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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Dec 02. 2019

리뷰) 동백꽃 필 무렵

삶의 비애에 포효하는 맹수, "동백씨"

쉬운 이름만큼 쉬워 보이는 말투와 표정의 여주인공 동백이. 말끝을 흐리며 사람들의 부당한 눈빛과 말, 행동에 꾸역꾸역 참고 양보하기만 하던 동백이는 못 배우고 둥지 없이 혼자 아이 키우며 술을 파는 여자다.


그러니까, 이 극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천대받고 오해받기 쉬운, 사회적 약자다. 여주를 맡은 공효진은 특유의 소탈하고 꾸밈없는 연기로 동백이를 눈앞에 떡하니 환생시켰다.


사람들은 동백이의 그런 태도와 배경 없는 처지만 보고 쉽게 충고하고 비난하고 제안하고 휘두르려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강인하게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고 필구를 낳고 키워왔는가를 작가 임상춘은 극을 마칠 때까지 하나씩 증명해낸다. (그러니까, 아무리 약해 보이는 누군가에게라도 섣부른 삶의 충고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게 맞겠다.)


동백이에게 한눈에 반한 '촌므파탈' 용식이와 옹산 마을 사람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에서 나아가 연쇄살인이란 스릴러까지 접목하면서 작가는 허술하고 맹해 보이는 동백이가 얼마나 맹수처럼 강인한 존재인지를 필력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동백이의 강인함의 원천을 모성에서 찾는다. 동백이가 필구에게 쏟는 무한애정뿐만 아니라 동백이를 어린 시절 버린 동백 모의 구구절절한 사연, 심지어 홀로 유복자인 용식이를 당당하게 키워낸 용식모까지 등장시키며 모성은 강인하며 세상 모든 것을 뛰어넘고 이기게 만든다고 밑밥을 깐다. 엄마가 없는 향미마저 동생에게 무한 헌신하는 모성 가득한 누나로 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상춘이 그리는 맹수 같은 모성은 이유를 불문하고 눈과 귀, 심장이 온통 자식에게 향하도록 하는 것이며 자식에게는 끝도 없는 죄책감과 헌신을 보이지만 자식의 안위를 위협하는 존재에게는 사자의 발톱과 용맹 담대함으로 결사 항전한다는 것이다.

 

이 맹수를 지켜보는 이들은, 동백이에게 한눈에 반한 용식이와 동백이를 첫눈에 경계한 옹산 마을 사람들이다. 용식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동백이에게 다가갔지만 옹산 마을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편견으로 동백이를 밀어냈다. 마치 현실세계에서 주인공인 나를 두고 내 친구와 적이 갈리듯이 말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세계관은 그러나, 친구와 적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이 아니다. 어차피 나란 존재는 무조건 사랑받을 수도 무조건 미움받는 존재로 영원히 굳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며 오해는 진심이 되고 진심은 다시 오해가 되며, 관계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보단 더 큰 사회악을 설정함으로써 작가는 '진정 나쁜 것'과의 혈투를 위해 '다수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쓴다.


용서와 화해가 없는 절대 어둠은 이 세상에 존재하며, 그것으로부터 서로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얄팍한 경계의 시선을 거두자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에게 무시와 편견, 혹은 두려움의 시선을 거두고 좀 더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면 어쩔 수 없는 어둠에서도 서로를 지켜낼 수 있는 보호막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강자인 듯 보였으나 한없는 약자였던 한량 규태와 약자인 듯 보였으나 한없이 강했던 엄마 동백이가 그 보호막을 통해 둘 다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근원적인 빛인 모성이 존재하지만 삶의 우여곡절 속에 그 고귀함은 왜곡되고 눈물과 슬픔, 한탄으로 가득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별로 없어 보인다. 세상이나 팔자를 원망하는 것, 주저앉아 큰소리로 울부짖는 것...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머니 뱃속에서 무한사랑의 탯줄을 이어받고 태어난 존재들 아닌가. 우린 모두 사랑을 듬뿍 먹은 맹수의 새끼들이며 내추럴 본 맹수로 태어난다. 삶이라는 비극에 굴복하지 않고 그걸 물어뜯어 치워 낼 능력이 있단 얘기다. 그 능력의 불꽃을 살리는 것이 바로 '사랑'이며, 사랑받는다는 감정이다.


작가는 그 불쏘시개로 용식을 쓰고, 용식을 관찰자로 두어 동백이 삶의 용기를 찾아가는 모습을 독백처럼 읊조리게 한다.


완벽한 드라마였다. 글자와 대사로 상상 속에서만 떠다니는 2차원적인 것을 현실 배경과 인물로 생생 구현하니, 이 세상 어드멘가 옹산이란 어촌 마을에 동백이와 용식이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인다. 허구라는 것을 알았지만, 헤어 나오긴 힘들었다.


잘 쓴 드라마의 치명적인 매력이며 단점이다. 그들이 허구라는 건 참 허탈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남는다. 그런 사람들 그런 세계가 없 것 같은 불길한 마음도 들지만 어딘가에 꼭 있어주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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