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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Sep 04. 2019

육퇴 후 맥주 일병

혼자 침대에서 잘 자던 셋째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내 등에 업혀야만 잠이 든다. 무릎이 너무 아파 누워서 재웠더니, 재우는데 3시간이 걸렸다. 셋째 아이는 커서 뭐가 되도 될 것 같다. 이렇게 끈기 있는 아이는 처음이다. 세 시간동안 눕혀 재우고 방문을 조심스럽지만 상쾌하게 열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게 문을 닫은 후에 바로 냉장고로 직행했다. 냉장고 윗칸 왼쪽에는 요즘 유행이라는 맥주 TERRA가 황홀하게 자리 잡고 있을 터였다. 신나게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영접했다. 어떤 잔에 마실까 살짝 고민했다. 큰 유리잔에 마실까? 하다가... 나의 소중한 맥주를 빨리 마시기 아까워, 선물로 받은 예쁜 꽃무늬가 그려 찻잔에 따라 마시기로 결정했다.



꽃무늬 찾잔에 맥주를 한잔 따랐다. 그래 맥주에는 꽃무늬지. 클래식하군. 설렜다. 오늘 내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이다. 10키로가 훌쩍 넘는 아기를 몇시간 동안 업어야했던 것, 아이 둘의 싸우는 소리를 견뎌내야 했던 것, 아이들을 돌보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던 것... 아침 5시부터 저녁 8시반까지 나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다.

하루를 반추해본다. 나는 참 자기 반성을 잘하는 존재다. 유치원에 아이를 같이 보내는 한 엄마의 이야기가 계속 귓속을 맴돈다.

'요즘 봄빛엄마 표정이 밝아져서 좋았는데, 왜 또 그런 생각을 해"


나는 변명하고 싶었다. 내 상황이 그랬다고. 둘째 아이를 수개월 때렸던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가 아스퍼거로 의심이 됐지만 그 부모는 검사를 끝끝내 받지 않았고, 수개월 맞은 둘째 아이는 소아우울증 초기를 진단 받았으며, 최근에는 그 아이의 부모 중에 누가 우리 딸아이를 가해자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나는 힘들어요.... 웃을 수가 없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어느새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왜 그래, 큰 그림을 봐, 니가 고객들에게 잘하는 말 있잖아. Meta view. 더 크게 보란 말야. 작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너의 전체 삶 속에서 그 사건을 보라고! 너는 고객에게 그리 말하면서 왜 정작 스스로 하지 못하니? 그래서 코치라고 강사라고 할 수 있겠니? 너의 일상생활을 보는 주변 사람들이 코치고 강사이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너를 얼마나 욕하겠니....  나를 나락끝으로 내모는 말을 끝없이 하고 싶었다.


나는 과연 코치와 강사를 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자책한다.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어렵다. 그런 나에게 한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봄빛님, 남들보다 더 낫다고 코치가 되고 강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보다 먼저 알았고 그것을 잘 전달해서 코치, 강사가 되는 겁니다. 지식과 삶을 합일 시키려고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봄빛님의 특별함입니다.


나는 항상 별거인 사람이 되고 싶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할때마다 나는 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 모든 방면에서 잘하고자 하는 나를 알아차려준다. 나의 기질적인 방면과 내 유년기시절의 경험을 되돌아본다.


맥주를 한모금 마신다. 시원한 목넘김과 고소한 향기. 하루종일 육아로 고생한 나에게 주는 상, 맥주. 항상 혼나고 눈치본다고 고생했던 어린 나에게 어떤 보상을 주고 싶을까? 그저 가만히 나를 알아준다. 특별해지고 싶구나.. 그래도 괜찮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구나.. 그래 그래 괜찮아. 잘안돼서 속상해.. 그래 그래 얼마나 속상하겠어. 다 괜찮아....


갑자기 대학생때,  친구와 소주 마시고 학교 잔디밭에 누워, 별을 보면서 불렀던 노래가 생각이 난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위대하다. 육퇴후 맥주 마시는 모든 엄마 아빠들을 위하여 거국적으로 건배!



Q. 여러분은 하루를 살아낸 자신에게 어떤 보상을 주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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