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무지개는 뜬다

by Robin

어젯밤 아이들을 재우고 유치원 회의를 갔다 와서 조금 놀다 보니 밤 12시... 자려고 누웠는데 셋째가 깨서 달래다 보니 2시쯤 잠이 들었다. 첫째 둘째가 평균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다 오늘은 급기야 4시에 일어났다. 너무너무너무 화가 났다. 잠을 다시 청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의 깨어 조잘거리는 소리에 나는 잠을 다시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소리 덕분에 셋째까지 깼다. 화가 났다. 요즘 나의 밤 수면시간은 평균 2~3시간이다. 어떤 날은 1분도 자지 못한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셋째 낮잠 시간에 한 시간쯤 같이 잔다. 감사하게도 첫째 둘째는 그런 나를 찾지 않고 둘이서 논다.



나이 수면부족은 아이들 방학과 함께 왔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의 방학은 4주다. 음.. 아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시간이나 나에게는..... 세 아이와 24시간을 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살짝만 건드려도 폭발하다가도 또 어느 때는 우울하고 기력이 없다.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나를 잊지 않게 해주는 온갖 방법들을 알지만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시간들이다.



아무튼 오늘은 좀 너무 많이 화가 났다. 새벽 4시라니. 너무 화가 나고 아이들이 미웠다. 새벽 4시에 일어난 아이들이 오전부터 졸려 잠투정으로 짜증내고 화내고 울고불고할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또 오늘은 외출을 해야 하는 상황. 아이 셋을 태워 왕복 1시간의 운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 겁이 났다. 졸음운전이 겁이 났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고단할지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이 화가 났다. 아이들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내 삶이, 내가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너무하다 느껴졌다. 어떻게, 모두 잠이 없는 아이 셋을 내게 보내셨나이까!!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재우고... 캔맥주를 얼른 땄다.(맥주가 없어서 옆집에 빌려 마셨다.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다.) 홀짝홀짝 마시며 장성규의 워크맨을 보는데 마당을 통해 "무지개다 무지개"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깟 무지개가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첫째 아들과 함께 본 무지개가 생각났다. 둘째를 낳고, 힘들었다. (그래 힘들지 않았던 시절은 별로 없었지...) 첫째 아이는 유제품 알레르기가 심각했다. 유제품을 먹은 아이와 손이 닿여도 온몸에 발진이 올라왔다. 유제품을 먹는 경우에는 기도가 부어 병원에 가야 했다. 그런 아이를 받아주는 유치원이 없어서 나는 첫째 둘째를 집에서 함께 돌봐야 했다. 자신을 돌보는 법도 모르는 내가 아이 둘을 돌보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대단지 아파트에 살았으나, 아이들은 대부분 어린이집에 다녀, 텅 빈 놀이터에 아이들과 나만 있었다. 외로운 나날. 그 시간에 유일한 위안은 친구 집에 가는 것이었다. 차로 30분 거리. 아이 둘을 태우고 친구 집에 가면 어른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와 아이들을 따뜻한 게 반겨주는, 마음 따뜻한 친구. 그 친구 집에 가는 날이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날이었다.



그날도 그 친구 집에 간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첫째 아이가 "엄마 무지개"라고 말했다. 차창밖으로 보니 무지개가 떠있었다. 내 아이가 처음 본 무지개였다. 내가 엄마가 되고 처음 본 무지개였다. 아이는 두고두고 무지개를 본 이야기를 했다. 노란빛과 붉은빛이 섞인 하늘에 떠 있던 그 무지개. 차가 막혀 둘째가 울까 걱정하며 운전했던 나의 초조한 마음과 뜨뜻한 차 안의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첫째 아이의 첫 무지개가 생각이 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시던 맥주도 내려놓고 마당으로 나갔다. 하늘 가득히 무지개가 있었다.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 똑똑똑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는 한 어머님과 눈이 마주쳤다. 무지개에 설레, "저기 무지개가 떴어요!"라고 말했더니, 고개를 돌려 무지개를 보셨다. "너무 예쁘다"하시는 어머님과 나는 잠시 무지개를 같이 바라봤다. 낮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어색하지 않고 동화 같았다.(물론 그분은 마음은 모른다....)



무지개가 말했다.

"이 힘든 와중에 글을 쓰는 이유는 뭐니?"

내가 말했다.

"아이 키우느라 힘든 엄마들에게 혼자 힘든 것이 아니라고, 다 힘들다고 말해주고 싶어. 같은 슬픔을 가진 이가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




나는 힘들다. 나는 연약하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못났다. 그래서 글을 쓴다. 그래서 무지개를 본다. 함께 힘들고 함께 위로받자고. 주문했던 치킨이 왔다. 힘들 땐 무지개도 좋지만 항상 뜨는 것이 아니니 가까운 치맥이 큰 힘이 된다. 내일부터 다음 주 화요일까지 4년 만에 생긴 남편의 여름휴가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무지개가 뭘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픈 나의 무지개는 뭘까 생각해본다. 치킨 냄새에 생각이 마비가 된다. 우선 내일은... 나는 하루 종일 가출을 할 것이고 아이들에게는 아빠라는 무지개를 보여주련다.



다들 여러분의 무지개를 만나시길.




1. 여러분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브런치의 글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여러분이 최근에 본 무지개는 언제이며, 무지개를 보며 어떤 생각이 떠올랐나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EXIT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