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너무해

by Robin


우리 아이들이 엄마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 너무해!"

둘째 딸은 이 말 뒤에

"엄마랑 안놀거야!"를 꼭 붙입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에게 쪼로로 달려와 자기 온몸을 던지듯이 안깁니다.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모습은, 잊고 있던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나도 어릴 때 엄마에게 "엄마 너무해! 엄마랑 안놀거야!"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입밖으로 내뱉지 못했어요. 나는 엄마를 무서워했고, 엄마가 날 미워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엄마의 말에 자주 상처받고 그 상처를 속으로 삼켜야만했습니다. 초등학생인 저는 항상 편두통을 달고 살았어요.


내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가 등교하는 나에게 하교 후에 빨래를 걷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학교를 갔다와서 빨래를 만져보았지요. 몇 개를 만져보니 덜 말랐길래, 빨래를 걷지 않았어요. 저녁에 일을 마치고 오신 엄마는 빨래 건조대에 그대로인 빨래를 보고 나에게 화를 내셨지요. 나에게도 나름 이유가 있는데 화부터 내는 엄마가 미웠습니다. 당황스러웠고요. 엄마에게 빨래가 덜 말랐다고 말을 했더니, 엄마는 모든 빨래를 일일이 다 만져보시고는 마른 빨래 두 세개를 찾아내셨습니다. 그리고는 마른 빨래가 있는데도 개지 않았다고 고함을 치셨습니다. 나는 게으르고 엄마를 생각하지 않는 딸이라는 말을 들어야했습니다. 음.. 글을 쓰면서 울컥합니다.



너무 억울했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혼날 일인가? 내가 그렇게나 잘못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내가 한 행동에 비해 너무 많이 혼이 났습니다. 참 가혹했습니다. 참 너무했습니다. "엄마 너무해!"라는 말을 하지 못한 채, 가혹하고 너무한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 말들을 그대로 내 마음에 내리 꽂아뒀습니다.



괜찮은 대학, 괜찮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는 자주 우울했고, 세상의 말들에 민감했으며, 스쳐지나 가는 말도 굳이 잡아내서 스스로 내 마음에 꽂았습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예민하다고 했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고, 과거의 일은 잊어라고 했습니다. 엄마의 그 말은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고 나는 나를 "잘못"된, "고장"난 존재로 여겼습니다.



아침에 바쁘게 등원 준비를 하며 딸에게 옷입어라고 계속 말을 했지만 딸은 들은 채 만 채합니다. 일분 일초가 급한 아침인데, 유유히 벽에 낙서하고 있는 딸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다가 참다참다 못해 입에서 불이 뿜어져나옵니다. 엄마가 용가리로 변신하는 순간입니다. 육아란 참 대단한 경험이지요. 용가리된 엄마의 모습에 딸은 "엄마 너무해!"를 외칩니다. 쪼로로 달려와 안기는 딸의 묵직한 무게를 느낄 때, 아이의 묵직한 생명도 함께 느껴집니다. (음.. 우리 딸의 무게가 남달라서 더 잘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엄마만큼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줄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은 항상 엄마에게 열려있습니다. 엄마에게 완전한 믿음을 갖고 있기때문에 아무런 방어체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엄마에게 무방비 상태인 아이들은 엄마의 작은 말에도 상처를 받습니다. 작은 말에 상처 받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말도 내 맘대로 못하나, 내가 못할을 말했나, 틀린 말도 아닌데 왜 저렇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잊으라는 과거, 그 과거의 우리 엄마를 떠올리며 그 사람에게 상처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과 닿아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장난감 정리하자, 자러 들어가자.... 이런 사소한 말에도 상처 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기가 차기도 하고 내가 상전을 모시고 사네...라며 욱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내가 너보다 서른 다섯살이나 많아!라는 유치한 말이 나오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이들이 나에게 그만큼 이해 받고 싶구나, 그만큼 나에게 기대고 있구나..를 생각해봅니다.


"엄마 너무해! 엄마랑 안놀거야!" 라고 말하는 딸에게

"오예~~ 엄마한테 놀아달라고 하지 말기!! 오예~ 약속해!!"라고 말하며 웃자 딸은

"엄마 너무해 엄마랑 놀거야"라고 합니다.

엄마의 말에 너무 쉽게 바뀌는 딸의 마음이 귀엽습니다.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딸에게

"엄마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림이 많이 그리고 싶었어?"라고 말하자 딸은 얼굴을 내 가슴팍에 뭍고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딸을 꼭 안아주며 나는 내 마음 속에 가득차 있는 사랑을 꺼내어 소리로 내봅니다.

"사랑해"

딸은 반달 눈을 하며 싱긋이 웃고, 옷을 입을 줄 알았으나 다시 그림을 그리지요....네, 육아에 반전은 없네요. 그림 그리는 딸을 뒤로 하고

"엄마 나갈게 잘 그리고 있어" 라고 하자 딸은 놀래서

"같이가! 엄마 너무해!"라며 부랴부랴 따라 나옵니다. (그 놈의 엄마 너무해....) 현관에서 얼른 옷을 입히고 딸의 손을 꼭 잡고 어린이집에 향합니다.



나는 우리 엄마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왜 그랬지?라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어른이고,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엄마에게 이해받고 싶지만, 엄마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육아로 무척 지칠 때, 엄마와의 기억이 나를 아프게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덕분에 아이들의 상처, 타인의 상처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처에 예민한 덕분에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이해해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치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곧 아이들이 하원할 시간입니다. 아이들에게 상처주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기 보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되길 바래봅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무엇을 이해받고 싶나요?

당신을 누구를 이해하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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