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니던 시절, 그러니깐 20대 중후반에도 내게 흰머리가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업무가 집중되던 시기를 지나고 나면 정수리 부근에 흰머리가 많이 났어요. 두피가 간지러운 밤을 며칠 보내면 흰머리가 꽃이 피듯 활짝 만개했어요. 회사 동기 언니가 내게서 흰머리를 발견하고는 뽑아주겠다며 머리카락을 들췄는데.. 스무개는 넘게 있는 걸 보고 놀라 차마 말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우울했더랬지요.
첫째, 둘째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흰머리가 더욱 많아졌어요. 내가 이렇게 늙었나싶어 화장실 거울을 보며 혼자 흰머리를 뽑았어요. 뽑다가 안되면 남편에게 뽑아달라고 하니, 남편은 흰머리카락이 없다고, 자기 눈에는 안보인다, 아직 젊어서 흰머리는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열 개만 뽑아 달라고, 더 이상 부탁 안할게!라고 했더니 흰머리가 그렇게 안 보인다던 남편은, 너무 쉽게, 순식간에 10개를 뽑아주더군요. 이건 뭐지?하는 마음도 잠시, 흰머리가 뽑힐 때 그 희열은 어마어마합니다. 간질간질했던 두피가 시원하기도 하고 내 젊음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처치하는 통괘함이 있어요.
셋째를 낳고 나의 흰머리는 어떨까요? 그래요, 슬픈 예감은 왜 항상 틀린 적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상대로 정말 많이 늘었어요. 셋째 낳고 몸조리 잘하면 피부도 돌아오고 머리카락도 돌아오고 몸매도 돌아온다고 한 사람 누군지 만나서 따지고 싶을 정도로 피부, 머리카락, 몸매 걔들 중에 돌아온 아이는 아무도 없네요. 다시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듭니다.
둘째 때까지는 세치 수준의 애교 흰머리였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걸 다 뽑으면 머리카락의 1/10이 사라질 것 같아요. 이제 뽑을 수 없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내 신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상하게 나쁜 것은 왜 자꾸 보고 싶은 건지... 흰머리카락이 얼마나 더 늘었는지 항상 체크를 하며 볼 때마다 한숨, 신세타령입니다. 나도.. 늙었나봐... 아닌척 할 수가 없어. 이제 흑....
점점 늘어나는 흰머리들을 보며 갑자기 떠오른 기억이 있습니다. 아빠와의 기억이에요. 어릴 때 아빠 흰머리를 많이 뽑았어요. 아빠는 오빠와 나에게 흰머리를 자주 뽑아 달라고 하셨는데요. 흰머리 1개에 1원이었어요. 아무리 아무리 많이 뽑아도 100원을 벌 수 없는, 그때는 눈치 채지 못했던, 불평등계약이었지만 오빠랑 나랑 정말 재밌게 뽑았어요. 아빠에게 아프지 않냐고 물을 때마다 시원하다고 하셨지요. (그래요, 모근의 그 짜릿함과 시원함 이제 나도 압니다.) 어느새 우리가 자라고 아빠의 흰머리는 더욱 늘고, 언젠가부터 아빤 우리에게 흰머리를 뽑아 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20년이 지나 내가 20대 후반이던 어느 날, 아빠가 내게 족집게를 건내며 흰눈썹을 뽑아달라고 하셨어요. 아빠의 흰머리는 염색으로 검지만 흰눈썹 하나는 아빠의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지요.
아빠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흰머리를 보며, 다 뽑고 싶은 마음. 여전히 청춘이고 젊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요? 많이 늘어서 더 이상 뽑기 힘들어졌을 때, 그래 나이는 어쩔 수 없지...세월을 거스릴 수 없지...라고 쓸쓸히 수긍했을까요? 아빠에게도 청춘이 있고, 로망이 있고, 청춘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겠지요?
젊은 시절 머리숱 많고 숯검댕이 눈썹에 잘생겼던 우리 아빠는 이제 머리숱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흰눈썹도 늘었고요. 가족들 앞에서 가부장적이고 고집 세던 아빠는 손주들 앞에서 한없이 약해진 할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아빠의 흰머리를 뽑으며 신나하던 딸은, 사춘기를 지나며 아빠를 많이 미워하고 원망하다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내 청춘을 먹고 우리 아이들이 자랐듯이, 나는 아빠의 청춘을 먹고 자랐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내가 배부르다고 도저히 못 먹겠다고 짜증내도 붕어빵 하나 더 먹으라고 건내는 아빠의 마음을 이제는 압니다. 사랑의 표현으로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주는 것밖에 모르는, 사랑에 서툰 사람이라는 것도 이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친정에 놀러 온 딸에게, 그녀가 좋아하는 고구마라떼를 사다주시며, “맛있나?”라고 물어보십니다. 아빠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나는 압니다. “응 맛있어요. 아빠가 사준 거 맛있어. 고마워요.” 이 말이 아빠에게는 "아빠 정말 사랑해요."라고 들리는 것도 압니다. 맛있는 음식을 나에게 건낼 때 아빠의 아이같은 미소가 좋습니다. 아이 같아서 싫었던 아빠였는데... 이제야 아이같아서 힘들었을 아빠의 시간들이 보입니다. 그 시간들이 아빠의 머리숱도, 고집도, 치아도 다 가져갔지만... 아빠의 아이같음은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아이같은 아빠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