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응?"
"나 또 뭐 물어봐도 돼요?"
"응."
"평생 아픈 대신 장수하는 자식과 건강한데 요절하는 자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할아버지는 무얼 고르시겠어요?"
할아버지가 기가 찬 듯 '허' 소리를 냈다. 눈에 보이진 않아도 아마 살다 살다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표정을 짓고 계실 게 뻔했다.
"그러니까 뉴스에 자주 나오는 안락사 같은 거 말이에요. 환자가 괴롭더라고 그냥 두는 게 맞는지, 고통에서 풀어주는 게 최선인지. 공부 많이 한 어른들이 나와서 토론도 하고 그러잖아요. 상황은 좀 다르지만 그게 만일 내 자식이라면 어떨까 상상한 적이 있거든요. 만일 하느님이 '너한테 자식을 주겠다. 대신 두 가지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 첫째 아프더라도 오래 산다. 둘째 짧게나마 건강한 삶을 누린다.' 그러면 어떡하나 꽤 오랫동안 고민했었거든요. 할아버지라면 어떡하시겠어요?"
장씨 할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노여운 건지 슬픈 건지 모를 호흡이었다.
"아름아."
"네?"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부모는 없어."
“......”
“넌 입버릇처럼 항상 네가 늙었다고 말하지. 그렇지만 그걸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거, 그게 바로 네 나이야. 질문 자체를 잘못하는 나이. 나는 아무것도 안 고를 거야. 세상에 그럴 수 있는 부모는 없어.......”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중
아이는 세상에 나오고 싶어 부모를 선택한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나에게 세 아이가 온 이유는? 우리 부부 사이에서 커야만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내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무척 많이 했다. 길 가다가 아픈 사람들을 보면 불길해하며 혹시 이것이 비극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불안해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발 건강하기만을 바랬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아이 손가락 발가락이 다 있는지부터 본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셋째를 임신 했을 때도 역시 불안했다. 두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으니 셋째가 아프게 태어날 확률이 높은 건 아닐까? 하며 또 불안했다.
셋째가 내 뱃속에서 7개월쯤 살았을 때, 나는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가 났다. 운전 중에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나서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신호를 기다리던 앞차를 그대로 박았다. 그때, 핸들과 배가 심하게 부딪혔다. 배가 너무 아파 쓰러져서 구급차를 타고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에 갔다. 내 담당의가 초음파 검사를 하다가 갑자기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연락을 했다. 태반박리가 진행되는 것 같다고. 태반박리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배가 너무 아파 눈물이 났다. 무서워서 더 눈물이 났다.
다시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갔다. 구급차 안에서 무서움에 눈물만 났다. 태반박리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내 아이를 잃을까 무서웠다. 눈앞이 깜깜하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대학병원으로 이송되고 진찰을 기다리는 중, 담당의사에게 물어봤다.
“태반박리가 뭐예요?”
“태반이 분리되어서 나오는 거예요.”
“그럼, 아기는 괜찮은 거지요? 지금 출산하는 건가요?”
“...... 아니요. 출산은 아니에요.”
“그럼 뭐예요?”
“......”
순간 느낌이 왔다. 아이가 죽는 거구나. 응급실에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침대도 배정받지 못해 응급실 출입문 앞, 간이침대에 누워 엉엉 울었다. 아파도 좋으니, 뭐가 잘못돼도 좋으니 살아만 달라고 울었다. 내가 대신 죽겠다고 울었다. 내가 죽으면 우리 첫째 아이 둘째 아이는 엄마를 잃는데, 그 아이들은 어쩌나.... 그것이 슬퍼서 더 울었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아이임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태반박리는 진행되지 않았다. 퇴원 후 몇 달 뒤 나는 무사히 아이를 출산했다. 출산하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내 아이가 몸은 건강해도, 정신적으로 이상하지 않을까? 오래 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을 했다. 두려웠다. 잃을 까봐.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아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도 혹은 나에게 문제가 생겨도. 그럼에도 다 이유가 있겠지. 아이들이 나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생겨도 다 이유가 있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을 기쁘게 사는 것뿐이다.
우리 아이 셋은, 나와 남편을 엮어주려고 하늘에서 오랫동안 같이 계획을 짜고 있었겠지. 생각보다 쉽지 않아 애를 먹었을 것이다. 세련된 차가운 도시 남자를 좋아하는 엄마가, 시골 출신의 더벅머리에 숫기 없는 아빠를 좋아하게 만드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겠지. 어떻게 둘을 엮어줄지 머리 맞대고 고민했을 우리 아이들.
나는 세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일까? 더 좋은 부모를 만났으면 더 잘 크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의기소침해진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늘에서 배 볼록하고 얼굴 통실한 아기천사 세 명이 작전 짜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 아이들의 엄마가 꼭 나여야만 했던 이유도 생각해본다. 엄마의 온전한 모습을 찾게 해 주려고 온 아이들. 아이들을 내 삶의 나침반으로 삼아 본다.
Q1. 아이와 깊은 연결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Q2. 아이가 당신을 부모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