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 Aug 05. 2019

리뷰) 열여덟의 순간

"네가 좋아, 이유없이"

열여덟 소녀가 열여덟 소년을 좋아하는 이야기. 첫사랑이고 풋풋할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


그러나 청춘물이 가볍고 순수하기만 할 거라는 기대는 어른의 편견일 뿐. 공전의 히트를 쳤던 <스카이 캐슬>이 그렇듯, 이 드라마도 2019년 대한민국 고교생들의 뼈 아픈 현 외면하지 않는다. 십 대를 지나 보낸 이삼십 대도, 십 대 자녀를  사오십대 부모들도 그래서 흥미롭게 볼 다.


인생이란 돌이켜 보면 어느 하루 쉬운 날이 없는 것일 테다. 춘기, 혹은 십 대 중후 반도 그러하다. 덜 자란 마음, 적당히 자란 몸 헤쳐 나가는 적당히 꼬여 있다. 진실은 숨어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속고 속이는 부조리가 교과서적 정의보다 만연하는 곳, 오늘 여기.


직은 그게 뭔지 실체를 딱히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십 대들이기에, 쓰디쓴 현실 앞에서 ~ 때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을 것이다. 낯설고 기이해서 적응하지 못했을 뿐, 그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어른이, 그럴듯한 지표들이, 보이는 것만큼 깨끗하고 올바르고 추종할 만한 기준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십 대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그들의 눈을 통해 보면, 사회란 곳의 비틀어짐이 더 선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머리 하나 좋은 것을 믿고 감히 부의 왕국을 이룬 나를 넘본다며 상대를 낮추고 얕잡아 보는 휘영(신승호)의 아버지나, 이름 없는 대학 나와 감히 말도 섞어보지 못할 년이 사모님 노릇이나 하며 우습지도 않다는 앞과 뒤가 다른 험담으로 화풀이를 하는 수빈(김향기)의 어머니.


그들의 말과 생각, 행동 속에 뿌리 박힌 타인에 대한 경멸과 무시, 질투와 조롱은 단지 만들어진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훨씬 더 자주, 아주 사소한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필터 지를 들고 이 세상을 보며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이다.


괴물 같은 부모를 둔, 수빈과 휘영. 그리고 그 같은 시스템에서 애초에 낙오되고 비껴졌다며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준우(옹성우)의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드라마의 첫 회를 보고 이걸 더 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수빈이의 태도 때문이다. 작은 몸집으로 단단하고 야무지게 자기의 삶을 꾸리는 수빈이란 캐릭터. 열심히 공부하고 똘똘하게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서도, 누군갈 맹목적으로 이기거나 간판을 따거나 무시받지 않기 위해 전력 질주하지는 않는 수빈이.


겉모습 환경만으로 친구를 판단하거나, 곁도 주지 않는 무관심이나 냉정함으로 또래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자기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과 위선으로 타인을 조종하지 않는, 인간다운 아이.


무엇보다 덮어놓고 준우가 좋은 사람일 거라고 믿어주는, 자신의 직감을 따르는 수빈이는 어쩌면 더 큰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아이일지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그것은 그들이 어떤 사람이건 간에 그들의 모든 것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것, 거대한 신뢰와 애정을 보내주는 것이란 걸, 수빈이는 알고 있다.


마침, 준우도 자기만의 세계를 옳은 방법으로 지켜가는, 념을 가진 멋진 아이일 거란 힌트가 드라마 곳곳에 묻어  있다. 부디, 둘을 둘러싼 여러 역경 속에서 그 두 아이가 자기 자신만의 원칙과 정의로 교실과 가정, 그리고 이 사회에 작은 불꽃 바람을 불어넣어주길... 바란다. 그것이 드라마 속 이야기일지라도.

이전 03화 리뷰) 봄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