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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Oct 15. 2020

섬집아기

지난 추석 연휴, 남편은 밀양 시가에 가고 나는 아이들 셋을 데리고 다대포에 갔다. 바다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는데 첫째, 둘째는 당연하다는 듯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렸다. 나는 셋째 데리고 모래사장에 있었다. 오빠 언니가 바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셋째는 자기도 들어가고 싶다고 내 손을 끌고 갔다. 그러나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무섭고 바다에는 가고 싶어 하는 셋째. 아이가 내적 갈등이 있을 때는? 엄마를 찾는다. 업어달라고 하는 셋째에게 엄마는 네가 무거워서 못 업는다고 몇 번의 의사표현을 했지만 막무가내로 내 등에 업히겠다고 한다. 제일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 누구냐? 분명, 말을 다 알아듣는데 필요할 때마다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며 고집 피우는 세 살 난 내가 낳은 자식이다.


설득이 안 되는 세 살된 셋째을 위해 나는 신발,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렸다. 셋째를 등에 업고, 첫째 둘째와 함께 잔잔한 바다로 들어갔다. 보드라운 바닷물이 내 발과 발목을 어루만지자... 고단했던 내 마음도 보드라워졌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첫째를 낳고 나서였나, 첫째 임신 중이었나.. 그 시절 내 멘탈이 연두부처럼 매우 말캉해져 있을 때였다. 아기를 생각하며 섬집 아기를 부르는데 눈물이 펑펑 흘렀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 감정이 "외로움"인 줄 몰랐다. 외로움이라는 유전자가 유독 강한 나였고, 그런 내 외로움을 더 강화시켜주는 부모님을 만났다. 나와 함께 있지만 가게일로 바빴던 부모님. 내 바로 옆에 있지만 우리 사이에 아주 두껍고 어두운 벽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벽에 문 하나가 있는데 그 문은 내가 절대 열 수 없고, 엄마가 기분이 좋을 때나 아빠가 기분이 좋을 때만 열리는 문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그 문이 열리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내가 아기에게 섬집아기를 불러줬을 때 내 안에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건드려졌다. 그때는 몰랐던 외로움의 시간들, 언제 열릴지 모르는 문을 보며 기대했다가 실망했다가 슬퍼했다가 원망했던 시간들이 눈물로 흘러내렸다.


내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로서 살고난 후, 셋째를 등에 업고 첫째 둘째와 함께 얕고 잔잔한 바닷속으로 들어가며 섬집아기를 부르는데, 첫째 둘째가 나를 따라 노래를 불렀다. 다 같이 섬집아기를 부르고 또 불렀다. 슬픔은 하나도 없었다. 눈물도 한 방울 없었다. 하늘은 맑았고 바다는 잔잔했고 우리는 즐거웠다. 


어느새 셋째는 더이상 바다가 무섭지 않은지 내게 등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셋째는 바다를 용감하게 기쁘게 걸어다녔다. 오래오래.


다대포를 갔다 온 후.. 며칠이 흘러 셋째의 입에서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엄마 혼자나마 집을 보고"

셋째는 우리가 함께 했던 바다를 이 노래로 기억하는 걸까?


나는 아이의 노래를 녹음파일을 들으며 섬집아기 노래 가사를 검색해봤다. 오늘 처음 알게 된 2절.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섬집 아기를 듣고 눈물 흘리지 않길....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는.. 함께 바다에 놀러 가고 함께 웃었던 사람... 자신을 항상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보고 싶어 달려왔던 사람으로 기억하길....

내가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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