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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May 31. 2020

명상과 육아

나는 명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게 세 아이가 아직 없었을 때 명상을 매일 한시간씩 했었다. 그러나 아이 하나 임신 그리고 출산, 다시 임신 그리고 출산 또 임신 그리고 출산.. 세번의 과정을 되풀이 하고 나서는 명상이 뭐지? 명상은 먹는 것인가?라며 명상과 동떨어진 생활을 했다.


다시 명상을 해보려고 부던히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하루종일 아이들 실랑이를 해야하고, 해도해도 할일이 생기는 집안일을 해야했다. 아이들이 잠든 꿀같은 시간에는 이성의 경계를 최대치로 풀어놓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핸드폰, 텔레비젼, 맥주, 폭식. 완벽한 이 넷의 조합! 이 순간을 즐기리라!!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내 마음대로 방탕하게 사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고 쌓이니 어느새 큰 눈덩이가 되어 나의 몸과 나의 마음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었다. 하루종일 무기력하고, 우울하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무섭고 싫고 화가 났다. 왜 그랬을까? 나는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 내 마음대로 놀고 먹고하는데 왜 그럴까?


나의 24시간 중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12시간은 얼른 사라져야할 시간에 불과했다. 수면시간 7시간을 제외한 5시간만을 위해 나는 살았다. 12시간동안 참고 참고 참았던 것들이 5시간동안 폭발했다. 나조차도 제어가 되지 않았다. 내 하루의 반이 불행했고 그래서 매일이 불행했고 내 인생이 불행했다.


잘 살고 싶었는데,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지치고 우울하고 슬프고 생기가 사라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절망스러웠다. 내 인생을 망쳐버린, 내 젊음을 다 앗아간 육아와 아이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 내가 속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은 지금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 지금의 나를 잘 돌봐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도망치고 싶은 나의 12시간을 다시 되찾아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을 내 삶의 영역으로 끌어안아야만했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 나는 다시 명상으로 돌아왔다.


탓닛한의 마음 모음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나는 차를 마시기 위해 서둘러서 설거를 한다면 이 시간이 불쾌해지고 가치가 없어지리라는 것을 압니다. 인생의 순간순간이 기적이기에 이것은 커다란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릇 자체와 내가 여기서 그릇을 씻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존재 자체와 내가 여기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임을 나는 놓치고 있었다. 기적이라 여기고 싶지 않았다. 이런게 기적이라고? 흥치뿡! 그러나 내가 가진 기적은 놀랍게도... 믿기 힘들게도.... 아이 셋과 함께하는 일상이었다. 삶의 작은 순간을 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삶의 큰 기적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12시간 동안 내 지천에 널려있는 기적을 외면하고 욕하고 미워하면서 내 삶이 아닌 곳에서 기적을 바랬으니... 내가 불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전에 나는 가만히 앉아 명상을 했다. 가부좌를 틀고 깊고 편안한 호흡에 집중하며 고요한 시간을 갖으면 평화롭고 행복했다. 가만히 앉아 고요한 시간을 갖는 것이 명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명상의 범위를 확대시켰다. 같은 책에 또 이런 글이 있다.

" 명상의 비법은 매순간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자각의 해가 육체적 심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계속 비추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울고 짜증내면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내지르다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과하게 화내는 게 싫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차리기 싫었다. 보고 싶지 않았고 듣고 싶지 않았다. 나의 평온을 깨는 그들이 그저 미웠다.


이제 나는 아이들이 울거나 짜증내면 호흡한다. 나의 감정이 찌꺼기가 들어 있는 물병이 아이의 울음에 흔들려... 그 병 안이 혼탁해짐을 바라본다. 어깨에 긴장이 되어 승모근이 한껏 승천해 있음을 알아차린다. 호흡하며 온몸에 들어간 힘을 뺀다.  내 안의 저~ 저~ 깊은 바닥에 숨겨놓았던 온갖 말과 온갖 생각들이 마구마구 올라온다. 그냥 바라본다. 흘려보낸다. 감정은 강물이다. 바라보고 보내주면 흘러간다. 충분히 흘러갈 수 있도록 호흡하고 또 바라본다. 직면하기 무서웠던 두려움, 분노, 걱정, 죄책감, 후회, 자책 이 모든 감정들이 올라가고 내려감을 그냥 바라본다.


감정의 찌꺼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나는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 조용한 곳으로 함께 간다. 아이와 함께 호흡한다. 아이에게 우는 것 대신에 숨을 쉬자고 제안한다. 어느새 눈물을 멈춘 아이는 나를 바라본다. 감사함이 밀려온다. 나는 아이와 대화를 시작한다.

"울음을 그쳐줘서 고마워. 지금 기분은 어때?

"슬퍼."

"어떻게 하고 싶어?"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고, 할머니 집에 가고 싶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할머니 집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해?"

"동생들이랑 사이좋게 장난감 가지고 놀고, 떼쓰지 말아야해."

"너도 알고 있구나! 그럼 그렇게 하면 겠네! 말해줘서 고마워."


귀찮고 화나서 쓰레기통에 버렸던 시간들을 기적의 서랍장으로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다. 아이들의 떼쓰는 소리를 덜 듣기 위해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벗으니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게 웃는지 들린다. 변비로 몇번이고 변기에 앉아서 짜증내는 아이가 버거워, 딱딱하게 만들었던 내 심장을 살짝 풀어놓으니 응아하려고 애쓰는 21개월 아기의 의지력이 경이롭다.


육아를 하면서 내가 제일 많이 했던 일은 감정을 지우는 것이었다. 슬픔과 비통함과 분노를 느끼지 않으려고 부던히 애썼다. 억압당한 감정은 폭식, 핸드폰중독, 맥주.. 등으로 변이되어 나타났다. 고통스러워 나는 핸드폰과 음식과 술에 숨었다. 그랬던 시간을 후회하거나 자책하지는 않는다. 그 시간들도 내게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 나는 같은 실수, 더 큰 실수와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실수, 실패했던 시간들조차 내게는 기적의 순간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그렇게라도 살아가려고 하는 "나"가 얼마다 대견한가!


지금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맥주 대신 탄산수를 들고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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