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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건 멋진 거야

2월 19일 주제 - 우주

by 생각샘

내가 다닌 대학은 산속에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홀로 교정 잔디에 누워 있는 걸 즐겼다. 친구들이 너 거기서 뭐 하냐고 물으면 그냥 있어라고 했지만 사실 그냥 있지 않았다. 나는 아주 조용하고 격렬하게 우주가 그린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하늘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밝고 어수선한 낮에는 하늘색 바탕에 하얀 무늬의 장막을 치고 있다.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온 세상이 수채화에서 유화로 바뀌며 만물이 진한 선을 그리면 어둠이 땅 위에 차분하게 내려앉고 빛조각이 하나씩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낸다. 쪽빛 하늘에 쏟아진 빛가루는 우주가 그린 과거다. 저 반짝이는 빛이 내 눈에 들어오기까지 1광년이 걸렸을지 100광년이 걸렸을지 모른다. 어쩌면 사라지고 없을 별도 있고 더 작아지거나 커진 별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광활한 공간이 아찔하게 나를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그 기분을 잊고 살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오늘 소개하고 싶은 책은 아나카 해리스가 쓰고 존 로가 그린 <모른다는 건 멋진 거야> 아나카 해리스는 과학책 전문 편집자인데 이 책이 그의 첫 번째 동화책이라고 한다.


엄마와 딸 에바는 이 세상과 우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증을 찾으며 즐거운 저녁 산책을 한다. 에바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엄마는 반문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전형적인 대화식 철학수업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배워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차분하게 느끼게 한다. 정말 멋진 엄마다.


이 책을 읽으며 대학 때 교정에 누워 느꼈던 그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했다. 수업을 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꼭 이 책을 읽어준다. 모른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이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부터 배우게 하고 싶어서다.


오늘은 100일 글쓰기 도전의 50일째 되는 날이다. 나 자신과 싸워야 하는 대장정의 절반을 한 발 한 발 걸어왔다. 새로운 일도 시작했기 때문에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새로운 일은 그 이름도 유명한 단군이래 최대 재건축을 한 새로운 아파트 단지에서 논술 수업을 시작하는 거다. 준비할 일이 너무 많다. 몸과 마음이 흐물흐물 해지도록 피곤해서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더니 아주 기쁜 소식을 들었다.


나는 100일 글쓰기 도전에 성공할까? 12,000세대 단지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논술 교사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의 미래는 어찌 될까?

나는 모른다. 하지만 모르니까 멋질 거라고 기대해 보련다. 끝까지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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