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 살게 된 이유는 아이들 때문에 혹은 쉬고 싶어서라고 말하지만 내가 남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남해(南海) 심지어 이름도 낭만적이다. 남쪽 바다라니, 내 이름에도 ‘南’ 자가 들어간다. 이런 걸 천생연분이라고 하겠지.
남해 칭찬을 하자면 어딜 가나 눈을 돌리면 바다를 볼 수 있다.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하면서 ‘남해도’라는 섬이 하동군 금남면과 연결되어 섬의 기능을 잃었다. 이웃집 90살 할머니의 애정시대(왜정시대:일제강점기) 이야기까지 듣다 보면 노량에서 나룻배 타고 설천면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시는데 그전까지는 섬의 기량이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강한 태풍이 오면 남해대교, 삼천포대교는 통제되어 2023년 판 완전한 고립이 가능하다.
푸른 바다는 우리에게 실한 먹거리를 내어 준다. 물 빠진 갯벌은 호미질만 두어 번 만 해도 조개를 캘 수 있다. 여름에는 해수욕장이 개장하고, 특히나 고운 모래가 반짝이는 ‘상주은모래 비치’는 따뜻한 수온으로 아이들이 놀기에 좋고 수심 또한 깊지 않아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 많이 찾는다. 우리 가족도 사실 10여 년 전 상주 해수욕장에 휴가를 왔던 것이 남해와의 첫 인연이 되었다.
여행객이 떠나고 난 뒤 강아지 두 마리와 걷는 밤바다 마실은 생각보다 낭만적이다. 작은 골목길을 지나 달빛을 가로등 삼아 방파제까지 도착하면 초록빛 바다는 간데없고 검은색 바다가 나타난다. 우리를 비춰 주던 가로등 달은 어느새 바다 위에 떠 있다. 산책 나온 강아지 두 마리는 바닥에 숨어있는 돌게나 갯강구를 보고 미친 듯이 짖어 대다 잡으러 쫓아 가지만 실패한다. 건너편 마을에 보이는 집들의 어렴풋한 조명과 어선의 항로 조명이 가끔 깜빡일 뿐이다. BGM은 파도에 쓸려 내려가는 물소리. 밤이 고요할수록 더욱 선명히 들린다. 낮의 찬란한 바다도 밤의 어두운 바다도 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모두 내가 사랑하는 남해의 바다이다.
다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작은 농촌 마을의 전경이다. 어떤 곡창지대처럼 평야가 펼쳐지거나 끝없는 지평선이 보이거나 하는 곳은 없다. 논과 바다가 함께 들어오고 산이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산간에 농사를 짓기 위해 생겨난 다랭이 논은 선조들이 산기슭에 한 평이라도 논을 내려고 90도로 곧추세운 석축을 세워 만든 논이다. 기계가 들어가지 못해 여전히 소와 쟁기 혹은 손수 농사를 지어야 하는 다랭이 논은 3평에서 300평 까지 크기가 다양하다고 한다. 비옥한 땅은 때가 되면 좋은 결실을 내어 주어 쌀은 물론이고 상추, 호박, 고추, 가지, 토마토, 감자, 양파, 마늘, 고구마, 시금치 천연 마트가 따로 없다. 매일 마당 안 텃밭에서 제공되는 1초 배송 시스템은 오로지 직접 길러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맛이다. 지금껏 여러분이 먹은 고깃집의 누르띵띵한 마늘은 마늘 맛이 아니고 급식에서 먹은 검으튀튀 한 흐물거리는 가지볶음은 가지 맛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하는 남해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은 퉁명한듯하지만 애정이 배어있는 사람들이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 그런지 항시 젊은 사람이 뭐 하는지 관심이 많다. 아이들과 내려와 남편과 주말 부부를 할 때도 마을 할머니들의 관심사는 젊은 애기엄마가 남편은 어쩌고 내려왔는지에 관한 ‘과부이슈’였다. 아이들은 마을에서 사랑둥이로 자라났다. 인사만 잘해도 용돈도 받기도 하고 누구 집 손주인지 듬직하다는 이유로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아이들이다.
어떤 날에는 대문 앞에 커다란 무를 놓아주시기도 하고, 시금치를 주시기도 하고, 들어보니 병원에서 일했다 하던데 남해 병원에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나서는 동네 어르신도 계셨다. 허나 과도한 관심은 금물 더 이상의 질문과 관심을 받지 않았으면 했던 때에 자연스럽게 모든 관심은 점점 줄었다. 이따금 아직도 동네를 지나다니다 보면 이방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을 가끔 느낀다.
결국 남해를 사랑하는 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였다. 낡은 집을 손수 고치고 전 주인의 세간살이를 선택해서 취하고, 텃밭을 가꾸며 삶의 의지를 다지고 강아지와 바다 마을을 산책하는 일상을 가진다는 것.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관광지에서 제로 페이로 결제하는 것. 밝고 맑은 낮의 바다와 서산으로 지는 저녁노을도 한없이 푸른 논과 파란 하늘 하얀 구름도 선명한 수채화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로컬 맛집과 노인 인구 80%에 씩씩하게 도전장을 낸 작은 공방의 젊은 사장님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남해를 붙들고 있는 것이겠지. 아마도 아이들 핑계를 대고 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하게 된 남해인 것 같다.
벌써 금요일 저녁, 얘들아 가자. 진짜 집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