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1호 2호가 유치원에 가고, 3호는 내 등에 업혀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3호를 아기침대에 얼른 눕혔습니다. 그제 빌렸던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상쾌하게 들고 아이들 방에 갔습니다. 이 층 침대가 있는 곳.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는 나의 아지트가 됩니다. 2호가 자는 1층 침대에 누워 소설책을 읽었습니다. 너무 재밌어서 제발 3호가 늦게 깨길 바라며 또 읽고 읽었습니다.
시간이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 점심 약속이 있었지. 책 놓는 것을 아쉬워하며 느릿느릿 욕실로 갔습니다. 나무 바닥의 삐그덕 소리가 좋습니다. 매일 쓸고 닦는데도 두 발작 만에 발바닥에 무엇인가가 밟히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욕실 문을 열었습니다. 나의 임무. 3호가 깨기 전에 신속 정확하게 씻어라! 샴푸로 머리를 얼른 감고 칫솔에 치약을 묻혀 입에 넣는 순간. 익숙한 향이지만 낯선 맛이 났습니다. 아.... 아... 그런 거였구나.
어젯밤 아이들을 씻기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다시 욕실로 왔을 때 2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내 칫솔을 깨끗하게 씻고 있는 모습. 그때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 그런 거였구나. 너의 샴푸로 엄마 칫솔을 깨끗하게 씻어주었구나. 그랬구나. 그랬어. 그러나 꼼꼼하게 다 헹구지는 못했구나. 그랬구나. 그랬어. 입안에 치약과 함께 가득 퍼지는 익숙한 샴푸 향. 그리고 낯선 샴푸 맛.
속이 조금 역겨워 욱~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이 세상에 태어난 지 39개월밖에 안된 꼬맹이. 수도꼭지에 손이 잘 닿지 않아 보조 의자가 꼭 있어야 하는 상꼬맹이. 그런 네가, 너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는 네가, 엄마를 생각한다고 엄마 칫솔을 깨끗하게 샴푸로 씻으려고 했다는 것이, 그것이 너무 맹랑하고 어이가 없고 웃기고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오늘 읽은 '두근두근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떠오릅니다.
‘자식은 왜 아무리 늙어도 자식의 얼굴을 가질까?’
그러자 뜻밖에도 방금 전까지 쩔쩔맸던 문제의 실마리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가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누구도 본인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니까, 특히 서너 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 거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아, 내가 젖을 물었는구나. 아, 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구나.. 아,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봤구나, 하고. 자기가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 것.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나도, 39개월 때 엄마의 칫솔을 샴푸로 깨끗하게 씻었을까? 나도 이렇게 해맑게 웃고 엄마 품에 온몸을 비비다가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엄마 입술에 뽀뽀를 하며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을까? 내가 기억하지 못한, 나의 어린 기억을, 그저 사랑만 받던 시절을 아이들을 통해 봅니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나에게 소리칩니다. 너도 이렇게 한없이 귀여운 아이였다고, 너도 이렇게 사랑 많이 받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