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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Oct 20. 2023

지독한 꿈


  “선생님 죄송해요. 저 출근하다가 자동차가 나무에 걸려서 오늘 아침에 환자를 못 받을 것 같아요”

지독한 꿈이었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나무에 걸렸는데 “살려주세요”가 아닌, 환자를 못 볼 것 같다는 걱정을 하는 꿈. 매일 아침 뉴스에는 신종 감염병 코로나로 인해 사망자 몇 명, 확진자 몇 명이 우측 상단에 표시되고 있었다. 그때는 2020년 3월이었다.


  이미 팀원의 절반이 자가 격리에 들어가고 우리 팀에는 간호사라곤 책임 간호사 1명, 나, 그리고 은영 선생님과 철수 선생님 이렇게 4명만 남았다. 그때는 그랬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면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에 따라 14일 동안 자가 격리가 되었다. 8명이서 해도 빠듯했던 일을 4명이서 한다니... 아직 남은 환자는 60여 명... 날짜를 정해 이틀 간격 혹은 삼일 간격으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을 담당하는 특수 파트였다.


  진료과 과장님께서는 여기서 한 명의 간호사라도 자가 격리에 들어가면 남은 60여 명의 환자를 전원(다른 병원으로 옮김) 시키겠다고 말했다. 본관에서 이동식 엑스레이 촬영 기구가 1톤 트럭을 타고 우리 건물로 들어왔다. 기구를 내리기 위해 지게차가 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검사 오더가 나면 병원 외부에 있는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우리 건물로 call을 받고 오신다고 했다. 너무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웃음은 나지 않았다. 온몸을 감싸는 비닐 가운과 장갑은 환기도 되지 않아 땀으로 물들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내 집에 아이들은 학교를 갈 수 없어 집안에서 방치되고 있었는데, 간호사이기 때문에 환자들을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나타난 책임감에 사로잡혀 내 환자를 지켜야 한다는 그 일념 하나로 버텼다.


  밤에 자려고 누웠으나 잠들 수 없었다. 두 시간 정도 선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때부터는 눈이 말똥말똥했다. am4시에 병원으로 출근했다. 6시에 올 환자들을 맞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잠도 안 오는데 잘되었다. 입맛을 잃었다. 밥을 먹을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그즈음부터였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처음엔 노란색 알약 한 알이 늘고 늘어 12알이 되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자려고 누워 잠을 청하는데 지하 23층으로 그대로 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소리와 빛에 예민해졌다. 불을 끄고 암막 커튼을 더 꽉꽉 쳤다. 그 이후로도 두 번 세 번은 더 그런 생각을 했다. 주치의는 중증도의 우울증이라고 했다. 몇 개월의 기간 동안 체중은 20kg 이상 빠졌다. 친정 엄마는 나를 보고 울기만 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집안에 흐르는 복잡한 기류를 감지하고 숨죽여 있었다. 그저 ‘엄마가 아픈 것이 빨리 나았으면’이라고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코로나는 나에게 이런 것이었다. 모든 것이 코로나 때문이라고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었다. 비단 나에게 일어난 일만은 아니었다. 입학식은 연기되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모든 공연은 취소되었고, 아티스트들은 관객을 만날 시간을 잃었다. 여행업과 운수업, 항만이 막히고 수출 길도 막혔다. 식당에서는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만이 4명 이하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5인 가족이 밥을 먹으려면 등본을 지참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지나고 보니 ‘그랬었나’ 싶은 오랜 기간 나의 삶을 아니, 우리의 삶을 뒤 흔들었던 코로나가 지난 8월 31일 부로 4급 감염병으로 하향 조정이 되었다. 이제는 계절 독감과 비슷한 정도의 병이라 분류가 되었다.

 

  나에게 지난 3년은 어떤 의미일까. 그동안의 나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인지 되뇌어 보았다. 다니던 직장은 잠시 쉬고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동안 좋은 간호사의 역할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좋은 엄마이길 원했다.

  그렇다면 지난 3년 간의 시간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걸까. 내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남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혼자이고 싶었지만 혼자라고 느끼지 않았고 가족과 친구들은 나의 시간을 기다려줬다. 어떤 사람에게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었다면 나에게 코로나는 잊히지 않는 지독한 꿈이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보려 한다. 조금 늦게 알게 된 삶의 의미랄까. 이보다 더한 감염병이 나타나도, ‘다음 주에 다시 올게’ 하고 손 흔들고 간 환자분을 장례식장에서 마주하게 되더라도... 아이들의 졸업식에도 가고, 입학식에도 가고, 텃밭에서 시금치도 따고, 전시회도 열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글을 쓰겠지...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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