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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Apr 08. 2021

시어머니의 성희롱


 결혼을 할 무렵, 나는 참 세상을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이 같았다. 결혼하고 시부모님이 생긴다는 것은 그냥 부모님이 한 분씩 더 생기는 거니 잘해드리면 그만큼 사랑받겠지 싶었다. 며느리를 괴롭히는 나쁜 시월드는 막장드라마에나 존재하는 것이고 천하의 몹쓸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내 주변의 사람들은 대체로 시부모님들과 잘 지내는 것으로 보였기에 현실에서는 그렇게 흔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혹시 그런 나쁜 사람들이 나의 시부모로 걸릴까 봐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해도 정말 괜찮을까 걱정할 때도 있었지만 설마 나한테 그런 나쁜 시부모가 걸릴까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 부모님들은 좋은 분들이야. 개방적인 분들이니까 걱정하지 마.”라는 남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나는 지나치게 순진했다.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이는 마법 같은 사랑에 빠져 세상만사가 다 잘 될 것 같고 세상 모든 불운은 다 나를 피해 갈 것 같았다. 사랑의 콩깍지에 눈이 먼 그 시간에 이제와 저주를 퍼부은 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목욕을 갔던 순진했던 나를 죽일지도 모르겠다.


그랬다. 나는 시어머니와 목욕을 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미치지 않고서야 정말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은데 나는 그 미친 짓을 했다. 그게 그렇게 큰 후폭풍을 불러올지 나는 상상도 못 하고 그냥 친정엄마랑 가는 것처럼 별생각 없이 갔다. 시어머니는 딸이 없으니까 딸이랑 같이 가는 것처럼 며느리랑 가서 등도 밀어드리고 하면 좋아하시겠지 하는 순진하다 못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미련한 짓을 기어이 하고야 만 것이다.


명절 앞에 주말이 끼어 차례를 준비할 시간이 더욱 길었던 연휴였다. 시간이 길었던 만큼 차례 음식 준비는 전날 오전이 되자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몸이 힘들어 뜨거운 탕에 몸을 좀 풀고 싶은데 명절 전날이라 친구를 불러내기도 뭣하다는 어머니 말씀에 “어머니, 그럼 저랑 같이 가요.” 라며 스스로 지옥불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목욕을 하고 나올 때까지는 좋았다.

목욕을 다녀와서 시아버지가 며느리랑 목욕 갔다 오니까 좋았냐며 어머니에게 말을 건네셨다. 시어머니가 대답하셨다.

“얘 몸이 애 같아. 여자 몸매 같지 않고 그냥 애야. 남편한테 사랑받을 몸은 아닌데 우리 00 이는 뭐가 좋아서 얘를 그렇게 좋아할까?”


정수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 번개가 내 옷을 홀랑 태워 시부모님 앞에서 발가벗은 알몸으로 서있게 만들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워 눈물도, 그 어떤 대꾸도 나오지 않아 그냥 굳은 듯 서있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희롱하는 말을 뱉어놓고 뭐가 웃기는지 큭큭거리며 웃었고 시아버지는 멋쩍은 듯 딴 이야기를 하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딸 같은 며느리를 하려던 내 순진했던 마음에 침을 뱉고 싶다. 내가 시어머니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다정한 고부 놀이를 하려던 그 순간에 시어머니는 내 몸의 구석구석을 훑어보며 당신 아들의 성노리개가 될법한 몸인지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시어머니의 말을 많이 순화하여 표현했지만 그분의 표현은 더 노골적으로 내 몸의 구석구석 훑으며 평가했다. 너무 수치스러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없었던 일인 것처럼 잊고 싶던 기억을 기어이 끄집어 내 이렇게 글로 써 내려가는 과정도 고통스럽다. 그 후 꽤 오랫동안 남편과 관계를 맺기도 어려웠다. 꼭 시부모님이 침대 옆에 서서 지켜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하여 남편에 대한 마음마저 싸늘하게 식어 버리곤 했다.


예전에 한 육아카페에서 어떤 임산부가 눈물로 호소하며 올린 글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시아버지가 노인 건강에 초유가 그리 좋다며 며느리인 자신에게 출산을 하면 초유를 짜서 달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시아버지가 마시겠다고. 시어머니나 남편이라도 그게 무슨 미친 짓이냐며 기겁을 하고 말려야 할 텐데 그러지 않는단다. 그냥 효도라고 생각하고 그리 하란다. 그래서 자기는 이 변태 같은 집구석의 미친 인간들과 단 한순간도 살 수가 없다며 이혼을 하고 싶은데 만삭의 몸으로 뱃속 아이를 생각하면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니 눈물만 날 뿐이라고 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댓글이 달렸다. 모두 그 미친 집구석을 욕했다.


그 글을 보며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첫 번째는 며느리라는 존재를 얼마나 하찮게 보는지 며느리에 대한 그들의 저급한 인식에 기겁을 했다. 두 번째는 나의 시어머니도 그들의 그 저급한 인식 수준과 별다를 바 없이 똑 닮아 있었기에 소름이 끼쳤다.


내 아이가 백일 때, 가까운 양가 가족들을 불러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백일잔치를 대신했다. 넓은 식당 홀에 우리 식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식당 손님들이 있었다. 아이가 울자 시어머니는 족히 백 명은 넘게 있는 그 식당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내가 젖병에 분유를 먹이면 된다고 하자 왜 젖을 두고 분유를 먹이냐며 언성을 높이셨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수유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젖을 물리냐고 하자 인상을 쓰면서 화를 내셨다. 결국 시어머니 성화에 덩달아 마음이 불편해진 친정엄마도 식사를 못하시고 한 말씀하셨다.

그건  어미가 알아서  일이지  사부인이 그런 것까지 마음을 쓰십니까?”


 시어머니에게 며느리 따위는 감정도 인권도 없다. 며느리는 당신 손주가 배가 고프면 사람들이 있건 없건 가슴을 드러내고 젖을 물려야 하는 걸어 다니는 젖병일 뿐이다. 당신 아들이 며느리에게 사랑받을 만한지는 미처 생각이 닿지 않지만, 며느리는 당신 아들의 성노리개로 준비된 몸인지 아닌지 당사자를 앞에 두고 몸의 구석구석을 천박한 언어를 사용하며 평가한다. 나는 시어머니를 바꿀 수 없으니 그냥 무시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다채롭게 깊어지는 그분의 희롱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무시하자고 애쓴다고 상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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