벌 싸움에 정신이 팔린 수석 코치와 투수 코치들에게 “파벌 싸움, 하세요. 근데 성적으로 하세요. 정치는 잘하는데 야구를 못하면 그게 제일 쪽팔린 것 아닙니까?”로 맞받아치는 모습에서 팀과 조직의 성과 창출을 위해 그가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또한 맡은 일을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본인의 상사(극 중에서는 구단 사장과 구단주의 조카)들과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구단 내 모든 팀원들이 그를 믿고 응원하게 만든다.



드라마 정주행을 마치고, 글을 적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만약 극 중에서 백승수 단장을 만나 일하게 된다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만년 꼴찌 드림즈 야구단’의 상황을 살펴보자. 이 야구팀의 모 회사 경영진은 올해를 끝으로 해체를 생각하고 있고, 그 사전 작업으로 신임 단장 선임(피바람을 불러일으킬 사람임이 너무나 뻔해 보이는…)과 강도 높은 비용 절감을 예고한다. 내년 비용 절감을 위해 자그마치 총연봉의 30%를 삭감하라는 지시가 내려지고 전지훈련 또한 따뜻한 국외가 아닌 매서운 추위가 반기는(?) 국내에서 진행하게 된다. 이런 상황임에도 회사의 구성원 대부분은 현재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 하지 않고,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매너리즘에 빠져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책임자 한 사람이 철옹성인 줄만 알았던 내 자리를 흔든다면, 나는 과연 얼마나 그의 개혁과 앞으로의 방향에 찬성할 수 있을까? 그가 건넨 연봉 조정 계약서에 작년의 1/3 수준의 금액이 적혀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까? 떠나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서 최선을 다해야 하나? 과연 내년은 올해와 다르지 않을까? 


매회 쫄깃한 스토리 전개와 미칠듯한 열연으로 난리 난 드라마, 스토브 리그. 백 단장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을 그토록 뜨끔하게 하는 이유가 왜 인지 이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스토브리그 #백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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