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 Oct 12. 2020

10월 12일

마당에서 하염없이 노는 세 살 막내에게 말했다.

"이제 집에 가자. 엄마 추워."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앳되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어느새 막내랑 대화가 된다. 나의 질문에 자기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세 살이 됐다. 근데 왜 그리 반갑지 않지? 그녀의 대답에 내 몸은 더 추워졌다. 오늘은 언제 집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집에도 못 가고 있는 내게 다섯 살 둘째가 물었다.

"엄마 오늘 반찬 뭐야?"

지친 한숨과 함께 내 입에서 뱉어진 말은

"집에 가봐야 알지. 아직 엄마는 밥도 못했어."


힘들게 막내를 꼬드겨 집에 들어왔다. 냉장고를 열어서 무엇을 만드나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의식에 흐름대로 얼린 두부를 꺼냈다. 꽁꽁 얼린 두부. 유통기한 마지막 날에 급히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두부다. 포장지와 함께 꽁꽁 얼려 있던 두부를, 칼로 꺼내 주었다. 포장지에서 꺼내지자 마자 냄비 안으로 풍덩. 해동의 시간이다. 자연해동하면 좋겠지만 맛보다는 시간!이 내게 더 중요하다. 튀기면... 뭐든 다 맛있다.


80% 해동된 두부를 꺼내 칼로 깍둑썰기. 가운데 부분은 덜 녹았지만 괜찮다. 튀기면... 뭐든 맛있다.

깍둑 썰기한 두부에 전분 가루를 묻혀, 가열된 기름이 들어있는 무쇠솥에 풍덩!

두부를 넣고 빼고를 몇 번 하다 보니 한모가 다 튀겨졌다. 온 집에 튀김 냄새가 가득. 아이들의 허기짐도 가득. 생각보다 늦어진 저녁식사 시간.

오이를 깔고 그 위에 두부튀김을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시판 오리엔탈 소스가 아낌없이 부어졌다. 아이들 셋이 쪼로미 긴 의자에 앉아있다. 나는 그들 가운데  접시를 놓으며

"두부 탕수육이야! 맛있겠지?"

"두부 말고 또 뭐 들었어?'

핵심을 찌르는 둘째의 질문

"두부만 들었어."


허기 때문인지 나의 요리실력 때문인지, 오리엔탈 소스 때문인 지는 몰라도 아이들이 달려들어 먹는다. 누구에게 더 가깝다고 투정을 부리며 더 먹으려고 한다. 오이까지 잘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만족스럽다.

"엄마 두부 또 있어?"

"아니 다 먹었어. 엄마가 또 두부 사서 만들어줄게"

"히잉..."

첫째의 아쉬워하는 소리가 나를 배부르게 한다.


남편 줄 거라고 따로 빼놓은 두부를 보고 슬쩍 먹으려고 한 첫째

"그거 아빠 꺼야. 아빠도 드셔야지."

"히잉...."

첫째 입에서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어깨도 푹 쳐진다. 일곱 살이 되어도 귀여운 녀석.


식사 후 씻는 시간! 첫째가 내게 질문을 한다.

"엄마 오늘 누가 양치 마무리해?"

"엄마가 해줄까?"

"내가 이렇게 구석구석 양치했는데 내가 마무리해도 돼?"

"응 그래도 되지"

양치를 다하고 내게 깨끗하게 씻었다며 입을 벌려보는 첫째다. 입안을 보니 정말로 깨끗하게 양치를 잘했다. 나는 너무 기특해서

"정말 양치 잘했다. 대단하다!"

라고 하니 첫째 얼굴에 웃음이 그득그득하다. 어느새 오빠 옆에서 뾰로통한 표정을 하고 둘째가 서있다. 둘째에게 입을 벌려보라고 하고 이를 보자고 했다. 그러고 나서

"우와 너도 잘했네. 다섯 살만큼 잘했다!"

둘째도 얼굴에 웃음 가득이다. 항상 오빠만큼 하고 싶어 하는 둘째다.


샤워기로 장난 중인 셋째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다. 부엌에서 정리하던 나는 달려가 봤다. 첫째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나는 내심, 첫째가 셋째가 가지고 있던 샤워기를 뺏어서 우나.. 했다.

"아니, 이제 샤워기는 그만하자라고 말했더니 샤워기를 떨어뜨렸어."

아하~ 자기 발등에 샤워기를 떨어뜨리고 우는 것이구만.

셋째는 뭐가 그리도 억울한지 샤워기에 계속 삿대질을 하며 운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얼굴에는 억울함이 그렁그렁.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에 나는 빨래를 갰다. 오늘 옷이 없어서 H&M에서 옷을 사려고 했던 나를 반성했다. 옷을 개니 옷이 많아졌다. 텅 빈 옷장이 갑자기 부자가 됐다. 뒤집어진 둘째 아이의 바지. 손을 넣어 바깥쪽을 꺼내보니... 민트색 양말이 바지 끝단에 동그랗게 말려 대롱대롱 달려있다. 둘째가 양말과 바지를 한꺼번에 벗어놓았을 모습을 상상하니 웃기다.  


오늘은 매우 스페셜하게 빨래를 다 개고, 설거지도 다 했다. 첫째 아이가 내년에 입학할 대안학교 원서도 작성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오늘이었는데 갑자기, 어찌해서, 어디서. 이런 힘이 나는 것일까? 앗! 왼쪽 귀의 통증이 올라온다. 몸이 말한다. 너 체력 별로 안 좋아. 얼른 자. 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