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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장규일 May 10. 2020

세련된 즐거움

장규일의 B컷 #034

'즐거움에는 두 종류의 즐거움이 있다. 즐기고 난 후에도 기분이 좋은 즐거움과 즐기고 난 후에는 반드시 후회하는 즐거움. 당신의 삶에는 어느 쪽 즐거움이 더 많은가? 욕망에 저항하는 것보다 욕망을 채우는 것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충동은 그 호소력을 잃게 된다. 절제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세련된 절제는 그것이 끝난 후에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 

[하루 10분 내 인생의 재발견] 중에서


술을 끊은 지 6개월 정도가 지났다.


수능을 마친 이후부터 마시기 시작한 술을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 계속 마시게 될 줄은 몰랐다. 흡연은 하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담배를 살 돈까지 다 술 마시는 데 쓸 정도로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가 음주였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공교롭게도 10여 년의 회사 생활 동안 위스키와 맥주를 판매하는 회사에서 일했던 경력까지 있었으니 내 음주 경력의 농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했다. (일하다 말고 회사 복도에만 가도 당시 회사에서 팔던 술이 가득했다. ㅎㅎ)


음주는 늘 숙취를 동반했는데, 시작할 땐 '한 잔만'이었는데 결과는 '숙취와 만성 피로'였다. 즐겁게 마신 술 때문에 다음날 업무에 많은 지장을 줬고, 금요일에 폭음은 주말을 송두리째 날리곤 했다. 그렇게 후회하면서도 그 시작의 즐거움이 너무 컸기에(금주 전엔 그게 너무 크다고 생각했었다.) 절대 끊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주류 회사에서 일할 당시에는 술을 잘 마시는 게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런 분위기 이기도 하다. 지금은 회사를 옮겼지만.)


그러다 문득 금주를 선언하고 반년 정도가 흘렸다. 술자리를 피하진 않지만, 술자리에선 남들과 다르게 탄산음료나 얼음물을 마신다는 게 달라진 점일 거다. 여전히 치킨엔 맥주가, 삼겹살엔 소주가 생각나긴 하지만 점점 그 느낌이 옅어져 감을 느낀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았는데 그 어떤 부정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다음날 취기가 뒤섞인 채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아직까지 술을 안 마시고 있냐? 왜 술을 끊었냐?'라는 동료나 지인들의 신기함 섞인 질문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더 지나면 흐려질 거다.


금주의 경험은 내가 어떤 욕망을 마주할 때마다 '지금 이 욕심을 채우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고, 그 덕분에 그동안 답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것들이 내 삶에 얼마나 많이 껴있는지를 낱낱이 보여줬다. 


물론, '아직도, 여전히' 나는 시작의 즐거움 때문에 나중의 후회를 잊곤 한다. 그래도 예전보단 조금은 그 욕심을 줄이기 시작했다는 것에 희망을 느낀다. 어쩌면 내 삶의 절대적인 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깨우치는 일종의 삶의 지혜(?)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시작의 즐거움보다 절제의 아름다움이 가져다주는 '찐' 즐거움이 충만한 삶을 살도록 하자.


#장규일의B컷 #세련된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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