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비포선라이즈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행복이었다는 걸.
행복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간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먼저 찾아보는 편이다. 화면 속 인물들의 감정과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가 조금은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낯선 감정을 더 풍요롭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비엔나에 오기 전엔 <비포 선라이즈>를 다시 봤다.
낯선 두 사람이 밤새도록 도시를 걷는 이야기.
걷고, 말하고, 또 걷는 밤.
유난히 말이 많은 영화지만, 내가 오래 기억하는 건
그 모든 대사들 사이에 불쑥 끼어든 한 장면의 정적이었다.
프라터 놀이공원, 제시와 셀린은 낡은 관람차 안에 마주 앉아 있었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살짝 웃고, 작은 숨을 쉬고,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던 그 순간.
해가 뜨기 직전의 감정 같은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사람은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을, 과연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그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행복한 순간도,
우리는 그 안에서 알아차릴 수 있을까?
비엔나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유럽의 중심이라기엔, 어딘가 느리고 차분했다.
도시는 조용하게 나를 반겨주었고, 프라터 놀이공원을 찾아갔다. 영화 속과는 조금 다른 계절, 다른 풍경. 하지만 오래된 관람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셋이 함께 탔고, 조금씩 움직이는 통 안에서,
우리는 핸드폰도 보고, 대화도 나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직원이 문을 열었다.
“끝났어요.”
우리는 동시에 멈췄다.
“네? 아직 정상에 안 올라간 것 같은데요…?”
그러자 그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자, 잘 생각해 봐요.
정상에 안 올라갔다면, 어떻게 지금 여기까지 내려왔겠어요?”
그제야 우리가 꽤 바보 같은 말을 했다는 걸 알았다.
너무 천천히 움직여서 올라간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거고.
그 장면이 어이없으면서도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셋 다 망연자실하게, 말없이 관람차를 올려다봤다.
그때 직원이 다시 다가왔다.
“다시 탈래요?” 그리고는, 우리 셋만을 위해 관람차를 한 번 더 태워주었다.
두 번째 회전은 조금 달랐다.
이번엔 풍경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아냈다.
천천히 돌아가는 이 바퀴 위에서, 내 기분도 천천히 올라갔다. 작은 친절 하나 덕분에 이 짧은 관람차가 비엔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었다.
멋있는 건물도, 우아한 거리도 좋았지만 그 관람차의 조용한 회전과, 그 안에서의 정적이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생각했다. 행복도 그런 게 아닐까.
늘 ‘행복한 때’는 따로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주 조용히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정상 위를 지나고 있는지도.
인생은 관람차처럼 다시 한 바퀴를 돌 기회를 쉽게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굳이 한 바퀴를 더 돌지 않아도,
행복이 스쳐 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릴 수 있기를.
지나간 뒤에야 붙잡으려 애쓰지 않도록,
지금 머무는 이 자리에서 온전히 바라볼 수 있기를.
기다리는 순간 속에서도, 무심한 하루 속에서도,
한 번쯤은 창밖을 바라보며
조금 더 잘 들여다보려고 한다.
지금이 좋은 순간이라는 걸,
늦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정상 위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행복은 그렇게,
천천히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