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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Oct 23. 2020

안돼! 안돼! 안돼 데이빗!

어제는 첫째, 둘째 유치원에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아이 셋을 어디에다 맡겨야 하나 고민이 됐다. 첫째, 둘째는 크게 걱정되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엄마와 떨어지기 힘들어하는 셋째가 걱정이 됐다. 첫째 둘째를 다른 친구네 집에 맡기고, 셋째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엄마 오셨다. 집에 가자."라는 선생님의 말에

다다다다다다다

소리가 들린다. 셋째가 달려오는 소리. 신나서 머리카락까지 넘실넘실거린다. 양 볼에 보조개에는 기쁨이 가득 차 있다. 셋째는 상기된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한 명 한 명씩

'안녕, 안녕, 안녕, 안녕" 하며 인사를 한다.



우리들은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갔다. 나는 셋째를 카시트에 태우고 바로 집에 가려다가, 셋째가 좋아하는 빵집에 갔다. 나는 어린 막내를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이 막내에게 미안했고 막내가 안쓰러웠다. 빵으로라도 그녀에게 엄마의 미안함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


빵을 사고 차에 타려고 하는데, 셋째는 지나가는 강아지들, 할머니들을 보느라 정신없다. "나가요병"에 걸린 우리 막내딸. 나의 몇 번의 회유에도 그녀의 마음은 요지부동. 그녀의 눈에는 세상에 재밌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차에 타서 빵 먹자."

이 말에 냉큼 차에 올라탄 그녀에게 달콤한 단팥이 들어가 있는 식빵을 건냈다.

"맛있어?"

"응!!!"

"오늘 엄마가 언니오빠 유치원에 가야 해. 너는 옆집 이모랑 있어. 엄마 빨리 갔다 올게"

"안돼! 안돼!"

세살답지 않은 단호함. 두돌된 아이에게서 단호한 목소리를 들으니 놀랍기도 하고, 이렇게 컸나 싶어 신기하기도 했다.

"응? 네가 좋아하는 이모잖아. 이모랑 빵도 먹어"

"안돼 때비"


'안돼때비? 무슨 말이지??'

아... 아이들과 함께 읽은 안돼 데이빗이라는 책이 번뜩 떠올랐다. 막내의 말이 너무 귀여웠지만, 미안함이 울컥 올라왔다. 엄마는 항상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이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돌이 좀 지나 어린이집에 보낸 것이 마음이 걸린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우는 아이를 볼 때면, 내가 너무 모진가... 내가 힘들어도 아이를 집에서 봐야 하나....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내 마음 한자리에는 항상 걱정과 미안함과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다.



차에서 내려 막내는 좋아하는 분홍색 아기 자전거를 타고 있다가 엄마가 인사를 하자,  막내는 급한 마음에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엉덩이는 들고 양발로 땅을 밀며 자전거와 함께 엄마를 따라오며 울었다. 옆집 이모가

"언니야 어서가 어서가." 하자 나는 얼른 유치원으로 향해갔다. 뒤에서 막내의 울음소리와 옆집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엄마 따라 가자. 자전거 타고 가자."


유치원 회의가 생각보다 길어지자 마음이 급해졌다. 막내는 잘 있나. 빵은 잘 먹었나. 울음은 그쳤을까... 회의를 하면서도 막내의 목소리와 얼굴이 아른거렸다.


나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옆집 이모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길 건너 막내와 옆집 이모가 보였다. 횡단보도를 얼른 건너 막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반갑게 안아줘야지.


웬걸... 막내는 창문 안에 있는 고양이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엄마가 와도, 엄마가 자기를 불러도 그녀의 시선은 고양이에 꽂혀있었다.

"고양이 이쎠."

"맞네. 저기 고양이가 있네. 고양이 보고 있었구나? 귀여워라."

몇 분을 막내의 시선을 따라 고양이를 바라봤다.

아! 이제 나는 첫째 둘째를 데리러 가야 한다. 막내에게 회유하는 말을 해야 하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 이제 언니오빠 만나러 갈까?"

"아니"

아... 단호한 세 살일세.

신이 도우신 걸까? 때마침 고양이가 막내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막내는 울먹이며

"야옹이 업써. 야옹이 업써"

"이제 야옹이도 코~ 자러 갔나 봐. 우리도 이제 갈까?"

"야옹이 코자? 코~~ 자?"

"응 야옹이도 이제 코~ 자야지. 야옹아 안녕 잘 자~"

"안녕. 코~자. 잘 자~ 또 만나. 얀녕"


엄마가 없는 시간을 채워주고 적절한 타이밍에 사라져 준 고양이가 너무 고맙다. 그리고 엄마 없는 시간을 고양이를 보며 있어준 막내에게 너무너무너무 고맙다.


자기 전에 계속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데이빗은 엄마에게 "안돼! 데이빗"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엄마인 내가 막내딸에게 "안돼 떼비"라는 말을 듣다니... 막내딸의 표현이 웃겨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세상 모든 것에 재밌는 시선이 보내는 막내가 사랑스럽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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