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일의 B컷 #027
거실에 놓인 책장에 대충 300여 권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내 머릿속에 알림이 울린다. 정상적으로 꽂힌 책 위와 앞에 책이 쌓이기 시작하고 가끔은 떨어지기도 하고, 바닥에 지저분하게 쌓인 채 먼지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일 년에 1~2번 정도 날을 잡고, 책장을 비우는데 읽고 나서 큰 감흥을 얻지 못한 책들을 찾아내 가져다 버리는 시간을 가진다.
누군가는 책을 깨끗하게 읽고 중고 서점에 팔아서 몇 천 원이라도 벌던데, 나는 책 끝을 접거나(때론 찢기도 한다.) 형광펜이나 볼펜으로 잔뜩 표시를 하면서 읽는 편이라 중고 서점에 가져가서 팔 수가 없다. 예전에 이것도 모르도 몇십 권을 택배로 보냈다가 그대로 폐기 요청을 드렸던 기억도 난다. 일정을 정해서 놓고 나눔을 할까도 싶었지만, 내가 읽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책을 누군가에게 억지로 넘기는 기분이 들어 포기했다. (그리고 받은 그 책이 접히거나 낙서가 돼있으면 읽을 맛도 안 날 것 같았고 ㅎㅎ)
이번에 책장을 정리하면서 분야 별로 정리를 해보기로 했는데, 특정 분야의 책들만 잔뜩 자리를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팔다리는 야윈 채 배만 볼록 나온 '마른 비만' 이미지가 떠오르더라. 그나마 희망(?)적인 건 얄팍하고 즉흥적인, 본인의 경험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책에서 벗어나 조사와 연구에 근거한, 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채택한 책들을 적잖이 읽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는 고전과 철학, 과학 분야에 좀 더 도전해 볼 생각이다. (글을 적는 지금의 다짐이라, 또 언제 바뀔진 모르겠다.)
'리디 셀렉트'를 구독하면서 독서 비율에서 전자책이 절반 가까이 늘었지만 여전히 실물 책이 주는 남다른 느낌과 앞 뒤를 쉽사리 오가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재미 때문에, 오늘 비워낸 만큼을 채우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 같다.
책을 포함해 폐지를(이건 순전히 쿠팡 때문이다 ㅎㅎ) 자주 내놓는 곳이라 알려져서 그런지 책을 내놓기 무섭게 없어져 버렸다. 조금은 날씬(?)해진 책장을 보며 개운한 생각과 함께 여전히 부족한 내 모습이 함께 겹쳐진다. 다시 책장에 책이 쌓이고 비워야 할 시간이 오면 지금보단 더 제대로 된 사람이 되어있길 바라본다.
#책장정리하기 #장규일의B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