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시어머니의 서릿발이 선 호통이 핸드폰 밖으로 튀어나왔던 것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였다. 신혼여행지는 태국이었다. 비용절감 차원에서였는지 밤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한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지금 공항이고 친정에 갔다가 저녁에 가겠다고 시가에 연락을 드린 후 친정에 가서 기절한 듯 잠들었다. 오후 2시쯤 눈떠 시가에 전화를 드렸더니 왜 이제야 전화를 하냐며 비명을 지르셨다. 친정에 도착하면 도착했다고 전화를 해야 할거 아니냐며 아마도 교육 비슷한 말을 운운하셨던 것 같다. 성질 같아선 맞받아치고 싶었다. 그렇게 교육을 잘 시키시는 양반이라면 본인 아들을 잘 교육시켜 아들이 스스로 전화를 하도록 하면 될 것을. 신혼여행지에서도 한국에 도착해서도 항상 전화를 한 것은 나였다. 시어머니의 아들은 손가락이 부러지기라도 했는지 생전 전화 한번 할 생각도 안 하고 심지어 내가 전화를 드리자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루던데. 당신 아들은 저따위로 키워놓고 지금 누구의 교육을 운운한다는 말인가! 기가 막혔다.
하지만 안쓰럽게도 나는 화가 난다고 어른들한테 소리 지르며 대들면 안 된다고 진짜로 교육을 받아버렸다. 절대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어른이 어른스럽지 못하게 상황판단도 제대로 못한 채 그 주름진 못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이건 무조건 니 잘못이다’라는 지적 버튼을 누르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잘못했습니다’가 먼저 튀어나와 버리는 자판기가 되는 교육을 받아버린 것이다. 교육을 지나쳐 세뇌를 당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용서를 비는 빌어먹을 자판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랑 같이 소리를 지르는 대신 죄송하다며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빌고 시어머니의 화를 버리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것을 자초했다. 불행스럽게도 그땐 내가 시어머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버리는 걸로 나의 결혼이 시작되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 후에도 그분의 서리발 같은 호통은 너울거리는 그분의 감정선에 따라 반복하여 찾아왔다. 그 주기는 일정하지 않아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수 없이 많은 폭탄이 터졌지만 대체로 네, 네 하며 흘려보냈기에 일일이 다 기억하기 힘들다. 다만 내 마음에 상처로 남은 폭발만 기억할 뿐이다.
남편이 십 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후회하는 몇 가지 중 한 가지는 내가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할 때 나를 혼자 버려두고 시가에 설을 보내겠다고 혼자 가버린 일이란다. 아이를 낳고 2주 동안 조리원에 있다가 퇴원을 했을 때였다. 하필 설 연휴가 끼어 예약해두었던 산후도우미가 오지 않는단다. 친정엄마가 대신 오시기로 하셨으니 지독한 감기에 걸리셔서 혹시나 신생아나 산모에게 옮길까 봐 오시지 못했다. 당연히 남편이 시가에 가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전날 못 가면 당일 새벽에라도 가야 한다며 혼자 게임을 하면서 밤을 꼬박 새우더니 새벽이 미처 오기도 전에 시가로 가버렸다.
태어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은, 유독 작게 태어난 신생아와 나만 단 둘이 우주에 동동 버려진 기분이었다. 거긴 내가 살던 곳도 아니었다. 주변에 아는 이가 하나도 없어서 나를 도와주러 올 이가 없었다. 아기는 너무 작았다. 내가 만지기만 해도 잘못될까 봐 너무 겁이 나서 눈물이 나왔다. 나도 신생아는 태어나 처음 봤을 때였다. 이미 손을 타서 하루 종일 안고 있어야 하는 아기였다. 그 아기와 나만 남았다. 아기를 계속 안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밥을 먹을 수도 없고, 화장실에 갈 수도 없었다.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우유만 벌컥벌컥 마셨다. 우유를 마시고 모유를 만들어야 하는 커다란 젖병이 된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남편이 오기만 기다렸다.
우유만 마시면서 모유를 준 게 탈이 났을까? 오후 늦게 아기가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혼자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시어머니가 대신 받더니 차가운 비명을 질렀다.
“왜 전화했냐! 니 남편 오자마자 뻗어서 잔다!”
그분의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내가 밤새 남편을 혹독하게 부려먹기라도 해서 남편이 기절한 것이라며 질책하는 듯했다. 본인 스스로, 누가 시키지도 않은 게임을 밤새 혼자 하다가 산모와 아기는 굶든 말든 버려두고 기어이 시가에 간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혼나야 할 자신의 아들은 감싸며 나에게 호통을 치는 시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기는 나 혼자 낳은 것이 아니다. 아기의 아버지인 남편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왜 나 혼자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나도 엄마가 보고 싶고 명절이 되면 우리 집에 가고 싶은데 왜 나는 못 가고 참는 것이 당연하고 남편은 하늘이 쪼개지는 일이 있더라도 시가에 가야 하는 걸까? 왜 남편은 가서 잠만 자다가 올 거면서 굳이 그렇게 자기가 돌봐야 할 산모와 신생아까지 버려두고 간 걸까? 나는 왜 밥도 못 먹고 굶어가며 시어머니의 호통까지 들어야 하는 걸까? 왜 저들은 이제 막 아기를 낳은 살아있는 나는 밥도 굶기고 죽은 조상에게 먹지도 못할 음식을 며칠씩 해가며 바치는 걸까?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사위에게 반 존대를 하며 깍듯하게 대해주는데 왜 시어머니는 자기가 화가 난다고 나에게 저렇게 함부로 소리를 지를까? 아들이 오자마자 자는 게 속상했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곤조곤 물어보던가 네 남편이 너무 힘들어 보이니 너도 힘들겠지만 얘도 좀 챙겨주면 좋겠다고 좋게 말을 하면 될 것이지 왜 나에게 저렇게 함부로 대하는 것일까? 나는 시어머니의 쓰레기 같은 기분을 버리는 감정 쓰레기통인가?
YES!
우리 시어머니에게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