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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Sep 10. 2019

파란 나라를 보았니?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나는 대학 시절 총여학생회에 속해 있었다. 남녀차별을 싫어했으며 남녀불평등을 해소해야한다고 말하며 그 이유를 피력하고 다녔다. 어릴적부터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여러 차별을 당했다. 독립운동가셨던 할아버지는 손자 4명이 있으심에도 마지막으로 손녀인 내가 태어나자 무척 서운해하셨다. 그리고 오빠들에게는 하버드대, 예일대, 스탠포드대, 동경대를 가라하시며 총명탕을 주셨지만 딸인 나에게는 어느 대학을 가라고도, 총명탕을 주시지도 않으셨다. 왜 나는 안주시지? 왜 나에게는 좋은 대학 가라고는 이야기를 안하시지?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릴적부터 받아왔던 공기같은 차별 중에 하나겠거니 하며 그런 상횡에 익숙했다. 큰집에 가면 많은 오빠들 사이에서 외로웠다. 나는 오빠들과 다른 사람이었다. 오빠들이 할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고 나면, 막내지만 여자인 나는 큰집 큰 마루를 닦아야했다. 그때 내 나이가 6살이나 되었을까? 딸이 귀한 집에서도 딸은 차별받을 수 있다.



나는 아이 셋을 조사원에서 낳았다. 무통주사, 촉진제가 없이 조산원에서 아이 셋을 낳았다. 내가 조산원에서 낳았다는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고, 누군가는 대단하다 했고, 누군가는 독하다고 했다. 내가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은 이유는 단순하다. 불편한 자세로 출산하는 것과 원치 않는 시술을 받아야하는 것이 싫었다. 내 뱃속의 아기가 신호를 보내는대로 그 순리에 맞게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조산원에서 아이들을 출산했고 조산원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평화롭고 즐거웠지만 타인의 경험은 어떨지 모른다. 조산원에서 출산했다고 다들 만족스러울 수 없다. 그리고 병원에서 출산한 것이 잘못됐거나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발도르프 유치원에 다닌다. 이 유치원은 누리과정과 다른 교육이라 인가를 받지 못한다. 발도르프유치원의 아이들은 하루종일 그냥 논다. 매일 같은 길을 산책가고, 뜨개질을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 한글교육이나 다른 인지교육이 없다. 미디어 노출을 최대한 피하며 자연과 친숙한 생활을 한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는 유별나다 그러고 누군가는 그러다가 아이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그런다.



오늘, 인터넷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분들의 글을 봤다. 슬펐다. 내가 배운, 그리고 내가 아는 페미니스트는 세상의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여자를 차별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자를 차별하는 것, 약자를 차별하는 것, 외모를 차별하는 것... 그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것. 그래서 페미니즘은 아름답고 평화 그 자체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모든 이들과 연대할 수 있다. 차별당하는 여자들, 남자들, 노동자들, 엄마들, 아빠들, 아이들.... 그 모두와.



여자가, 남자보다 평균적인 사회적 지위가 낮다.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에게 차별받는다고 해서, 여자가 남자를 차별하는 것이 과연 페미니즘일까? 여성의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 누군가의 인권을 빼앗고 무시하는 것이 진정한 여성인권의 신장일까?



나는 아들 한 명과 딸 두 명을 낳은 엄마이자 여자이자 사람이다. 총여활동을 했고,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대안교육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고, 공동체주택에서 산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굳이굳이 선택해서 가는 사람이다. 나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길을 가야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 말이 맞으니 내 길로 가야해!라고 말하는 것이 차별이다. 내가 뭐시라고. 내가 바라는 세상은, 내가 옳다고 여기는 길에 모두가 따라가는 세상은 아니다. 유별난 사람도, 유별난 삶의 태도도 인정되는 세상이다. 다양한 것이 가능한 세상이다.



조산원 출산도 병원출산도 가정출산도, 모두 제도권 안에서 안전하게 용인되는 세상이길 바란다. 대안교육을 받은 이든 제도권교육을 받은 이든 그 모두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잘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이길 바란다. 여자든 남자든 어른이든 아이이이든 노인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고학력자든 저학력자든... 모든 사람들이 그 어떤 기준으로 차별받지 않고 각자의 삶을 그저 잘 살 수 있는 세상이길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차별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일까? 내가 세상에 있는 차별을 조금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대학 때 남녀평등을 위한 행사, 반전 운동, 각종 파업 현장 등에서 내가 이렇게 소리치고 외치면 세상이 변할 줄 알있다. 나에게 손가락질 하는 이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의 무지와 무관심을 욕하며 당신같은 어른들때문에 세상이 이 모양이라고 욕했다. 그때 나는 행복했나? 그렇지 않았다. 불행했다.



불행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나도 변하지 않았기때문이다.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차별이 꿈틀대는가!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모순이 있는가!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 차별을 만들었다.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고 싶었으나, 평화를 만든다는 명목하에 나는 갈등과 분쟁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일베와 메갈을 욕하고 싶지 않다. 그 누구도 욕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한번도 평화를, 평등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누구도 가르쳐준 적이 없다. 남녀차별을 없애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장애인 차별을 없애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동폭력을 없애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우리 삶의 폭력과 잔인함을 평화로 만드는 법을 구체적으로 제대로 배운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러니 차별하는 이들에게 그것이 온전히 그들의 몫인것처럼 비난할수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을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사는 삶이 허락되는 사회다.(물론 법안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게 가능해! 네 꿈을 맘껏 펼쳐봐!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한다. 한살림에서 만난 한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이 소우주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인간이 우주예요. 인간 안에 우주가 들어 있어요. 당신이 바뀌면 우주가 바뀌는 겁니다."


누군가를 내 뜻대로 끌고가려는 마음이 들때, 그것이 내 아이이든 부모님이든 남편이는 친구이든... 그때마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속으로 되뇌인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원하는 변화가 되자."

 



Q. 여러분은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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