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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Oct 20. 2023

피에타

  엄마의 마음

1. 왜 하필 거기니? 조용한 시골 마을을 찾고 있는 거라면 내가 알아봐 줄게. 외삼촌이 살고 계신 시골 외할머니 집도 있고 마음 같아서는 곁에 두고 계속 지켜보고 싶은데 자꾸 다른 데로 가겠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연일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 간다고 떠들어 댄다. 딸이 다니는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병원이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 어째서 인지 딸이 일하는 부서는 돌아간다고 한다. 애들도 학교를 안 간다고 하는데 밥은 먹고 다니는지. 안쓰러워 잘 지내는지 병원 일은 어떤지 잘 묻지도 못했다. 지난주에 정신과에서 받은 약을 먹어야 잠을 잘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고 해서 걱정되는 마음에 자꾸 전화를 했더니 전화도 하지 말라고 고함이다. 그래서 내가 간호사 하지 말라고 그렇게 뜯어말렸는데 기어코 지 마음대로 간호대를 가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나는구나. 어릴 때부터 마음먹은 것은 제 고집대로 하더니만 내 말이라고는 안 듣는다.     


2. 병원을 안 나가고 휴직을 했다고 하는데 전화도 못하게 하고 집에도 오지 마라 하고 하서방에게 전화했더니 여전하단다. 혹시나 싶어 가본 집은 엉망이다. 그럴 줄 알고 몇 가지 반찬도 챙겨서 왔는데. 아직도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있다. 살이 많이 빠져 보인다. 얼굴도 엉망이다. 이 봄날에 저 장성한 딸은 왜 컴컴한 암막 커튼을 치고 방에서 일어나질 못하는지 속이 상해서 커튼을 열었다. 일어나라고 소리를 지르고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다.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부둥켜안고 울었다. 저 중학교 3학년 때 남편 일찍 사별하고 혼자서 남매를 이렇게 키웠는데. 어떤 것도 이겨 낼 마음으로 살았는데 정신 차려라 남아 왜 이 좋은 봄날에 이러고 있니 이러다 죽겠다. 우리 기도하자. 안된다. 이렇게는 안된다.      


3. 손주들이 다닐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창원에서 남해까지 비가 오는 날이지만 한 달음에 달려갔다. 뒷좌석에 앉은 딸은 말이 없다. 한 시간 반이나 되었을까. 대교를 건너는데 입을 떼었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남해대교 인가보다.     

“속이 시원하다”     

뭐가 맘에 드는 눈치 인지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 애들이 다닐 학교라고 하는데 세상에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가 다닌 국민학교도 이거보다는 낫겠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뱃속에서 나왔는데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4. 기어코 남해를 가겠단다. 하서방하고 가서 집도 계약하고 왔단다. 저 딸이 시원찮은 정신으로 생살 같은 새끼를 둘이나 데리고 혼자서 남해에 간다고 한다. 저것이 진짜 살러 가는 건지 죽으러 가는 건지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만 같아 안 되겠다. 내가 같이 가봐야겠다.           


딸의 마음

1-1. 왜냐면 난 혼자서 잊혀지고 싶으니까. 엄마랑 더 이상 말도 하고 싶지 않고 시부모님 온갖 친구 친척. 병원은 어떠니 H병원에 확진자가 나왔다는데, 일은 어떠니 힘들지 않니 더 이상의 관심과 질문을 받고 싶지 않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평소에 얼마나 궁금했다고. 엄마도 다 똑같아. 남편도 엄마도 다 필요 없어 내 새끼만 있으면 돼.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말도 걸지만 짜증 나 카톡도 하지 마 전화도 하지 마 죽던지 살던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코로나 걸려서 죽으면 뭐 임상에서 뛰다가 죽는데 뭐 어때 간호사로서 굉장히 영광스러운 거 아니야? 엄마랑 연결된 건 다 싫어. 내가 살 곳은 내가 알아서 할게.     


2-1. 전화도 하지 말고 집에도 찾아오지 마라고 했는데 비밀번호 삑삑 누르고 들어온다 진짜 질색 왜 저래 그럼 잠을 못 잤는데. 자야지. 암막 커튼 다 열면 어떡해. 자려고 했다고, 어젯밤에도 잠도 한숨 못 잤다고 수면제 용량 조절하는 중이잖아. 진짜 정신과 환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소리 지르지 마 울지 마 이러니까 집에 못 오게 하지. 왜 갑자기 기도는 왜 하는데. 아 진짜 다 짜증 나. 다 엄마 맘대로 다.    

 

3-1. 일단 교장 선생님과 약속을 잡아는 놨는데 하필 비도 온다. 가보고만 올까? 바로 다 정하는 것은 아니잖아.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한참을 달렸다. 흐린 바다 위의 섬을 바라보며 다리를 지난다.     

“속이 시원하다”     

나도 모르게 탄성처럼 흩어지는 소리. 뭐 그리 답답한 시간을 지냈다고 첫인상부터 남해가 맘에 든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인데도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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