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특별한 산책을 했다.
아래층에 사는 꼬마가 정원 한바퀴를 동행해준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린이가 아는 어른이라 해도
쫓아다니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동심파괴는 할 수 없어, 엄마께서 걱정하실테니
집으로 들어가라고 살짝 바꿔 말해주었지만
몇 년을 보아온 사이에, 뭐 그런 소리를 하냐는듯
꼬마친구는 아랑곳않고 졸졸 뒤를 따라왔다.
물론 울집 강아지와 산책을 해보고 싶어서이지만.
아파트 안을 벗어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강아지, 나, 꼬마친구는 슬슬 걷기 시작했다.
-왜 계단을 직접 오르지 않아요?
-아, 디스크에 걸릴까봐.
-강아지들이 계단을 오르며 허리를 움직이면 허리근육이 더 유연해져서 건강에 좋단 얘기가 있어요.
-그래? 몰랐네. 하지만 이 강아지는 허리가 길어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 이렇게 이렇게 수축되고 이완되면서 유연성이 좋아지는 거예요.
-(아.. 유연.. 수축.. 이완.. 와우! 어휘력 만렙이다)
-근데, 강아지들은 대개 실내입장이나 대중교통 이용이 제한되잖아요. 그런데 강아지 중에서 사람이 가는 곳 어느 곳이든 입장가능한 견이 있어요.
-응응..
-골든리트리버 아시죠? 털이 북슬북슬하고.. 시각장애인 안내견인데, 이 친구들은 장애인의 길을 안내하기 때문에 개가 아니라 사람으로 취급되어서 입장을 꼭 허락해야 해요.
-아하... (중요하고도 값진 지식이다. 모르는 어른도 많고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어른이 많은데.. 기특기특)
-그리고 말예요. 강아지가,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게 말예요. 그 작은 컵 같은 것 안에 돌이나 주사위를 넣고 한 쪽엔 같은 빈 컵을 놓고 그걸 막 빠르게 돌리는 거 있잖아요.
-(아, 야바위 같은 거..) 응응, 알아.
-강아지가요, 그걸 맞춰요! 대단하지 않아요?
-아 정말?
-기똥차게 맞춰요.
-후각이 뛰어난 건 알았는데.. 시각도 뛰어난가.(갸우뚱.. 흠 냄새가 난 건가)
-제가 한번 줄을 잡아봐도 될까요.
-아아 그래.. 안 무섭겠니?
-네네 그럼요. 저는 유기견보호소에 큰 개, 큰 진돗개 알죠? 그애도 막 줄 없이 놀아줘요. 손 막 이렇게 하고..
-손!
-(...)
-근데요. 줄을 당기는 게 아니었어요? 이렇게 헐렁하게 하고 강아지가 움직이는 대로 두는 거예요?
-음, 나도 방법은 잘 모르는데, 보통 줄을 팽팽하게 당기면 이 친구가 시그널로 알아듣고 멈추거나 움직이거나 방향을 트는 걸로 알아. 너무 팽팽하게만 자주 당기면 스트레스를 받는 거 같더라고. 나는 살살 잡고 있다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살짝 당겨줘. 시그널로.
-오오 그런 거군요. 막 찻길로 나갈 때만 잡아주는.
-그렇지! 위험할 때만.
-혹시 도망갈까봐 줄을 하나요
-아니야. 우리개는 줄을 풀어도 도망치거나 멀리 뛰지 않아. 그냥 날 주시하면서 오히려 시야에서 사라질까봐 조금만 안보이면 벌떡 일어나서 따라와. 딴데 정신 팔더라도, 이름 부르면 돌아오고.
-와. 모든 개가 그런가요?
-아니.. 그렇진 않을 거야. 너무 어리거나.. 흠.. 유기견이거나.. 주인과 관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으면..
-네. 사실 유기견보호소에서 어떤 개가 막 철장을 뛰어서 도망가는데 아무리 불러도 도망가더라고요. 어른들 여러명이 달라붙어도 못 잡고. 큰소리를 쳐도 안되고.
-아이고야. 그래서?
-결국 덩치가 이렇게 큰 아저씨가 소리를 막 질러서 구석으로 몰은 후에 힘으로 덥썩!
-아.. 다행이긴 하다.
-네.. 줄을 좀 풀어놔도 될까요.
-아, 근데 그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법이요? 왜요? 이렇게 얌전한데. 왜 그런 법이 있죠?
-모든 개가 이렇게 순하진 않고, 개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분도 많고..
-아, 또 있어요! 개 알러지가 있는 사람도 있어요.
-맞아. 그런 분들에게 모르고 막 다가가서도 안되겠다.
-어린애들도요. 작은 아이들요.
-응응. 키가 자고 아주 작은 아이들 맞아..
-그런데요. 블랙이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아요. 이렇게 얌전하고 느리게 걷는 개는 처음 봐요.
-그래..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법은 지켜야지..
-아 덥다.
-에효, 이 더위에 잠바까지 입으셔서. 쯧쯧..
-(아.. 이노락 점펀데..)
-이제 들어가야겠다. 강아지 목이 마를 거 같아.
-제가 한번 실험해볼까요?
-(20미터를 뛰어가 재활용수거지 수돗가에서 두 손에 얌전히 물을 떠오신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에도 물을 줄줄 흘리며)
-아이고 물이 사라졌네.
-(바닥에 흘린 물을 핥는 강아지..)
-오오. 맞네요. 목이 마른 거예요.
-그래! 난 이만 들어갈게. 더 놀다 오니?
-아뇨. 저도 집에 갈래요.
-블랙이는 집을 가장 좋아해.
-저도요. 실은요.. 집이 제일 좋아요!
-근데 너 몇살이야?말을 너무 잘한다.
-저요? 열한살, 4학년이요.
-음.. ^^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꼬마는 먼저 내렸다.
따라내리려는 강아지를 내가 붙잡았다.
뜻하진 않은 동행,
결론은 "집이 제일 좋아"였다.
나도 집이 제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