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려도 맑은 여행

고사우와 할슈타트의 고요한 하루

by 지썬


날씨가 늘 맑을 필요는 없듯,
여행도 늘 반짝일 필요는 없다.

유럽 여행 중, 유일하게 흐렸던 날이 있었다.

기념할 만한 일도, 확실한 장면도 없는

특별하지 않은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좋았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공기엔 미세한 물기들이 감돌았다. 우산을 펼치기엔 애매했고, 그냥 공기 자체가 젖어 있었다. 쌀쌀했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맑은 날이었다면 더 북적였을 거리도 그날은 조금 더 조용했다. 햇살이 없으면, 괜히 마음도 한 톤 낮춰지는데 그게 편할 때도 있다. 그날이 딱 그랬다.


풍경도, 감정도 반 톤 낮아져 있었고

그래서인지 오히려 덜 피로했다.


할슈타트는 호숫가 마을이었다.

백조가 물 위를 유유히 떠다녔고 그걸 따라 나도 천천히 걸었다.

사람은 많았지만 말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풍경이 예뻐서라기보다 그 고요함 자체가 좋았다.


마을을 다 둘러보고 허기가 질쯤, 송어 음식점에 들어갔다. 바로 옆엔 호수가 그대로 펼쳐졌고, 따뜻한 생선 요리와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그렇게 한참을 호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앉아 시간을 흘려보냈다.


푸른 산과 호수, 낮게 깔린 구름.

햇살은 없었지만, 모든 색이 더 짙었다. 바람, 물소리, 나무 냄새. 모든 감각이 조금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겨울은 추운 계절이기에 오히려 더 따뜻한 온기를 잘 느낄 수 있는 것 처럼,

햇살 없는 풍경 또한 그 자체로 색을 더 짙게 만든다.


흐려도, 여행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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