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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Feb 25. 2020

악어의 눈물


시어머니와 연을 끊은 지 일 년이 넘었다.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 속에서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한테 문자가 왔다. 연을 끊겠다고 선언한 후 처음이었다.


“오늘 할머니 기일이다. 늦게라도 와서 밥 먹고 갔으면 좋겠다. 나한테 서운한 것 풀어라. 미안하구나.”

“저 오늘 수업 끝나고 집에 오면 밤 11시 넘습니다. 오빠가 어떻게 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저 어머니한테만 서운해서 그러는 거 아닙니다. 제가 그 집에 있다가는 죽겠구나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어머니 잘 모르시겠지만 어머니 아들들 눈치도 없고 실생활에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에 정말 무능력합니다. 그리고 어머닌 그 구멍을 저 혼자 다 메우길 바라시지만 저도 이제 벅차고 힘들어서 못하겠습니다.”

“열심히들 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구나. 잘 될 거다. 아들도 답답하겠지. 너한테 말은 안 하지만 많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더라. 정말 미안하구나.”

“전 사업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을 말하는 겁니다. 어머니는 제가 열이 40도가 넘어도 설거지 안 한다고 소리 지르는 분이란 걸 오빠가 빨리 파악하고 상황 대처를 잘했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지 않았겠지요. 부모님 걱정하실까 봐 제가 놀러 갔다고 했다면서요. 아파도 일해야 한다는 분이신데 놀러 갔다고 했다면 어머니 마음으론 저 죽이고 싶으셨을 텐데요. 그 집에서는 아내가 아프든 말든 부모님 걱정하고 있는 남편과 아파도 와서 밤새 일해야 한다고 소리 지르시는 어머니 사이에서 전 죽도록 일만 하다가 죽어야 합니다. 전 이제 그렇게 살기 싫습니다.”

“애미야 그렇게 아픈 줄은 몰랐구나. 병원 가서 수술했다는 소리 듣고 엄청 놀랐다. 많이 속상하고 힘들었겠구나. 이해한다. 나 같아도 보기 싫을 것 같구나. 아가야 난 네가 무척 보고 싶구나.”


소름이 끼쳤다. “야!”, “너!”라고 항상 소리를 지르던 시어머니가 “애미”, “아가”라는 처음 듣는 호칭으로 나를 조선시대로 불러들이는 것부터. 아들이 아팠다면 몰랐을 리가 없는 분이 며느리가 아픈 것은 몰랐다고 하는 것까지. 사실 그분은 모르는 게 아니라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팠다는 걸 알았어도 혹독하게 부려먹기 위해서는 노예의 엄살로 간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고 싶다’는 말에는 두려움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다시는, 꿈에도 보고 싶지 않았다. 당신 같아도 보기 싫을 거라는 것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보자는 말이 차마 나올 수 없어야 한다. 단지 시어머니는 제사 때 친척들 앞에서 당신 체면을 세우기 위한 노예 며느리가 필요한 것뿐이다. 시어머니의 뻔뻔함에 몸서리를 치며 번호를 차단했다.


얼마 후였다. 남편이 뭔가를 계속 망설였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할 말을 못싸서  끙끙대는 꼴이다.

“뭐야, 빨리 말해.”

“아니야.”

“뭔데!”

“......”

“아, 말을 안 하려면 완벽하게 감추던가 애초에 티를 왜 내!”

그러자 살얼음판 건너듯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한 글자씩 살그머니 묻는다.

“이제 부모님과 관계회...”

“뭐?!”

놀란 남편은 ‘복’이라는 뒷말을 꿀꺽 삼켰다.

“지금 뭐라고 했어! 나보고 그 꼴을 또 당하라고?”

“아니. 미안해. 내가 성급했다.”


몇 개월이 지난 뒤, 낯선 이름의 누군가가 남편에게 귤을 한 상자 보냈다. 남편도 누가 보낸 것인지 모르겠다며 알아보겠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보낸 거였다. 우리가 안받을까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보내신 거라고 한다. 이 일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새로울 것도 없다. 그분은 늘 그렇게 일방통행이었으니까. 이건 시어머니다운 일방통행의 사과다. 그분의 말과 행동에 며느리의 생각을 묻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은 여전히 없다.


설령 시어머니가 눈물을 흘린다 해도 남편은 아프겠지만 나는 아니다.

시어머니가 흘리는 눈물은 나를 잡아먹기 위한 눈물이고, 나를 잡아먹지 못해 흘리는 눈물이다.

시어머니가 눈물을 흘린다 해도 나는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다.


내 생일날에는 시어머니가 갑자기 내 통장으로 돈을 입금하셨다. 그걸 생일이 지나고 며칠 후에야 알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어머니가 내 통장으로 돈을 보내셨는대?”

“뭐?”

“어머니 계좌번호 여쭤 봐. 다시 돌려드리게.”

“알았어. 끊어!”

남편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자기야, 자기 지금 바로 전화하면 안 될 것 같아. 자기 지금 화가 났잖아. 그렇게 화가 난 상태로 뭐라고 말씀드리게? 좀 진정되면 전화드리고 차분하게 계좌번호만 여쭤봐.”

남편의 한숨소리가 핸드폰 밖으로 새어 나온다.

“네 말이 맞아. 지금 바로 전화했으면 소리부터 질렀을 것 같아.”

“이건 화낼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래.”

“난 어머니가 나한테 돈을 안 주셔서 어머니한테 화가 난 게 아니야.”

“알아. 엄마가 모르시는 거지.”

“그럼, 알려드려야지. 화를 낼 일은 아닌 것 같아.”

“네 말이 맞아. 바로 전화하지 않도록 잡아줘서 고맙다.”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자기야, 나 때문에 불효하지 마. 난 어머니한테 받은 게 차별, 구박, 멸시, 모욕, 학대여서 받은 대로 돌려드리지 않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다시는 그런 대접을 받지 않도록 나를 지키고 그 끔찍한 일을 대물림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하지만 당신은 입장이 달라. 힘들겠지만 당신 부모님이야. 비록 자기 자식만 소중한 이기적인 사랑이었지만 어머니는 어머니가 배운 대로 아들에게 사랑을 주었으니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서 효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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