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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Jan 07. 2019

리뷰)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사진을 찍듯
글로 잡아챈 삶의 단면들
나의 삶을 이루는
아무리 작은 것에도
침묵하지 않기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작가의 최근 산문집을 읽었다. 일상의 여러 상황과 감정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여전히 진지하고 위트있다. 사소하고 뻔해 보이는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다며 돌려보고 뒤집어보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에세이스트, 답다. 문체 또한 단정하고 리듬감있다. 그가 중요시한다는 그 스타일이란 것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작가에 관심을 가지게 된 순서로 따지자면, <보통의 존재>보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먼저다. 엄청난 연애담 같았던 글모음들. 기승전결이 있고, 그래서 다음은, 다음은, 하면서 채근해대며 읽었던 누군가의 이야기. 숨막히게 질주하다가 갑자기 뒤돌아 100미터 뛰기로 도망쳐가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고 확인하는 사랑. 세상의 모든 연애를 대변하는 듯한 책. 언제부턴지 내가 없고 마음이 없고 그래서 글도 사라진 나에겐, 충격적이고도 날 것 그 자체였던 솔직한 문장들.


그래서 넌 누구냐, 하는 마음으로 먼저 출간된 이 작가의 베스트셀러 <보통의 존재>를 찾아 읽었다. 매우 예민한듯 해도 아주 평범한, 보통의 존재인 자신을 고백하는 자기소개서였다. '나란 사람은 어떤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살았다'는 그 글은 일기라고 치부하기엔 도발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 너희는 뭐 다르냐, 고 따지는 듯한, 너나 나나 그저그런 보통의 존재일 뿐이라고 강변하는 그의 글들에, 그래 맞아 네가 대표로 그 속내를 쓴 것뿐이야, 라고 대꾸해주고 싶은 심정으로 읽었다. 우리가 보통의 존재임을 숨기기에 급급할 때 그는 그 다수를 대표해 커밍아웃하고 있다는 얘기일테니.


그리고 세 번째 읽게 된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작가는 나이듬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날선 그의 문장과 호흡은 가다듬어지고, 이제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느긋함과 성숙함을 풍겨오고 있었다. 사람을 끄는 문장력을 가지된 근원이랄까, 그의 트라우마 같기도 했던 어머니와의 관계도 세월 속에서 넉넉하게 끌어안게 된 것 같았다. 이혼과 이별도 그 자신을 이해하고 상대를 헤아리는 관용으로 나아간 것처럼 보였다. 이젠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것들이 아니라 하지 않는 일, 하기 싫은 일이란 게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글에 또한 고개를 끄덕이게도 되었다.


작가의 글은 변하고 있다. 그의 삶이 변하고, 그 순간순간의 단면이 모인 여정을 작가는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긴 밤이 지나고, 그의 지구체류기는 또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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